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국가재난 때 빈민구제 위한 빵 무상배급 나선 로마제국, 결국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 로마 아노나 제도

    입력 : 2020.10.12 16:02:11

  • 나라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누어주는 빵은 과연 약일까, 독일까. 대답이 쉽지 않은 화두겠는데 이때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로마제국의 무상복지다. 로마제국은 시민들에게 왜 공짜로 빵을 나누어주었을까. 단순히 표를 얻고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전부는 아니다. 무상배급을 해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무상복지는 제국 쇠퇴의 원인으로 꼽힌다.

    무분별한 복지정책으로 재정이 고갈되고 시민의 도덕적 해이가 초래됐다는 것인데, 역시 그게 전부가 아니다. 과연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우리도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비롯해 기본 소득제도 등 무상복지가 계속 화두가 되고 있으니 이 기회에 빵과 로마제국의 무상복지에 대해 알아보자.

    로마 시민들은 빵에 무척 민감했다. 로마제국의 식량창고인 시칠리아에 흉년이 들었다거나 이집트에서 오는 곡식 수송선단이 폭풍우로 바다에 가라앉았다는 소식이 돌면 시민들은 공황에 빠졌다. 곡물 사재기가 시작됐고 빵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로마인이 시칠리아를 비롯해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지의 곡물 작황과 운송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데는 이유가 있다. 식량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 데다 종종 식량 공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전쟁이 됐건 흉작 때문이건 혹은 수송선단이 폭풍우로 침몰하거나 해적한테 곡물을 털렸건 곡물 부족으로 빵값이 치솟으며 서민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가끔씩 생겼다. 그럴 때면 빈민들, 평민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정치와 사회가 불안해졌다. 그래서 생긴 것이 배고픈 사람에게 싼값에 혹은 무료로 식량을 제공하는 배급제도, 공공복지 정책이었다. 처음에는 곡식으로 나중에는 아예 빵으로 지급했다. 로마에서는 이 제도를 큐라 아노나(Cura Annona)라고 불렀다. 라틴어로 큐라는 관심·배려(Care), 아노나는 농산물·식량이라는 뜻이지만 원래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곡물의 여신이다. 곡물의 여신이 베푸는 배려, 관심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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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라 아노나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기원전 509년부터 297년 사이의 공화정 초기에 이미 이 제도가 있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으로 로마가 위험에 처했을 때 평민의 동요를 막기 위해 특별히 곡식을 싼값에 배급했다. 정부의 빈민구제 공공복지 제도라고 하지만 이때는 고위 정치인이 개인 재산을 기부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형식이었다. 그것도 빈민에게 정기적으로 공짜 식량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부자들이 곡식을 사들여 시장에서보다 싼값으로 되파는 방식이었다.

    비정기적으로 곡물을 나누어주던 큐라 아노나가 정기적인 사회복지 제도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기원전 133년에서부터 123년 사이, 호민관 가이우스 그라쿠스 형제가 개혁정치를 펼치면서부터다. 가난한 로마 시민 중에서도 14살 이상의 성인 남자를 대상으로 매달 약 33㎏ 이하의 곡물을 시장 가격의 60% 정도 수준으로 싸게 살 수 있게 했다.

    이 무렵 해당자는 약 4만여 명으로 당시 로마 인구의 10%를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때는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켜 해외로부터 곡식이 풍부하게 들어올 때였다. 하지만 날씨에 따라 곡물 생산과 운송이 들쑥날쑥할 때라 곡식 값이 요동을 쳤기에 빈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이런 복지제도가 필요했다. 이후 로마제국이 세력을 크게 넓힌 기원전 1세기, 아노나의 수혜 대상자도 빠르게 늘어났다. 여러 차례의 법 개정을 통해 대상자를 확대했는데, 여기에도 배경이 있다.

    기원전 75년 로마를 포함한 지중해 일대에 홍수를 비롯한 여러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엄청난 기근이 발생했다. 또 기원전 89년부터 63년까지 로마제국의 팽창에 반발해 지중해 여러 도시국가들이 연합해 싸운 세 차례의 전쟁이 있었고 이 와중에 치안공백이 생기자 해적이 출몰하면서 식량난이 심각해졌다.

