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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미술, 시장이 아는 미술 ④ 한국 현대 미술 시장을 이끄는 작가
입력 : 2020.06.04 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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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억원. 지난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기록한 김환기의 작품 ‘우주’의 낙찰금액이다. 경매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무려 153억원이나 된다. 한국 미술 역사상 최고가다. 최근 갤러리 현대 창업 50주년 기념전에 이 작품이 전시되자 코로나19의 영향에도 마스크를 착용한 관람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만큼 걸작의 귀환이 반가웠다. 미술계 입장에서도 보배로운 순간이지만 컬렉터 입장에선 어쩌면 꿈이 현실이 된 동화 같은 성공스토리 중 하나다. 과연 어느 작가의 어떤 작품이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까. 흔히 미술계에선 가치 있는 작품을 제대로 고르는 몇 가지 방법이 회자되곤 한다. 그 중 하나는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작가의 작품’이다. 뛰어난 작가의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환금성이 좋은 작품’이다. 아트테크의 기본이랄 수 있는데, 미술 시장에서 찾는 이들이 많은 작품이 곧 환금성이 좋은 작품이란 의미다. 마지막으로 ‘해외활동 경험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다. 해외 컬렉터가 주목하는 작가의 작품은 가격 상승세가 월등히 높다. 그런 의미로 <매경LUXMEN>이 이달에 준비한 미술시리즈의 주제는 ‘작가’다.
프랑스 베르사유궁 정원에 설치된 이우환의 '관계항'
사회 전반에 걸쳐 대내외적인 불안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미술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작품을 사는 컬렉터들은 높은 수익성을 기대하기보다 안정적인 수익 또는 적정 가격 방어선을 지켜주는 작품들로 시선이 가고 있다. 이 점은 미술품 경매 시장의 거래 작가군이 다양하게 거래되기보다 양극화 양상을 보이는 현상으로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즉, 미술계 내에 오랜 인지도를 쌓은 작가나 ‘2차 시장’인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재판매가격 선이 탄탄히 구축된 작가의 작품은 꾸준히 시장 신뢰를 얻고 위탁과 판매가 진행되는 측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단적인 사례로 코로나19 여파가 확산돼 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지난 3월, 서울옥션 제155회 미술품 경매에 이우환 작가의 출품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출품된 5점은 모두 성공리에 낙찰되었으며 4000만원에 시작한 1976년 종이에 목탄 작품은 경합 끝에 6500만원에 낙찰됐다. 이날 출품된 이우환 작가의 5점에 대한 낙찰 총액은 6억5500만원이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작품 구매 욕구가 있는 국내 미술계 소비층은 흔히 이름값 있는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고 평시 대비 저렴하거나 안정적인 작가의 좋은 작품이 경매에 출품될 때 사고자 하는 수요세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한국 미술 시장을 지탱하며 세계 미술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현대 미술계의 작가는 누가 있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그 대표 작가들로 윤형근, 박서보, 이우환을 소개하고자 한다.
윤형근 1989년작 ‘Burnt Umber & Ultramarine(갈색과 청색)’. 사진 제공=PKM갤러리
2019년 5월 세계 영화계에 영화 <기생충>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의 사건이 있을 즈음 이탈리아의 포르투니 미술관(Palazzo Fortuny)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2019년 5월 11일~11월 24일)에 맞춰 열린 윤형근의 대규모 회고전에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전시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윤형근 전시의 순회 형식으로 성사돼 비엔날레 기간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로 손꼽혔다. 더불어 올해는 뉴욕의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David Zwirner)에서 개인전이 개최되는 등 유럽과 미국에서 윤형근의 작품이 국제적 인지도를 쌓게 됐다. 윤형근의 작품은 국내 및 세계 미술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활발히 거래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내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 다시 한번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1928년생인 윤형근은 한국전쟁과 유신정권 등 근현대사의 굵직한 역경을 몸소 겪으며 자신의 삶과 예술혼을 자연으로부터 얻은 색감에 담아 추상 형식의 단색조 작품으로 선보였다. 그의 생을 들여다보면 194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국대안(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 운동’에 참여하며 구류당하기도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학창 시절 시위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끌려가는 사건을 경험하고 전쟁 기간 중 피란을 가지 않고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1956년에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었다. 숙명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1973년에는 학내 부정입학 사건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몰려 교직에서 물러났다.
