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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⑬ 바로크 미술의 거장 화가 파울 루벤스를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만나다
입력 : 2020.02.05 15: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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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40㎞ 정도 달려가면 플랑드르를 대표하는 화가, 파울 루벤스(1577~1640년)의 삶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안트베르펜에 이른다. 시대를 달리한 건축물들이 빨랫줄에 매달린 빨래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곳의 첫인상은, 루벤스의 그럼처럼 우아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무역항이자 벨기에에서 브뤼셀 다음으로 큰 안트베르펜은 루벤스의 마르지 않는 예술적 영혼이 강물처럼 도시를 휘감는다.
사실 우리나라와도 큰 인연을 맺고 있는 화가가 루벤스이다. 지난 1983년 11월 29일 런던 크리스티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격인 32만4000파운드(당시 약 3억8000만원)에 팔린 ‘한복을 입은 남자(LA 폴 게티 미술관 소장)’라는 작품이 바로 그가 그린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동양인은 조선 시대 무관 공복의 일종인 우리의 한복을 입고 있다. 어떤 이유로 조선인을 그렸는지에 대한 정확한 문헌적 배경은 알 수 없으나, 1600년부터 루벤스가 이탈리아에서 8년간 유학을 하는 동안 조선인을 만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안트베르펜은 빈센트 반 고흐와도 인연을 가진 도시로도 유명하다. 1885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반 고흐는 이곳에서 일본 채색판화인 우키요에(浮世畵)에 관심을 두었고, 정식으로 미술 아카데미에 등록해 체계적인 미술 수업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괴팍한 성격과 신경과민 증상이 나타나고, 그림 솜씨가 썩 좋지 않다는 이유로 3개월 만에 아카데미에서 퇴원 조치를 당한 후 파리로 떠났다.
은은한 오르간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벨기에 7대 보물 중에 하나라고 평가받는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과 ‘십자가에서 내려옴’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이 작품은 안트베르펜의 시장이자 길드 조합장이었던 니콜라스 로콕스의 요청으로 그려진 것으로, 프랑스 뤽상부르 궁전의 연작 벽화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라는 작품과 함께 바로크 회화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중에서 ‘십자가를 세움’은 원래 성 발부르카 교회를 위해 그린 것인데, 나폴레옹이 전리품으로 프랑스로 가져갔다. 그 후 프랑스로부터 다시 이 작품을 돌려받아 지금의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놓이게 되었다. 성당 안에는 이 작품들 이외에도 루벤스가 그린 ‘면직’, ‘거만’, ‘성모승천’ 등의 작품이 더 있다. 특히 중앙 돔 천장에 그려진 ‘성모승천’은 루벤스가 바로크 화가의 거장임을 잘 알려주는 듯하다.
바로크의 천재 화가, 루벤스는 23세 때 고향을 등지고 이탈리아로 그림 유학을 갈 때만 해도 재능 있는 젊은 화가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는 8년간 베네치아와 로마에 머물면서 고대미술과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과 화법을 배우고 익혀 서서히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이탈리아 출신의 카라바조와 귀도 레니의 영향을 받아 바로크 화가로서 대성공을 거둔다. 1608년 그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안트베르펜으로 귀향했을 때, 그의 명성은 플랑드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이런 명성을 등에 업고 1609년 플랑드르 총독 알브레호트 대공의 궁정화가가 되어 명실공히 플랑드르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이때 32세의 루벤스는 인문학자 장 브란트의 딸, 이사벨라(18세)와 10월 3일에 결혼하여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쥐었다.
유럽에서 인기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안트베르펜은 루벤스로 인해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도시임엔 틀림없다. 루벤스가 미술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한, 그를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은 이 도시를 찾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그의 희로애락이 담긴 아틀리에를 찾아와 그의 작품과 그의 생각을 공유할 것이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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