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차 시장 대기업 진출 갑론을박, 현대·기아차 대리점에서 중고차 살 수 있을까

    입력 : 2020.09.02 10:03:35

  • 최근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판매 허용 여부를 두고 국내 완성차 업계와 기존 업계가 맞서고 있다. 완성차 5개사(현대·기아·르노삼성·한국지엠·쌍용)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완성차 제조사도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양측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레몬마켓(시고 맛없는 레몬만 있는 시장처럼 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이라 불리는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진출이 허용된다면 소비자들의 편익이 개선될 거란 의견이다. 반면 기존 중고차 업계는 국내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까지 영역을 넓힌다면 산업 독과점이 심화돼 오히려 소비자가 불이익을 받을 거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2013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중고차 매매업은 이후 대기업의 진출이 제도적으로 막혀있다. 3년 기한에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지난해 2월 기한이 마무리됐다. 이후 중고차 업계에선 5년간 대기업 진출을 막는 ‘생계형 적합업종’을 추진했지만 동반성장위원회가 반대 의견을 냈다. 지난해 11월 중고차 판매업의 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반면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하락하고 있다며, 산업경쟁력과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해 일부 기준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중소기업벤처부에 제출한 것이다. 중고차업계는 현재 중기부에 생계형 적합업종 선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이유는 뭘까.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성비가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중고차 시장이 성장을 지속하고 있고, 완성차 업체가 양질의 중고차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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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중고차 판매대수 224만 대, 22조원 시장 지난해 국내 중고차 판매대수는 224만 대(매매업자 간 이전거래 제외)에 이른다. 같은 기간 신차 판매량은 178만 대. 신차 시장과 비교해 약 1.3배 규모로 성장했다. 대당 가격을 1000만원으로 가정하면 시장 규모는 어림잡아 약 2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도 많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중고차 판매업을 진행하고 있는 사업체가 2016년 5829곳에서 2018년 6361곳으로 늘었다. 중고차 업계의 한 딜러는 “이전과 비교하면 중고차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며 “국산, 수입 할 것 없이 차의 내구성이 발전하며 마음에 드는 차를 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전했다.

    표면적으로 신차 시장보다 규모가 큰 중고차 시장에 완성차 업체의 시선이 머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여기에 중고차 수급에 유리하다는 점도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완성차 대리점에서 신차를 구입한 이들이 내놓는 중고차를 대부분 대리점에서 매매 중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수입차 업계와의 역차별이 거론되기도 한다. 지난 7월 28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매출이 수조원대인 수입차 업체들은 인증중고차 사업을 하는데, 국내 완성차 업체들만 묶어두는 건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수입차 브랜드에서는 중고차를 팔거나 살 때 품질을 보증하고 제값을 받게 해주는데 국산차 소비자들은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을 뿐더러 허위·불량 매물에 ‘호갱’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2013년부터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을 때만 해도 수입차 시장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지만 이제는 신차 판매의 15%를 차지하고 인증중고차 사업도 확대됐다”고 전했다.

    페라리 공식 인증 중고차 전시장
    페라리 공식 인증 중고차 전시장
    ▶수입차는 인증중고차 사업 씽씽, 국내 완성차 업체만 역차별 인증중고차는 각 수입차 브랜드의 자체 기술·품질 기준을 통과하고 수리 등의 상품화를 거친 중고차다. 신차를 판매한 브랜드가 직접 자사의 중고 차량을 선별해 주행테스트, 점검 등 자사 기준에 맞춰 기능 검사에 나선다. 약 100여 가지의 정밀 점검을 거쳐야 품질을 인증 받을 수 있다는 게 각 브랜드의 설명이다. 이렇듯 상품화 절차가 엄격하고 비교적 최근 출시된 차량을 매물로 취급하기 때문에 인증중고차의 가격은 일반 중고차 매장에서 판매되는 차량보다 다소 높다. 실제로 BMW의 520d의 경우 2016년 출시 3만㎞ 이하 주행 등 비슷한 조건의 차량이 300만~500만원가량 차이가 났다. 반면 각 브랜드의 사후 관리 서비스는 인증중고차의 확실한 매력으로 꼽힌다. 일례로 무사고 5년 10만㎞ 이하의 인증중고차를 판매하고 있는 BMW는 총 72개 항목의 정밀 점검을 거친다. 구매 혜택도 프리미엄급이다. 12개월 책임 보증 서비스와 전국공식서비스센터의 애프터서비스, 72가지 정밀 차량 체크서비스와 BMW 할부금융프로그램을 제공받는다.

