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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⑳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천재성을 쌓아 올리다
입력 : 2020.09.02 16: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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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건축사’라는 칭호를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미친놈에게 주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라는 말을 듣고, 건축전문학교를 졸업한 안토니오 가우디. 그러나 미친놈에게 준 것이 아니라, 한 천재에게 준 학위임을 증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선이 대세인 시대에 자연을 닮은 곡선, 섬세하고 강렬한 색상과 장식, 동양적인 요소, 과감한 재료의 선택 등이 결합한 가우디의 건축물은, 시대를 앞선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카사 비센스(1878~1880년), 구엘 저택(1885~1889년), 구엘 공장단지 내 지하 경당(1898~1914년), 구엘 공원(1900~1914년), 카사 바트요(1904~1906년), 카사 밀라(19 05~1910년), 성 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탄생 입면 및 지하 경당(1884~1926년) 등 바르셀로나 시내와 인근에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 7개가 1984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럼 스페인을 대표하고 더 나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가우디는 어떤 사람일까?
이런 점에서 가우디는 자유로운 곡선을 통해 건축물을 하나의 유기체로 만들었고, 세라믹 타일을 이용해 전례에 없었던 새로운 양식을 선보였다. 또한 신이 빚어낸 산·바다·식물·동물·나무·구름·동물·곤충 등 자연에서 소재를 가져와 추상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이미지 작업을 통해 건축물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가우디가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으면서 건축학 이론이나 그와 관련된 글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20대에 7년간 사용했던 노트 한 권과 장식예술 박람회를 관람하고 나서 잡지에 기고한 원고, 개인적인 서신 등이 가우디의 건축학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기록물이다.
가우디의 일반 주택 중 두 번째로 건축된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가 구엘 공원을 짓고 있을 때 직물업자로 성공한 바트요 가문으로부터 요청받아 지은 주택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1875년에 건축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 있었는데, 이를 헐고 1904년부터 1906년까지 건축하였다. 바다를 모티브로 해 건물 외벽은 색색의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하였고, 내부는 깊숙한 바다, 즉 해저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리고 카사 바트요 맞은편에는 곡선의 미학을 보여 주는 카사 밀라가 있다. 잘린 돌을 그대로 쌓아 올려 건축한 카사 밀라는 철저하게 직선을 배제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주제로 지은 것이다. 산에서 영감을 받은 가우디는 옥상의 굴뚝을 산봉우리로 표현하였고, 건물 외벽은 부드러운 산 주름을 닮아 곡선이 주를 이룬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기둥은 나무줄기나 그루터기와 같고, 지붕은 산등성이와 산비탈과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그대로 투영된 개인 주택이 바로 카사 밀라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시가지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첨탑이 인상적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66년에 처음 기획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화와 근대화로 인간소외 현상이 일어나자, 한 출판업자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집’ 즉 ‘성당’뿐이고, 가족들이 성당에 모여 기도할 수 있게 의미 있는 성당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성당의 주제는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 등 세 사람의 성스러운 가족과 화목한 가족이다. 가우디가 이 성당을 처음부터 맡은 것은 아니다. 1882년 설계를 부탁받은 건축가 빌랴르가 제자와 50여 명의 노동자가 무보수로 일을 하다가 그만두자, 1883년부터 가우디가 성 가족성당 건축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40년 동안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롯이 성당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쳤다.
마지막으로 구시가지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첨탑이 인상적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66년에 처음 기획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화와 근대화로 인간소외 현상이 일어나자, 한 출판업자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집’ 즉 ‘성당’뿐이고, 가족들이 성당에 모여 기도할 수 있게 의미 있는 성당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성당의 주제는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 등 세 사람의 성스러운 가족과 화목한 가족이다. 가우디가 이 성당을 처음부터 맡은 것은 아니다. 1882년 설계를 부탁받은 건축가 빌랴르가 제자와 50여 명의 노동자가 무보수로 일을 하다가 그만두자, 1883년부터 가우디가 성 가족성당 건축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40년 동안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롯이 성당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쳤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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