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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미술, 시장이 아는 미술 ⑦ 저평가된 작품에 눈 돌리는 미술 시장
입력 : 2020.09.01 14: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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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은 그야말로 반토막이 났다. 코로나19의 피해는 생각보다 컸다. 미술전시는 줄었고 경매시기도 원활하지 않았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의 매출액은 489억7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금액은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등 국내 8곳 미술품 경매사의 상반기 온·오프라인 거래액이다. 지난해 상반기(약 826억원)보다 40%, 2018년(약 1030억원)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온라인 거래액은 132억원 규모로 작년(127억원)보다 늘었다. 반면 오프라인 거래액이 감소했고, 서울옥션 홍콩경매 등 해외 경매가 열리지 않아 총 매출도 감소했다. 낙찰률은 64.5%로 지난해(65.81%), 2018년(68.76%)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협회 측은 “총 출품작이 1만4224점, 낙찰작이 9173점으로 예년보다 많았음을 고려하면 경매 시장 경기가 그만큼 더 안 좋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상반기 출품작은 1만2458점, 낙찰작은 8199점이었다.
국내에서 전시됐던 데이비드 호크니의 ‘Bigger Trees Near Warter’
▶해외 미술 시장도 코로나19 타격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분위기는 해외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아트바젤 측이 최근 발표한 ‘2020 세계미술시장 보고서’를 살펴보면 유수의 아트 페어와 경매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았고, 경매 최고가 경신 뉴스가 연이어 터지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경매 시장도 침체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첫째, 최근 2년간 밀레니얼 세대가 베이비부머보다 6배나 많은 작품을 구매하며 미술 시장의 주 고객층으로 성장했다는 점, 그리고 여성컬렉터의 성장세가 완만히 상승하며 새로운 고객층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과연 새로운 컬렉터의 출현이 미술 시장을 견인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을까.
<매경LUXMEN>의 9월호 미술시리즈는 화제를 낳고 있는 해외작가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운 컬렉터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하지만 아직 최고 경매가를 경신하지 못한 작가들이다.르네 마그리트, ‘Le Chant des Sirenes’
앞서 말한 작가들은 이미 스타 반열에 오른 이른바 ‘검증된’ 작가들이다. 만약 이미 이들의 작품을 가지고 있다면 후에 큰 수익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하지만 우리가 궁금한 것은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 외에 어떤 작가의 작품에 투자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일 것이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처럼 미술품 투자 역시 발 빠른 정보의 싸움이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하루하루 그 명성을 더해갈 동안, 우리는 우리 주머니 사정에 맞는 새로운 가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른바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들을 발굴해 내야 한다. 작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은 물론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심미안, 결국은 향후 10년 내에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작가를 제일 먼저 알아보고 그의 작품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위에 언급한 작가들과 더불어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등 마우스 클릭 하나만으로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스타 작가들 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작가는 누가 있을까. 해외에서는 물론 국내 미술 시장에서도 큰 화두가 되었지만 아직 우리에게 ‘경매 최고가’라는 타이틀이 익숙하지 않아 눈여겨보아도 좋을 작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르네 마그리트 ‘데칼코마니’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담배 파이프 등 친숙한 사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이와 대립되는 요소들을 같은 화폭에 기묘하게 결합시키는 데페이스망(Depaysement) 기법을 사용한다. 데페이스망이란 본래 ‘추방시키다’ 혹은 ‘낯설다’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로 미술사조에서는 ‘상식의 파괴와 시각적 충격을 준다’는 뜻을 갖는다. 일상적인 소재를 엉뚱한 장소에 배치하는 낯선 조합에 시적 이미지를 더하는 것이다. 그 해석은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방식인데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현실의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추구했던 것들이다.