여러 사건을 경험하며 그의 작품세계에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장인이자 스승인 김환기의 영향을 받았던 초기 작품 형태에서 벗어나 그의 작품은 점차 어두운색이 활용된 기하학적 기둥이나 색면의 형태로 표현됐다. 윤형근은 청색(Ultra-marine)과 암갈색(Umber)의 혼합으로 리넨이나 한지 위에 스며들어 배어 나오도록 하는 형식을 구축했다. 화폭 위에 차곡차곡 쌓인 어두운 색감은 기둥 형상이나 넓은 색면으로 번지고 흘러내리며 마치 동양의 수묵화처럼 여백의 공간과 어우러져 독창적 형태가 완성됐다. 이러한 작업은 추사 김정희의 서예와 더불어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된 하나의 평면 공간이자 작가의 정신세계인 것이다. 윤형근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인근에서 거대한 나무가 오랜 세월 흘러 쓰러져 흙으로 변해가는 신비로운 광경을 보며 자연의 섭리를 깨달았고, 그 색을 자신의 회화로 가져왔다. 나무가 썩어 흙빛을 띠며 만들어낸 색감은 윤형근에게 가장 자연적이고 본질로 회귀하는 색으로 인식됐다. 물감의 반복적 칠하기의 수행과 화폭 위에 스며드는 성질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한 실험을 통해 윤형근만의 깊은 울림을 만들어 냈다. 그렇기 때문에 윤형근의 작품은 자연적 색감으로 표현한 작품이자 자신의 삶의 결과물이며 숭고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국내 미술 시장 블루칩 작가 중 한 명인 윤형근의 작품은 1977년작 <Umber-Blue>가 2016년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4억7000만원에 작가 최고가 낙찰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작년 10월에는 36.8×24.6㎝의 1970년대 중반 제작된 작품이 경합 끝에 약 4200만원에 낙찰되어 주인을 찾아갔다.
박서보 ‘묘법 No. 110113’(130×90㎝). 사진제공=박여숙화랑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의 단색화> 전시가 열렸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한국 미술 시장에 모노크롬 회화(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단색조 회화)의 성격인 ‘단색화’ 작품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색화로 불린 이 사조의 대표격인 작가가 바로 박서보다. 유명세와 인기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에 영향을 끼쳤고, 2016년에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등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전시가 주로 열리는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프랑스의 페로탕 갤러리, 홍콩 아시아소사이티 등 세계 곳곳에서 박서보의 전시가 열렸다. 국내에는 2019년도 5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려 그의 작품세계를 미술 시장 컬렉터뿐 아니라 대중들이 가깝게 접하는 계기가 됐다. 박서보의 작품은 <묘법-描法-Ecriture>이라는 제목이 명기되어 있다. 작가는 ‘묘법’은 마음을 비우는 것과 같은 것으로, 표현하기보다 그것을 감춤으로써 한 단계 승화된 미의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어원적 의미는 ‘쓰기’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릴 묘(描)’는 동양화의 개념 가운데 작가가 긋는 선의 행동을 내포하고 있다. 즉 작가의 정신세계와 인격 등이 내재된 반복적 선인 것이다. 박서보의 회화세계는 1950년대를 기점으로 출발한다. 이 당시 박서보는 한국전쟁 이후 국내 미술계에 영향을 끼친 앵포르멜 화풍을 흡수하며 전위적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로 넘어오며 기존 화풍에서 벗어나 형상을 제거하며 기초적인 요소만 남긴 ‘묘법’이 등장했다. 이때부터 규칙성과 반복성에 기초를 두며 작가 자신의 행위가 캔버스에 그대로 드러나는 회화를 그렸다. 이러한 초기 묘법은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마르기 전에 연필로 반복적인 선을 긋는 행위가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작가의 반복적 수행이 들어간 결과물이자 자신을 비우는 개념이 반영된 작품이다.
