• [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10) 근대 노예무역 |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참혹한 노예무역의 흑역사

    입력 : 2020.10.13 10:32:38

  •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유럽인들의 탐욕은 커져만 갔다. 처음에는 은광 개발에 몰두했지만 은광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담배와 커피, 사탕수수 등의 작물 재배에 눈을 돌렸다. 이러한 작물 재배에는 엄청난 인력이 필요했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노예로 동원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원주민들이 유럽에서 온 전염병에 걸리거나 강제노역을 견디다 못해 쓰러졌고, 이들을 흑인 노예가 대체했다. 노예무역이 시작된 것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2006)
    어메이징 그레이스(2006)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농장이 확대되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인의 식민지가 확장됨에 따라 흑인 노예 수요도 급증했다. 16세기에 시작된 노예무역은 17~18세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확대됐을 뿐 아니라 노예선의 비참함과 잔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8세기 말 세계 최고의 해군력을 보유한 영국은 노예무역을 통해 국가 수입의 3분의 1을 얻고 있었다. 1771년 영국의 노예무역선은 190척에 달했고, 연간 4만7000명을 운반하여 이윤은 30~100%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에 중상과 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의회에서 끝까지 싸워 노예무역 폐지라는 쾌거를 이룬 정치가가 영국인 월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이다.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2006)>는 노예제 폐지를 향한 그의 열정과 역경을 담은 영화로, 1807년에 통과된 ‘노예무역 폐지 법안’ 2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졌다. 영화는 고증이 철저한 편이어서 윌버포스가 살았던 18세기 말 영국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16세기부터 시작된 노예무역의 실상도 체감할 수 있게 한다.
    사진설명
    ▶노예선의 참혹한 실상을 고발한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모두가 노예무역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을 때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이 중 극히 몇몇만 그것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칠 만큼 용감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윌버포스는 정치적 재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이 깊은 인물이다.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 만족스런 종교적 삶에 대한 갈망과 현실 정치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친구면서 같은 하원의원인 피트의 소개로 몇 명의 노예제 폐지론자와 만나게 된다. 이 날 클락슨은 노예들의 손과 발, 목에 채워지는 족쇄를 보여주며 “노예들이 아프리카 항구에서 떠날 때 폭 18인치(45㎝), 길이 72인치(182㎝) 만큼의 공간에 갇혀 지내요. 위생시설은 없으며 음식은 거의 없고 물도 괴어 있는 것뿐입니다. 지하실엔 노예들의 배설물과 피가 가득 메워 비어있을 때가 없지요. 이 쇠고랑은 바다로 탈출하는 것을 막습니다”라며 노예선의 처참한 실상을 알려준다. 노예로 끌려왔다가 해방된 에퀴아노 또한 “자메이카로 도착하기 전에 노예의 약 절반이 이미 죽어있습니다. 노예시장에서 팔린 흑인들이 노역을 하게 될 농장에 도착하면 불에 달군 낙인을 찍어요”라며 자신의 가슴에 찍힌 낙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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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이후 윌버포스는 한때 노예선의 선장이었던 존 뉴턴 목사를 찾아가 중요한 메시지를 얻는다. 신에게 봉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가진 정치적 영향력으로 불의와 싸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는 노예제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리고 에퀴아노와 함께 동인도 선창에 가서 노예선을 직접 확인한 뒤 의회에 나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주장을 피력한다. 또한 노예무역 금지법 통과를 위해 뜻있는 사람과 손잡고 캠페인을 펼친다. 이들은 청원과 보이콧, 대규모 군중집회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뜻을 전파하고, 더 많은 탄원자를 모으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여 시민들로부터 탄원 서명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은 국왕을 비롯한 권력세력들의 방해에 부딪히고, 국가수입 상당 부분을 노예무역에 의존하던 영국 의회는 노예제 폐지와 관련된 윌버포스의 건의를 무력화한다. 더군다나 프랑스 대혁명에서 비롯된 반(反)군주제 정서가 영국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서인도 제도에서 일어난 노예들의 반란으로 인해 노예제 폐지운동이 주춤해진다. 친구인 피트 수상마저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혁명 집단과 어울리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윌버포스는 심한 우울증과 건강악화로 지방 친척집에 머물게 된다.