    사회가 혼란스러웠기에 원로원은 몇 차례의 법 개정을 통해 아노나 대상자를 계속 확대했다. 우선 기원전 73년에 법(Lex Terentia et Cassia)을 개정해 수혜 계층을 늘렸고, 기원전 67년에는 해적이 로마의 식량창고를 습격해 불을 지르고 곡식을 털어가는 사건이 발생해 식량 가격이 폭등하자 역시 법(Lex Gabinia)을 개정해 아노나 대상자를 또 확대했다. 그러다 기원전 58년 선동 정치가였던 호민관 클로디우스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평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중에게 곡물을 무상으로 분배하는 클로아디아법(Lex Clodia)을 통과시켰다.

    선심성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 법은 무상으로 곡식을 분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산 관리인인 섹스투스 클로에리우스를 막대한 양의 곡물을 취급하는 아노나 관장 책임자로 임명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노나의 성격이 변질됐다. 저렴한 가격으로 곡물을 제공하는 빈민구제 제도였던 아노나가 무상으로 곡식을 나눠주고 수혜 대상자도 대폭 늘린 선심성 정책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아노나 개혁 이전까지 수혜 대상자가 무려 32만 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로마 시민 중 30% 내지 절반에 가까운 숫자로 추정한다.

    극단적 포퓰리즘으로 변질된 아노나 제도의 심각성을 파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마침내 무료식량 배급 제도를 수술했다. 무료배급 대상자를 15만 명으로 절반가량 줄였다. 명단을 작성 관리해 부정 수급을 막는 것은 물론 더 이상 숫자를 늘리지 못하도록 고정시켰다. 무료 배급에서 제외된 8만여 명의 로마시민은 카르타고를 비롯한 해외로 이주시켜 정착시키는 방법으로 식량 배급문제를 해결했다.

    카이사르가 줄인 무료 식량배급 대상자는 그러나 뒤를 이은 초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다시 20만 명으로 늘어난다. 기원전 24년 로마 시내를 흐르는 티베르 강이 범람해 로마의 식량 저장창고 상당수가 강물에 떠내려갔다. 그러자 이듬해인 기원전 23년 식량부족에 시달린 로마시민들이 아노나 확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런 일련의 이유로 대상자를 늘렸고 아노나를 황제 직속의 정부 산하 공식기구로 변경했다. 이후 로마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무료 식량 배급제도로 인해 별다른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고, 수혜 대상자 또한 더 이상 늘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쇠퇴의 전환점을 맞게 되면서, 그리고 정통성이 부족한 인물이 로마황제가 되면서 아노나는 다시 빈민을 위한 공공복지에서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의 수단이 됐다.

    먼저 193년 내란으로 황제가 됐고 또 세습 황제 시대를 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아노나 제도를 바꿨다. 이전까지 곡식을 무료로 배급하던 것에서 아예 빵으로 나누어 줬다. 제분과 제빵 비용이 생략되니 쉽게 말해 복지수당 인상이다. 게다가 빵에 더해 올리브 오일도 포함시켰고 생필품인 소금까지 나누어주었다. 서기 270년 아울레리우스 황제 때는 와인과 돼지고기까지 포함시켰다.

    이렇게 아노나가 선심성 퍼주기 정책으로 바뀌고 공짜에 길들여진 대중들이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국가재정이 악화됐고 그 결과 로마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노나는 로마의 권력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특수 구조로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큐라 아노나 제도에 따라 공짜로 지급되는 곡물은 주로 이집트에서 조달했다. 그리고 이집트 토지 중 상당 부분은 로마황제의 직속 사유지였다. 바꿔 말해 시민들에게 지급된 곡식과 빵은 국가에서 지급하지만 사실상 황제의 개인 재산 내지 노블레스 오블리주 형식으로 아노나에 참여하는 귀족의 사유 재산에서 나왔다. 사실상 일정 부분은 황제나 귀족들의 명예이자 의무였던 자선기부가 바탕이었는데,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자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로마제국 후기로 갈수록 아노나의 유지를 위해 부자들이 그리고 국가 내지는 황제가 이탈리아가 됐건 속주가 됐건 농민들을 쫓아내고 농지를 사유화하는 경우가 생겼다. 아노나를 핑계로 권력자들이 땅을 빼앗고 재물을 착복했던 것이다.

    아노나로 인한 재정 파탄도 문제지만 아노나가 부정부패와 사회불안의 원인이 됐다. 무료식량 배급제도 아노나를 로마제국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계기 중 하나로 꼽는 이유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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