연필 묘법에서 어떠한 대상을 구체적으로 그리려 하지 않는 무목적성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우연성을 보여준다. 즉 반복의 행위 속에서 정신적 수양을 거치고 자연과 일체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1980년대부터 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변화된 양상의 묘법을 선보였다. 한지는 이후 박서보에게 ‘반복과 지우기’라는 성찰의 개념이 바탕이 된 묘법의 개념에 알맞은 소재로 적극 활용됐다. 자연의 소재인 한지의 물성이 완벽히 작가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더욱 매료됐다. 닥나무 줄기에서 추출되어 오랜 시간에 걸쳐 제작된 한지는 친숙하고 부드러운 물성으로 거부감 없는 소재로, 반복적 긋기 행위를 그 어떤 매체보다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재료였다. 한지가 안료 자체를 흡수해버리며 번져가는 물성의 특징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긁거나 막대 등으로 밀어내 형성되는 표면의 질감은 화면의 패턴을 만들고 지그재그 선이 조화를 이뤄 작가의 신체적 행위가 투영된 작품으로 완성된다. 자신을 비워내듯 화면 위에 한지를 밀어내고 지우며 수양의 과정으로 옮겨가는 태도를 나타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박서보는 색채 묘법을 선보이는데 화려한 색감은 감상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작품의 제작 과정은 선과 선 사이의 기본 구조를 잡는 드로잉을 선행하고, 한지를 불려 반죽 형태로 만들고 캔버스 위에 올린다. 유연해진 한지를 막대나 대자에 의해 밀어내며 요철 형태의 선과 골을 만든다. 일부 작품에서는 부분적으로 평평한 색면을 구성해 놓는 변화를 주기도 한다.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는 1970~1980년대 연필 묘법 회화가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단색조회화 작가들의 인기가 정점에 닿았던 2016년 9월 서울옥션 미술품경매에서 1981년 캔버스 사이즈 150호 작품이 11억원에 낙찰된 이력이 있다. 최근 작업인 색채 묘법은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작품들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10호 미만 사이즈 작품 등도 꾸준한 경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 4월 열린 서울옥션 부산세일에서 6호 사이즈 1994년 작품이 2100만원에 낙찰됐다.
왼쪽부터 이우환 작가, 윤형근 작가, 박서보 작가
2019년 6월 부산 시립미술관 내 이우환 공간에 BTS 멤버인 RM이 방문해 이우환 작품을 감상하고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갑작스레 방문객이 증가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대중들과 젊은 층에게 이우환 작품이 좀 더 가깝게 다가가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사실 이우환의 작품은 2010년 일본 나오시마 섬에 작가 미술관이 건립되고 2011년 6월에 열린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전시를 기점으로 세계 미술 시장에 더욱 널리 알려지는 기점이 됐다. 그 이후 세계 유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가 됐고 국내외 메이저 경매회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거래되며 국내 생존 작가 최고가 경매 낙찰 기록을 갖게 됐다. 특히 세계적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를 초대해 전시를 열은 바 있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은 2014년에 이우환을 전시 초대 작가로 선정해 주목을 끌었다. 전시는 이우환의 철학과 작품세계가 전 세계 미술계에 다시 한번 각인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우환은 반복해 점이나 선을 그리는 회화를 선보였고 근래는 큰 캔버스에 사유하듯 하나의 점을 찍는 작업을 선보인다. 때로는 자연물인 돌을 철판 사이에 배치하는 설치 작업으로 자신의 예술 철학을 보여준다.
