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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혁신 라운지 ⑥ 지속 가능 혁신체질 5대 원칙 | 혁신은 선택 아닌 생존의 조건
입력 : 2020.09.03 10: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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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의 탁월성 경영은 전쟁이다. 동일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동일한 시장에서 동일한 고객을 대상으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누가 ‘더 좋은 제품을 더 빨리 더 싸게’ 공급하는 것이 경쟁의 핵심이다. 경쟁력의 차이는 기업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원부재료와 부품의 조달, 제조와 조립 및 출하 등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진 ‘일하는 방식’이 원가 생산성 품질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운영의 탁월성(Operational Excellence)’이다.
‘운영의 탁월성’은 기업의 내적 역량에 관한 문제다. 기업의 운영 전반을 구성하는 각 기능 조직이 상호 연계성 속에서 일관성 있게 움직이며 탁월한 성과를 창출해 내는 기업체질이다. 이러한 체질과 역량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고, 한 번 만들어졌다고 해서 꾸준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탁월한 성과를 내고 혁신의 모범사례로 이야기되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이유다.
▶속도와 양의 혁신 : 지속 가능한 혁신은 취약 우리나라에 혁신활동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75년이다. 이때를 전후로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폭발적 경제성장이 시작될 수 있었던 배경은 혁신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수출이 아니면 경제성장을 꿈꿀 수 없었던 절박한 환경 속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품질은 국제무대에 설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년 이상 품질개선활동을 추진해 왔던 일본으로부터 QC(품질관리)소집단활동을 도입했다. ‘문제해결 10단계’로 정형화 기법화된 일본식 QC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품질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제조현장의 생산관리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1970년대 QC 도입의 성공 이후, 우리나라 기업혁신의 역사는 해외 선진기업의 ‘성공적 혁신기법’을 도입하는 과정이었다. 1980년대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 1990년대의 6시그마 등 이미 성공한 사례가 있으니, 그 기법을 빠르게 터득하고 활용하여 혁신의 양과 속도에서 그들을 따라잡는 것이 전략이고 혁신이었다. 결과적으로 혁신의 성과에서는 탁월한 성공을 거뒀지만 치밀한 기획을 통해 지속 가능하고 진화 가능한 혁신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량은 취약한 상태가 됐다.
극심한 침체기에는 긴축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혁신동력이 위축된다. 하지만 한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이때야말로 지속 가능한 혁신체질을 구축하는 데 다시 오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기회다. 우선 기업의 생존이 걸린 일이니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기 쉽다. 과도한 투자를 피하는 긴축경영이 기반이 되므로 과도한 투자가 아니라 내부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내실 있게 출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쟁사 또한 머뭇거리고 주저하며 물러서 있다는 점이다. 혁신활동은 상대적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상대가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한 격차는 극복되지 않는다. 경쟁사가 주저하며 물러서 있는 시기는 다시 오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혁신체질은 ‘운영의 탁월성’을 결정하는 핵심가치다. 당장의 성과보다도 혁신의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경영환경의 변화에도 대응하고, 극복하며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기업체질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혁신체질 5가지 원칙 지난 호에서 혁신전략 수립을 위한 ‘혁신 6요소’의 진단과 균형을 설명하면서, 경영자의 철학을 반영하는 혁신 5원칙을 간략히 서술했다. 혁신 5원칙은 경영자의 철학을 기업 전 영역에 투영하는 도구이며, 지속 가능한 혁신체질을 완성시키는 대원칙이다.
첫째, 자율추진의 원칙이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감하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0인 10색’이라는 말이 있다. 변화를 인식하고 기꺼이 참여하는 동인은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많은 기업의 혁신진단 프로젝트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현장에는 구성원들이 ‘몰라서 못하는 문제’보다 ‘알면서 안 하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강제와 강요를 통해 헌신적인 참여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득과 혁신과정의 동행을 통해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전원참여의 원칙이다. 종종 기업의 혁신리더들이 갖고 있는 큰 착각이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대로 직원들이 움직여 주는 것이 혁신’이라는 착각이다. 혁신은 직원들만의 일이 아니다. 혁신에 있어서 그 어느 누구도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 되는 사람은 없다. 모든 개인은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변화하는 주체다. 이는 혁신리더에게도 경영자에게도 예외가 없다. 전원참여의 원칙은 또한, 역할의 분담과 보람의 공유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함께 땀 흘리며 만들어낸 성공적 혁신 결과물에 대한 기여가 있을 때 성취의 보람도 공유할 수 있다.
셋째, 형식배제 원칙이다. 사람은 업무의 부하가 아니라 업무의 비효율성에 더 크게 분노한다. 꼭 필요한 일이라면 밤을 새워도 괜찮지만, 형식적이고 불필요하며 비효율적인 일이라면 작은 시간낭비에도 불만을 토로한다. 혁신의 궁극적 목적은 ‘더 나은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고 성과를 가시적으로 창출하는 일이다. 불필요한 형식은 혁신 마인드로 충만하고 왕성한 실행력을 갖춘 구성원들조차 혁신목표에 몰입하지 못하게 한다. 제조현장은 물건과 장비, 사람이 움직이며 제품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원부재료로 투입된 실물이 부가가치가 높아지며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일하는 곳이다. 현장에서 가치를 갖는 일은 제품을 만드는 것뿐이다. 흔히 현장 작업자는 서류작업을 싫어한다고들 말한다. 틀린 말이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서류작업은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넷째, 속도 차 인정 원칙이다. 혁신활동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들이 움직여야 ‘더 나은 방식’이 만들어지고, 가시적인 성과가 창출되며 ‘차별적 경쟁력’에 다가갈 수 있다. 사람마다 혁신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인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각기 다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분기 1건의 개선테마 완료를, 월 2건의 개선제안 제출을 목표로 세울 수 없는 이유다.
혁신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혁신활동을 시작하는 것보다 모든 구성원이 이에 대한 설득과 이해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충분한 기다림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혁신 전 과정에서 보면 출발점에서의 속도 차이는 궁극적인 혁신성과에 전혀 영향이 없다. 올바른 혁신은 한번 정답을 찾아 100점을 맞고 끝나는 성과를 위한 활동이 아니다.
다섯째, 성취격려의 원칙이다. 긍정적 성과는 인정하고, 부정적 성과는 격려하는 명확한 기준과 운영을 말한다. 혁신에 있어서 인정과 격려는 단순히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행위의 의미가 아니라, 회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혁신방향을 꾸준히 제시해 주는 제도적 장치다.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으면 혁신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간혹, 잘하는 사람 한두 명이 계속 상을 받게 된다며 부족하고 미흡한 구성원에게 수상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경영자들도 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잘하는 사람에게서 잘해야 하는 이유를 빼앗아 버리는 혁신체계는 절대 지속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실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혁신은 도전과 성취의 과정이므로 불가피한 시행착오가 있고 실패와 좌절도 겪는다. 바람직한 실패는 반드시 격려 받아야 한다. 격려 받아야 하는 실패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만 한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추진했어야 하고, 주변의 도움을 포함하여 동원 가능한 모든 역량을 활용했어야 하며, 실패를 통해 얻어진 레슨런드(Lesson & Learned)가 있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체질화된 혁신체계는 일부의 혁신리더들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구성원들이 따르도록 유도하는 일이 아니다. 외부의 다른 기업들이 성공했다는 혁신사례를 모방하고 흉내 내는 일도 아니다. 지금 현재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조직 구성원들의 잠재력이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경영방식이다.
[김기홍 가온파트너스 대표]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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