    이곳에서 윌버포스는 정신적 지지자 바바라 스푸터를 만난다. 그는 그녀와 결혼해 안정을 찾으면서 다시 노예제 폐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인도로 항해하는 모든 노예선의 80%가 중립 미국기를 쓴다는 사실에 주목해 미국기를 올린 배를 사략선(privateer, 私掠船, 적선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민간 소유의 배)이 체포하도록 하는 일명 ‘속임수’ 전략을 펼친다. 그 결과 1807년 결국 노예 매매 폐지안이 마침내 의회에서 통과된다. 윌버포스는 1833년 사망할 때까지 불의와 대적하면서 정치운동을 했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마무리된다.

    아미스타드(1997)
    아미스타드(1997)
    ▶전 세계 애창곡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탄생 배경 이 영화에서는 국경과 종교를 초월한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다. 노예제 폐지를 위한 의지를 불태울 때 윌버포스는 혼신의 힘을 쏟아 이 노래를 부른다. 신앙 여부와 관계없이 전 세계인이 애창하는 곡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 존 뉴튼 목사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지은 가사를 이미 존재하는 곡조에 붙여 만들어졌다.

    실제로 노예선 선장이었던 그는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싣고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났는데, 그때 하나님께 구원을 빌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크리스천으로 개종했다. 이후 누구보다도 앞장서 노예제도에 반대하고 목사가 된 후 노예무역의 과거를 깊이 회개하고 더러운 죄를 사하여준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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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냄새로 가득 찬 노예선 영화 속에서 윌버포스는 노예선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강어귀를 관광하던 상류층 사람들이 탄 유람선을 노예선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탑승객인 의원들을 향해 이 노예선은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배로, 아프리카에서 떠날 때는 600명이 승선했으나 자메이카로 갔을 때는 200명만 살아남았다고 설명한다. 승객들이 배에서 풍기는 냄새를 참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코를 막자 윌버포스는 400여 명의 노예가 이 배에서 병이나 절망으로 사망했다고 하면서 손수건을 치우고 고통에 찬 죽음의 냄새를 깊이 맡아보라고 요청한다.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거의 100일간 항해하는 노예선의 상태는 매우 참혹했다고 한다. 노예들은 쇠사슬로 연결돼 단단히 묶여 뱃멀미로 토하거나 배설을 해도 방치됐으며 그러다가 아프거나 사망한 노예는 가차 없이 바다로 던져졌다. 서인도 제도에 도착하면, 병약한 노예들은 판매 가치가 없어 내버려져 죽게 되고 나머지는 경매에 가기 전에 발가벗겨져 거리를 행진하였다. 팔린 노예들도 사탕수수밭의 힘든 노동 등을 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노예들이 죽었다고 한다.

    벨(2013)
    벨(2013)
    ▶노예무역과 삼각무역 그러면 노예무역은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을까? 먼저 유럽에서 노예를 사는 데 필요한 럼주(酒) 총포 화약 등을 싣고 아프리카 서해안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이들 물건과 흑인을 교환한다. 여기서 일명 흑색 다이아몬드라고 불린 흑인 노예는 초기에는 추장에게 물건을 주고 매입했지만, 1750년 이후에는 수렵이나 약탈로 이뤄졌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흑인을 노예선에 태워 아메리카 대륙으로 데려가 팔고 그 대금으로 설탕, 럼, 향신료, 열대작물 등 식민지 물산을 구입해 본국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유럽 상인의 손으로 신세계에 팔려간 흑인 노예가 300년에 걸쳐 15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삼각무역은 당시 고위험 고수익의 비즈니스였고 많은 젊은 영국인들은 이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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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거된 노예 무역상 자리를 차지한 흑인여성 동상 지난 5월 미국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발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영국에서도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열렸다. 당시 시위대는 콜스턴 동상을 밧줄로 끌어내린 뒤 강에 빠뜨렸다. 17세기 한 무역회사의 임원이었던 콜스턴은 사망 후 엄청난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했지만, 살아서는 흑인 노예와 아동 등 총 8만여 명을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팔아넘겨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철거된 17세기 노예 무역상 동상 자리에는 흑인 여성 동상이 6월에 기습적으로 세워졌다. 동상은 작가 마크 퀸(Marc Quinn)의 작품으로 제목은 ‘솟구치는 힘(A Surge of Power)’이다. 동상은 흑인 여성이 당당하게 오른팔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기저에는 흑인 노예들의 희생이 존재한다. 노예무역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생각한다면 흑인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죄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앞서야 할 것 같다. 흑인 여성의 ‘솟구치는 힘’이 인종차별 없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기대해본다.

    [이미영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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