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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6) 중세 말기 | 영화 `제7의 봉인`과 흑사병
입력 : 2020.06.05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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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말기(Late Middle Ages)는 14세기부터 15세기 중반까지의 시기로 유럽의 황폐함이 극에 달했던 때다. 흑사병과 기근 등으로 유럽 인구가 급감하고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까지 발발했다. 여기에다 십자군 전쟁의 쇠퇴에 따라 중세시대를 강력하게 지배했던 기독교의 권위는 추락했다. 정치적인 이유와 맞물려 로마와 아비뇽에 두 명의 교황이 있게 되면서 이들 교황이 서로 적(敵)그리스도라고 부르며 싸우는 사건까지 발발해 정신적으로도 혼동스런 시기였다.
제7의 봉인(1957)
검은 망토를 두른 저승사자가 등장하고 블로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블로크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며 체스 시합을 제안하고, 저승사자가 질 때까지 삶의 시간을 연장하게 된다.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부질없는 십자군 전쟁을 겪고 흑사병으로 초토화된 지역을 거쳐 온 블로크가 이렇게까지 생명을 연장하려는 이유는 하느님에 대한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믿음이 아닌 확신을, 가정이 아닌 진실을 원했던 것이다.
시즌 오브 더 위치:마녀호송단(2010)
블라크와 옌스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 속에서 퇴폐적 향락을 추구하는 모습을 본다. 시체에서 팔찌를 훔치면서 수입이 짭짤하다고 얘기하는 절도자나 광대와 간통한 유부녀, 살아있는 동안 먹고 마시고 즐겨야겠다는 술집 노인의 말이나 술판 위에서 억울하게 곰 행위를 하게 된 광대를 보고 광분하며 즐기는 술집 사람들에게서 당대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실제로 흑사병의 공포 속에서 종교에서조차 희망을 찾지 못한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빠져든 것은 퇴폐적인 쾌락이었다고 한다. 어차피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쾌락을 통해서라도 두려움을 잊고자 했던 것이다. 흑사병을 피해 도피한 젊은이들이 들려주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실린 에피소드에는 당시의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이야기 안에는 위선적인 성직자와 귀족들이 벌이는 일탈과 세속적이고 쾌락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반면 극단적인 고행을 통해 두려움을 잊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을 신의 분노라 여기고 죄의 회개를 고행으로 증명하려고 했다. 그들은 현세적 가치를 조롱하고, 죽음 뒤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채찍질로 서로를 때리며 돌아다니는 채찍질 고행단도 유럽 여기저기를 순례하고 다녔다. 영화에서는 광대 부부가 코믹스런 공연을 하고 있는 마을에 예수의 상을 앞세우고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며 돌아다니는 기독교도들의 행렬이 나온다. 이들은 구경꾼들을 향해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시시하게 공연을 보고 즐긴다며 조롱하고 저주의 예언을 퍼붓기도 한다.
‘죽음의 춤’과 마녀사냥
15세기에는 육체적 쾌락이나 종교적 광기가 식어가고 죽음과 함께 ‘모두 덧없이 지나가리라’는 성찰이 나타나면서, ‘죽음의 춤’이라는 미술장르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죽음의 보편성에 대한 알레고리를 묘사하는 ‘죽음의 춤’은 시체들이나 의인화된 죽음이 살아있는 자들과 만나거나 무덤 주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으로 그려졌다. 이는 스웨덴을 포함한 전 유럽에서 수많은 교회 벽에 그려져, 어떤 인간이든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영화에서는 짙게 드리운 구름 아래에서 블로크를 포함한 일군의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언덕을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의 춤’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이 영화 속에는 ‘마녀사냥’의 모습도 그려진다. 페스트의 원인으로 지목된 소녀는 자신 속에 악마가 있다는 사제와 병사의 말을 믿고 불속에서도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끔찍하게 화형을 당하고 만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15세기 이후 권력을 가진 종교집단이 악마의 하수인으로 마녀를 지목하고 죽임으로써 혼란의 책임을 전가하고 안정감을 찾으려 했던 광신도적인 현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녀사냥은 특정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혼란 상황에서 희생양을 찾으려는 현상은 오늘날에도 사회 곳곳에서 재현되기도 한다. 중세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은 오늘날 코로나19로 나타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타민족, 타인종에 대한 비이성적 혐오 행동이 극심하게 일어나 바이러스 못지않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선진국으로 떠받들어지던 유럽과 미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의료시스템마저 붕괴되면서 부실한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난 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구원의 답은 사랑과 소소한 일상의 행복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캐릭터인 광대 부부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사랑하는 소박한 부부이다.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은 광대 부부의 가족 사랑과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서 구원에 대한 답을 찾는다. 신의 침묵에 절규하며 공허함으로 고통받는 블라크도 광대 부인 미아가 건네는 산딸기와 우유를 마시며 잠시 모든 고통을 잊고 현세적인 행복의 순간을 경험한다.
보르히아: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황(2006)
<제7의 봉인>에서 베르히만은 쾌락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려는 자와 참회자, 채찍 고행단처럼 고통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려는 자 모두를 무가치한 행동으로 바라본다. 특히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고행단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던진다. 사실 흑사병이 전 유럽으로 크게 번진 데에는 ‘흑사병이 신의 징계’라는 인식이 큰 몫을 차지했다. 교황 클레멘스 6세는 1350년을 성년(聖年)으로 선포했는데, 성년에 고해성사를 하고 로마의 성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을 찾은 참배자들에게는 모든 죄가 사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사면년(大赦免年)의 선포였다. 여기서 ‘성년’은 특별히 기념할 일이 생겼을 때 교황이 선포하는 행사년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자 질병에 시달린 수많은 이들이 병의 치유가 아닌 죄로부터의 사면을 위해 로마 순례 여정에 동참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이 병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 흑사병에 대한 무지도 전염을 가중시켰다. 많은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가 병원균을 옮긴다고 생각해서 닥치는 대로 죽였고, 이는 쥐의 번식을 도와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흑사병이 신의 징계라는 인식과 질병에 대한 인간의 무지는 결국 유럽에서만 2년 반 동안 2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이러니한 것은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자 자연히 인건비가 상승했고, 부와 권력을 누리던 지주들이 파산했으며, 정치나 경제, 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상업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사회와 경제의 유동성도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주의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픈 상황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아이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모와 자녀 간에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길어졌다. 의료시스템과 사회보장제도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세계 분쟁 지역에서 휴전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매연과 공기오염, 미세먼지 걱정이 줄었고 인도 북부지역에서는 맑아진 하늘 덕에 30년 만에 히말라야 설산이 보인다고 한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자연에게는 치유의 기회로 다가오는 것이다. 역설적이다. 삶과 죽음,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 세계가 하루 빨리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새로운 세상을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이미영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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