르네 마그리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의 습작’
마그리트의 작품은 평소 교과서나 미술관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때문에 이러한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실제로 얼마에 거래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아시아에서 마그리트의 작품이 경매에 출품된 사례는 단 한 번으로, 작년 상반기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 출품작 ‘사이렌의 노래’가 유일하다. 세로 46㎝, 가로 38㎝의 작은 캔버스에 중절모를 쓴 남성의 뒷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2400만홍콩달러(약 36억8000만원)로 시작해 전화 응찰자 2명이 경합하여 호가가 한 번에 무려 100만홍콩달러(약 1억5000만원)씩 상승했다. 그 결과 5000만홍콩달러(약 72억4000만원)를 부른 해외 전화 응찰자에게 팔리는 쾌거를 거두었다. 아시아권 미술 시장에 서구적 기호가 강해지면서 서양 현대미술작품을 사려하는 컬렉터들의 증가도 한몫했다.
거친 붓 터치와 역동적인 이미지가 강렬하게 각인되는 세실리 브라운의 작품은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추상표현주의 화풍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실제로 작가는 액션페인팅의 대가 윌렘 드 쿠닝과 물결의 규칙적인 붓 터치가 특징인 조안 미첼(Joan Mitchell) 등 추상표현의 거장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국 런던 출생이었던 그녀는 동시대 YBA(Young British Artist) 작가들이 영국을 장악하던 시기, 런던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들과는 다른 행보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개척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던 추상표현주의 화풍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성과 사랑, 죽음과 폭력 같이 금기시되었던 적나라한 주제들을 여성적 시선으로 표현하였다.
세실리 브라운 ‘The Homecoming’
이후 작가는 점차 소재의 명확한 묘사를 거부하며 구상의 틀을 깨고 파편화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작품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고, 단지 무언가 그 대상을 암시하는 형태의 형상만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이에 대해 “나는 성적 행위 자체를 묘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보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어떠한 성적인 긴장감을 얻길 원한다”라고 언급하며 본능적인 성의 본질에 가까워진 감각적인 그림으로 발전했다. 격렬한 붓질로 그려진 살색의 형태들은 애매모호하게 뒤엉킨 사람의 형상을 떠오르게 하며 다양한 성적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까지 기록된 그녀의 최고가 작품은 2018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팔린 1999년 작품 ‘서든리 라스트 서머(Suddenly Last Summer)’로 약 680만달러(약 76억원)에 거래됐다. 두 번째로 높게 거래된 작품은 같은 해 11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 출품된 ‘파자마 게임(Pajama Game)’으로 3900만홍콩달러(약 56억원)에 낙찰됐다.
아야코 로카쿠
록카쿠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완전한 독학으로 신선하고 귀여운 작품들을 완성한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그림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작품은 사뭇 나라의 화풍이 연상된다. 하지만 맨손으로 캔버스나 판지에 아크릴 물감을 바르고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구성으로 특정한 목적 없이 그림을 그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내재한다. 사전에 계획된 구상 없이 시작하여 그림이 서서히 완성되기까지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화폭에는 꽃, 동물, 큰 눈망울의 어린 소녀가 한데 모여 몽환적이고 화려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은 듯 큰 눈과 긴 팔의 어린 소녀들은 작가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해 솔직한 표정을 담고 있다. 절제와 규칙을 배제하고 상상력과 생생한 색채의 사용은 화려하고 행복한 꿈의 세계를 실현한다.
아야코 록카쿠 ‘Untitled’
2007년 일본의 신화옥션 경매에 60㎝ 안팎의 골판지 페인팅이 처음으로 출품되어 52만엔(약 580만원)에 낙찰되었고, 현재까지 500개 미만의 소수 작품들이 경매에서 거래되었다. 올해 7월 32회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 출품된 높이 91㎝의 캔버스 작품은 41만홍콩달러(약 6500만원)에 시작해 무려 66만홍콩달러(약 1억원)에 낙찰되었다. 향후 10년 이내 이 작가의 거래가는 얼마나 상승해 있을지 기대해볼 만하다.
[안재형 기자·이은주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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