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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입을 속이는 최고의 방법, 한민족 입맛에 담긴 쌈밥 사랑 DNA
입력 : 2020.05.07 10: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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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국민음식으로 꼽는 한식이 여럿 있지만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민족음식 중에서는 쌈밥도 빼놓을 수 없다. 삼겹살이나 짜장면 같은 음식은 현대로 넘어오며 사랑받기 시작했지만 쌈밥은 사랑의 역사가 꽤 깊은데, 조상님 중에도 쌈밥 좋아한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도 그 중 하나로 다산이 전남 강진서 유배 살 때 두고 온 두 아들에게 교훈의 편지를 남겼다.
그는 사람이 사는 동안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성실함으로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한다며 살면서 제일 나쁜 것은 남을 속이는 것이니 양심에 꺼리는 일은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다만, 한 가지는 속여도 괜찮은 것이 있으니 자기의 입맛만큼은 속여도 된다면서 입맛을 속이는 구체적인 비법까지 전했다. 무엇을 먹든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순간일 뿐이니 좋은 음식 먹겠다고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필요 없이 어떤 음식이든 달게 먹으면 된다며 쌈밥을 예로 들었다. 꽁보리밥도 상추에 싸서 맛있게 먹으면 비싸고 귀한 요리를 먹는 것 못지않게 입이 즐거우니 입을 속이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인데, 뒤집어 말하면 쌈밥이 그만큼 맛있다는 소리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참고할 만할뿐더러 재미도 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가져라. 화장실(변소)을 비싸게 채우기 위해 정력과 지혜를 다해가며 애쓸 필요가 없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고 난 후에는 모두 소화되어 똑같은 배설물이 될 뿐이니 고급스런 배설물을 남기려고 지나치게 미식에 탐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다산이 남긴 교훈의 의미는 알겠지만 그럼에도 ‘쌈밥이 그렇게 맛있었던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다. 산해진미에 버금갈 만큼의 맛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대부분 한국인이 쌈밥을 좋아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렇듯 다양한 쌈을 먹다 보니 한국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음식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쌈 문화다. 얼마나 쌈을 좋아하는 민족인지 숙종 때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우리 민족은 채소 중에서 잎사귀가 조금 크다 싶으면 모조리 쌈으로 싸 먹는다고 했다. 근대의 육당 최남선 역시 <조선상식>에서 쌈을 우리나라의 특이한 밥 먹는 법이라고 정의했다. 싱싱한 채소를 먹으며 맛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서양의 샐러드와 비슷하고 밥을 싸서 먹는 것은 일본의 김초밥과 비교할 수 있지만 동서양 쌈 문화의 특징을 뛰어넘는 복합과 융합의 맛이 우리 쌈 문화의 특징임을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한민족은 옛날부터 채소에 밥 싸서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소문이 외국에까지 널리 퍼졌다. 이익은 <성호사설>에 원나라 시인 양윤부가 고려 상추에 대한 시를 썼는데 스스로 주석을 달아놓기를 고려 사람들은 익히지 않은 채소(生菜), 즉 상추에다 밥을 싸서 먹는다고 적었다며 우리 쌈 문화가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고 했다. 양윤부가 <난경잡영>에 쓴 ‘고려의 맛 좋은 상추 이야기를 하노라’라는 시에 대한 이야기다. 양윤부는 원나라 혜종 때 사람으로 1354년에 사망했는데 황제에게 올리는 음식을 조달하고 또 맛을 보는 벼슬을 지냈던 인물이다. 원나라 때 끌려간 고려 사람들이 난경에 살면서 상추로 쌈을 싸 먹는 것을 보고 중국에 한때 상추쌈이 유행했다고 한다. 우리의 쌈 사랑이 이토록 극진했는데 얼마나 쌈을 좋아했으면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 먹는다’는 속담까지 생겼을까. 얻어먹는 상황에서도 슬금슬금 눈치 보며 상추에 밥을 싸 먹었으니 쌈밥이라면 체면도 벗어 던졌을 정도다.