이우환의 작품세계는 크게 1970년대 점, 선을 주제로 한 작품들과 1980년대 등장하는 바람 시리즈, 그리고 조응과 대화 시리즈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우환은 1956년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현대미술 운동의 사조인 ‘모노하(物派)’ 운동의 주요 이론가이자 작가로 활동했다. 이 당시 자연물과 사물 간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관계항(Relatum) 작업을 선보였고 캔버스에 우주의 무한한 반복성을 보여주는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작품을 완성했다. 점을 찍을 때는 특수 안료로 제작된 물감을 붓에 묻히고 물감이 다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찍어 나간다. 작가의 호흡과 주변 상황이 반영돼 표현되는 회화는 <From Point>, <From Line> 등으로 불린다.
1980년대로 들어서며 이우환은 회화의 양식에 변화를 시도한다. 작가는 ‘점과 선’ 시리즈를 통해 철저한 자기 제어 속에 회화를 선보였는데 그 이후 신체가 경직되거나 떨리는 현상이 나타나 작품 제작에 어려움을 느꼈다. 이후 조금 더 자유로운 형식의 붓질 형태로 표현하는 변화를 취했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바람의 형상을 시각화한 <From Winds>, <With Winds> 등의 작업들이다. 작가는 그야말로 바람이 몰아치듯 붓질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소재를 회화의 영역에서 시각화해 표현했다. 캔버스 외부에 있는 작가의 신체 움직임이 역동적인 필획으로 느껴지며 바람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와 양상을 보이는데,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전개되었던 <From Winds>는 캔버스 전체에 가득한 짧은 붓 자국들이 밀도 있게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이 특징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붓질은 때로 겹쳐지며 뚜렷하게 물감이 응집되는가 하면 거의 닿지 않은 채 여백의 공간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199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 캔버스의 공간은 조응(Correspondance), 대화(Dialogue) 시리즈에서 다시 엄격해진다. 조응에서는 화면 위에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점을 찍고 대부분의 공간을 여백으로 남겨뒀다. 이를 통해 공간에 놓인 점과 여백의 사이에 낯선 관계 속에서 긴장감을 형성했다.
절제된 붓 터치로 칠해진 점과 그 바탕을 하얗게 칠한 캔버스는 대조된다. 물감의 색은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점점 옅어져 캔버스에 동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점의 형태는 간결하고 정적이며 크기, 위치, 간격 및 획의 방향에 따라 다른 점 또는 여백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조응한다. 2006년부터는 대화(Dialogue) 시리즈로 변화를 주며 현재까지 캔버스의 여백의 미를 더욱 살려 작가의 지속적인 주제인 관계성을 표현하고 있다.
국내 경매회사에서 다룬 기존 이우환 작가의 작품 중 고가 거래 이력은 2017년 3월 서울옥션 홍콩세일에서 거래된 1990년 <With Winds> 작품으로 약 16억6100만원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이 2019년 10월 서울옥션 홍콩세일에서 경신됐다. 1984년 제작된 <East Winds> 작품이 약 20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이처럼 바람 시리즈는 그동안 1970~1980년대 제작된 선, 점 시리즈에 비해 시장 거래량과 판매가가 상대적으로 낮았으나 근래 컬렉터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
▶미술품 투자도 학습과 노력이 필요한 분야
앞서 살펴본 3명의 작가들 외에도 사실 국내 미술 시장을 지탱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작가들이 많다. 그럼에도 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 흔히 말하는 시장 선도 작가들의 행보가 더욱 중요하다. ‘그림을 사볼까? 혹은 대체투자로서 미술은 어떨까?’라는 고민을 갖고 있는 컬렉터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국내 작가들 중 미술 시장 거래건수가 많거나, 고가에 거래되는 작가들의 결과 값을 찾아보고 연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 이후 시장에서 인정받고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두고 본인의 관심 작가군을 확장해 나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더불어 국내 미술 시장의 협소한 규모에서도 해외 미술계의 인정을 받고 다양한 전시 참여 및 작품 거래가 이뤄지는 작가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앞서 논의한 작가들은 적어도 국내외 미술계의 확고한 입지를 바탕으로 시장 거래가 활발한 작가들이다. 초보 컬렉터 스스로의 스터디도 중요하지만 미술계 전문가들과의 상담과 소통도 투자의 조언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미술품 경매회사의 다양한 아카데미 프로그램에서 미술사, 미술 시장 관련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작가들의 작업 과정이나 인터뷰 등을 유튜브로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금융권에서도 미술품 컬렉터들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하나은행도 서울옥션과 제휴해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회원제 라운지를 개설해 미술품 구매, 위탁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있다. 미술 시장에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초보 컬렉터들에게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자신의 안목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Interview|아트뱅킹의 세계 “아레테 큐브는 국내 유일의 금융+아트 복합 서비스 채널
자산관리부터 아트 컨설팅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합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자리한 서울옥션 강남센터 2층엔 음악과 영상을 즐기며 특별한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세련된 공간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내려서면 카운터의 청경이 예약을 확인하고 카드키로 문을 열어준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오른편에 커피부터 전통차까지 다양한 음료를 서비스하는 바가 보이고 정면에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커다란 모니터와 하이엔드 오디오시스템이 눈에 띈다.