    인증중고차 시장의 강자는 역시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3사다. 수입차 업계에서 가장 먼저 인증중고차 사업을 시작한 BMW는 2005년부터 ‘BMW 프리미엄 셀렉션(BPS)’을 전개하고 있다. 2009년에는 수입차 최초로 ‘BMW 프리미엄 중고차 매매 웹사이트’를 오픈하기도 했다. BMW 관계자는 “인증중고차 고객에게 12개월 책임 보증 수리기간과 투명한 정비 이력, 리스와 할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현재 전국에 18개 전시장을 운영 중인데 지속적으로 인증중고차 전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인증중고차
    메르세데스-벤츠 인증중고차
    지난 2011년 9월 사업을 시작한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8개 전시장을 새롭게 오픈하며 현재 21개의 인증중고차 전시장을 운영 중이다. 품질과 안전성 강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기존 178가지였던 인증중고차 점검 항목을 198가지로 확대했다. 인증중고차 매입 기준도 4년 10만㎞ 이내 운행 차량에서 6년 15만㎞ 이내 차량으로 확대해 선택의 범위를 넓혔다. 여기에 1년 2만㎞의 무상 차량 보증 연장 서비스를 제공하고 24시간 긴급 출동 서비스 등 신차와 동일한 애프터서비스를 지원한다. 2015년 9월부터 ‘아우디 공식 인증중고차 서비스’를 진행 중인 아우디는 101가지의 성능 점검을 실시한 차량을 상품화해 판매 중이다. 현재 서울과 경기 지역 3곳, 부산, 전주, 대구, 원주 등 총 8곳에서 인증 중고차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우디 관계자는 “이용 고객의 요청에 따라 출고되는 모든 차량에 대한 세세한 정비내역과 주행거리 이력 등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 100% 신뢰가 보장된다”고 전했다.

    한 수입차 브랜드 관계자는 “국산차 가격이 높아지고 수입차 가격이 낮아지면서 가격 면에서 차이가 줄었다”며 “국산 신차 가격에 200만~300만원만 추가하면 신차급 중고수입차를 구입할 수 있어 거래가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 일각에선 이러한 인증중고차 서비스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완성차업계의 한 임원은 “중고차 매매업은 차량 매입부터 정비, 판매 등 전 분야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수익을 얻기 쉽지 않다”며 “수입 인증중고차처럼 브랜드가 자사 중고차의 품질을 보증해 브랜드의 신뢰도와 가격을 관리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실제로 수입차 브랜드가 인증중고차 사업에 나선 이유 중 하나는 브랜드의 신뢰도와 차량의 잔존가치 때문이다. 중고차의 품질을 보증하고 일정 수준의 가격을 유지하니 신차 가격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볼보 셀렉트 김포 전시장
    볼보 셀렉트 김포 전시장
    ▶소비자 피해 빈번한 중고차 시장 개선돼야 현재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은 어떨까.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인식 조사’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76.4%가 ‘국내 중고차 시장은 불투명·혼탁·낙후됐다’고 답했다. 부정적 인식의 주요 원인으로는 49.4%가 ‘차량상태 불신’을 꼽았고, ‘허위·미끼 매물’을 꼽은 이도 25.3%나 됐다. 중고차를 사려는 고객이 차량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판매자와 고객 간의 이른바 ‘정보비대칭’이 가장 큰 문제였다. 국내 중고차 시장이 ‘레몬마켓’이라 불리는 이유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고차의 품질과 가격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이어진다면 지금보다 시장 규모가 월등히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앞서 제기된 의견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측에서 제기한 의견일 뿐 내부에선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르노삼성 측은 “내부 검토는 하고 있지만 의견을 낼 상황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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