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Walking] 경기도 연천군 연천 호로고루, 느긋하게 즐기는 한낮의 여유
입력 : 2020.10.12 14:33:17
요즘 경기도 연천군에 자리한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는 평일에도 사람들로 들썩인다.
이건 순전히 SNS의 힘인데, ‘하늘계단’이란 이름의 성곽 계단이 사진 촬영의 성지로 알려지며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사진이 *스타그램을 채우고 있다. 얼마나 멋진 곳이기에 이리도 인기가 높은 걸까. 호기심보다 걸음이 먼저 반응했다.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산맥에서 시작된 임진강이 모습을 드러내면 바로 이곳이 경기도 연천이다. 이곳, 생각보다 멀다. 그도 그럴 것이 위로는 군사분계선이요, 옆으로는 강원도 철원군과 맞닿아있다. 그러니까 이곳에선 서울보다 개성이 가깝다. 임진강은 이곳 연천에서 철원과 평강을 거쳐 온 한탄강과 합쳐진다. 그리곤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를 흐르는 문산천과 만난다. 마지막은 한강으로의 합류다. 그렇게 이어져 황해로 흘러든다. 물이 많은 곳은 곡식도 많은 법. 연천 호로고루로 향하는 길 양쪽에 드문드문 너른 농지가 눈에 들어왔다. 9월 중순의 벼는 벌써부터 끝이 노랗게 물들었다. 멀리서 보니 노르스름한 벼들이 바람 따라 머리를 살랑이며 익어간다.
예로부터 임진강 유역은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국경이자 격전지였다. 삼국시대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했고 연천에는 고구려 칠중현의 치소(治所·지방 정부 소재지)인 칠중성(七重城·현재 파주시 적성면)이 있었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이 강에서 백제군을 대파시켰고, 신라의 진흥왕은 이 강 남쪽을 점령해 고구려와 국경을 마주했다.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는 바로 그 임진강을 마주보고 선 고구려성(城)이다. 강 가장자리 삼각형 모양의 평지에 마련된 성인데,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구조다. 성의 남쪽과 북쪽은 동서방향으로 길게 뻗은 15m 높이의 자연절벽을 성벽으로 활용했다. 진입이 가능한 동쪽 방향에 길이 90m, 높이 10m, 폭 40m의 견고한 성벽을 쌓아 방어기능을 갖췄다.
북에서 온 광개토대왕릉비
<삼국사기>를 보면 임진강 부근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의 전투 기록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 때마다 호로고루가 언급된다. 그만큼 당시 이곳의 입지가 중요했다. 임진강 하류에서 고랑포까진 수심이 깊어 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야 했는데, 이곳은 수심이 얕아 바로 건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에서 한성(서울)까지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요충지가 바로 호로고루였다. 그런 이유로 삼국시대엔 남쪽에서 진격하는 신라와 백제를 막기 위한 고구려의 국경방어사령부가 있었고,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진 고을의 중심이자 관아가 있는 읍치(邑治)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호로탄(瓠盧灘)이라 불리며 개성으로 가는 주요 교통로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차례에 거쳐 발굴조사가 진행됐다는데, 성 내부에서 건물지와 수혈유구, 대규모 석축집수지, 우물, 목책 등 다양한 유구와 연화문화당, 치미, 호자(虎子), 벼루, 그 외에 많은 양의 고구려 토기와 기와가 출토됐다.
▶공원이 된 고구려의 성, 느긋한 발걸음
전쟁과 피로 얼룩진 수백 년의 역사는 성을 끼고 묵묵히 흐르는 임진강물에 씻기고 무뎌졌다. 그 치열했던 호로고루는 이제 사람을 안고 보듬는, 작지만 알찬 휴식처가 됐다. 주차장에서 내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광개토대왕릉비만이 이곳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2015년에 세워진 이 비는 북에서 직접 모형을 제작해 제공한 일명 ‘북에서 온 광개토대왕릉비’다.
호로고루의 입구에도 큰 비석이 있는데, 커다랗게 쓰인 ‘통일바라기’란 글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 뒤편에 수천 그루의 해바라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왜 이곳에 해바라기를 심었을까 궁금해 주변을 정리하는 분께 물어보니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그분 말로는 8월부터 9월까지 해바라기가 활짝 피는데 올해는 10월 초까지도 팔팔할 것 같아 운이 좋으면 추석에도 볼 수 있을 것 같단다.
TV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진 '하늘계단'
덕분에 해바라기 밭 주변은 커다란 카메라부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이들로 분주하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산 하나 척 꺼내들더니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아까 그분이 또 한마디 거들었다.
“지금은 평일이라 사람이 없는 편인데, 주말이면 커다란 카메라를 멘 분들이 해바라기를 포위하듯 쭈욱 도열해 있어요. 해바라기보다 그 사람들 보는 게 더 장관이라니까.”
어쨌거나 그 해바라기를 헤치고 나서면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그 앞에 호로고루 성이 우뚝 서있다. 성벽을 돌아 뒤편으로 나서면 건물과 집수시설, 우물이 있던 터가 눈에 들어오고 동벽 전망대로 오르는 바로 그 계단, 하늘로 오르는 것 같아 이름 붙여진 ‘하늘계단’이 오롯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오르는 이들, 당연히 많다. 사진이라도 찍으려면 진득하니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기다림의 보상은 달콤하다. 촬영한 사진을 보면 왜 기다려야 하는지 이유가 분명하다. 성벽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면 연천 호로고루 곳곳이 훌륭한 산책코스다. 느긋하게 한낮의 여유를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치면 주차장에 도착한다. 좁은 농로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주차장 한쪽에 특산물을 파는 편의점이 있고, 앞쪽에 화장실도 마련돼 있어 주변 시설을 관람하기 편리하다. 입장료나 주차비는 받지 않는다. 단, 입구에서 열 체크와 함께 명부를 작성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 자유로 이용 시
자유로→문산IC→37번국도→장남면(신라경순왕릉 방향)→원당리배수펌프장→호로고루 주차장
· 3번 국도 이용 시
의정부→동두천→한탄대교 직전 좌회전→37번국도 문산방향→장남면(신라경순왕릉 방향)→원당리배수펌프장→호로고루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