중앙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의 커다란 스피커 모양의 문을 열면 각각 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라 이름 붙은 2개의 미팅 룸이 있다. 언뜻 럭셔리한 분위기의 핫한 카페가 떠오르는 이 공간은 실은 하나금융그룹이 마련한 초고액자산가 대상 PB센터다. 예탁자산규모 30억원 이상의 슈퍼리치가 주요 고객인 이곳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최고를 의미하는 ‘아레테(Arete)’와 공간이란 뜻의 ‘큐브(Cube)’를 합친 ‘아레테 큐브(Arete Cube)’다.
하나은행 아레테 큐브 센터장
“궁극적으로는 이 공간에서 약 스무 분의 고객을 모시고 작가와의 만남이나 작은 살롱 음악회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요금을 지불하더라도 경험하고 싶은 하이엔드 콘텐츠가 목표지요.”
프라이빗한 공간에 가장 핫한, 일례로 이우환 작가와의 만남이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소규모 음악회를 주관하며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가겠다는 포석이다. 물론 그 계획에 멋진 공간은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정확히 일치한 고객층
서울옥션과 제휴한 이유
그렇다면 굳이 서울옥션과 제휴한 이유는 뭘까. 장 센터장은 “서울옥션과 하나은행 아레테 큐브 두 회사의 타깃 고객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답했다.
아레테 큐브 입장에선 미술경매에 참여하며 활발히 거래에 나서는 서울옥션의 우량 고객이, 서울옥션 입장에선 하나은행의 VVIP고객 중 미술에 관심 있는 고객층이 정확히 일치했다.
“금융 서비스는 물론이고 미술품 거래도 진행할 수 있는 아트컨설팅을 제안하고 전개할 계획입니다. 미술품 담보 대출, 아트펀드, 아트컨설팅 등이 핵심이 될 거예요.”
아레테 큐브는 특히 경매자금 대출 분야도 연구, 계획하고 있다. 쉽게 말해 미술품 경매 시 이 작품에 한해 하나은행에서 어느 정도의 대출이 가능하다고 경매목록에 밝히는 형태다.
“외국의 경우는 일반적인데, 국내에선 예술품에 대한 인식이 대중화되지 않은 상황이에요. 우량고객이 좋은 작품을 갖고 오시면 담보대출을 진행하면서 데이터를 쌓고 경매자금도 대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입니다.”
아레테 큐브에선 고객의 니즈에 따라 프로젝트별로 최고의 전문가를 구성해 토털솔루션을 제안하는 원스톱 뱅킹 방식의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에 아트뱅킹과 문화, 예술 분야의 다양한 콘텐츠를 접목할 계획이다. 장정옥 센터장은 “아레테 큐브는 고객들의 이성과 감성, 그들의 2세, 3세를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파트너를 지향한다”며 “그 완성은 아마도 패밀리 오피스 비즈니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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