귀하신 몸도 예외가 아니었다. 밭일 하던 농부가 즉석에서 푸성귀 따다 고추장, 된장 척척 발라 볼이 미어지도록 한입 가득 쌈 싸먹는 모습이야 예나 지금이나 낯설지 않지만 심지어 왕실 최고 어른마저도 쌈밥의 유혹은 참기 힘들어 했던 모양이다. 승정원일기에 숙종 때 장렬왕후 수라상에 상추가 올랐다는 기록이 보인다. 아무리 신분이 높아도 상추쌈 먹지 말라는 법이 없는데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수라상에 상추쌈을 올렸다는 기록을 승정원일기에까지 남겼을까 싶지만 사연이 있다. 이어지는 내용이 수라간의 실수로 상추에 담배 잎을 섞어서 올렸으니 담당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였다. 대왕대비가 그만큼 상추쌈을 좋아했기에 벌어진 사단이다.
위로는 대왕대비부터 아래로는 농민까지 우리 민족의 쌈 사랑은 옛 문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유방선이라는 학자가 있다. 세종대왕도 뛰어난 학식을 인정해 토론을 하다 막히면 은퇴한 그에게 집현전 학자를 보내 자문을 구했을 정도였던 대학자다. 이런 유방선이 남긴 <태재집>에 쌈밥 예찬 시가 한 수 실려 있다. “병 고치러 산속에 들어가니(避病投山寺) / 산중의 일마다 특이하다(山中事事奇) / 야채로 밥 싸먹으니 부드럽고(野蔬包飯軟) / 고사리국 끓이니 살이 절로 찐다(溪蕨入羹肥)”
병을 고치러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특별한 약초를 캐먹은 것도 아니고 산에서 자라는 산나물을 뜯어다 밥을 싸서 먹고, 고사리를 캐어 국을 끓여 먹었더니 저절로 살이 쪄서 병이 치유가 됐으니 산속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신기하다고 읊은 것이다. 산나물에 싸 먹은 쌈밥이 결국 약초 못지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쌈에다 밥 싸먹는 것을 좋아할까? 뻔한 소리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맛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반찬 없이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로 쌈밥을 꼽았다.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날씨가 점점 더워져서 식욕이 떨어질 무렵 어육진미(魚肉珍味), 그러니까 맛있는 고기나 생선 반찬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름 동안 맛과 영양을 공급해주는 것이 바로 상추쌈이라고 했다. 쌈밥이 맛있었던 이유는 또 있다. 조선시대 쌈밥은 야외로 놀러 가서 먹는 도시락이었고, 채소 잎의 향기가 밥에 스며들어 독특한 맛을 내는 별미 밥이었다. 뿐만 아니라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밥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지혜가 담긴 밥그릇이었으니 쌈밥의 용도가 정말 다양했다. 옛 문헌을 보면 선비들이 놀러 갈 때는 주로 채소에 밥을 싸서 지금의 도시락처럼 가지고 가거나 현지에서 즉석으로 산나물을 뜯어다 별도로 반찬을 장만하지 않고 밥을 싸먹었다. 예컨대 낚시나 천렵 갈 때면 연잎으로 밥을 싸가거나 혹은 고기를 잡는 곳에서 바로 상추나 나물을 뜯어 밥을 싸먹었다.
조선 후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는 “연잎에 밥 싸두고 / 반찬이랑 장만 마라”라는 구절이 보이고 조선 중기 이현보도 ‘어부가’에서 “청하에 밥을 싸고 / 녹류에 고기 끼워 / 노적화총에 / 배 매어두고”라고 노래했다. 청하(靑荷)는 푸른 연잎이니 연잎이 바로 도시락 역할을 했다. 반찬은 장만하지 말라고 했으니 버들가지(綠柳)에 끼워놓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거나 회를 쳐서 연잎 도시락에 싸온 밥을 먹었다. 뿐만 아니라 연잎에 밥을 싸서 먹으면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했으니 연잎, 나아가 연잎을 포함한 다양한 쌈밥의 용도는 다목적이었다. 예컨대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서 연잎은 더위를 물리치고 피를 깨끗하게 하고 잘 돌도록 만든다고 했으니 산나물로 싼 쌈밥을 약초로 여겼던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쌈밥은 평범한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낼 수 있어 맛있는 별미가 되는 데다 자녀에게 교훈까지 전할 수 있고 건강에도 좋다고 여겼으니 역사 깊은 한국의 쌈 문화,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역시 입맛을 속이기에는 최고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6호 (2020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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