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비통’은 왜 ‘티파니’를 인수했을까

    입력 : 2020.02.04 16:27:09

  • 지난 연말 전 세계 럭셔리 업계의 화두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였다. ‘루이비통’을 비롯해 ‘펜디’ ‘지방시’ ‘불가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70여 개 브랜드를 거느린 이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이 주목받은 건 지난해 11월 미국을 대표하는 주얼리 기업 ‘티파니앤코(TIFFANY&Co. 이하 티파니)’와의 인수·합병(M&A) 때문이다. LVMH는 글로벌 사업 확장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총 162억달러(주당 135달러, 약 19조512억원)에 티파니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단순히 인수 금액만 놓고 보면 그룹 사상 최대 규모의 M&A였다. 양측은 공동성명을 통해 “티파니와의 인수합병은 전 세계 보석 시장에서 LVMH의 입지를 강화하고 미국 내 존재감을 확실히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식 계약은 올해 안에 체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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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시장 견인하는 보석, 글로벌 톱 노려사실 LVMH와 티파니의 첫 만남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10월 LVMH가 주당 120달러의 인수를 제안했지만 티파니 측에서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협상을 거절했다. 업계에선 “그럼에도 LVMH가 협상 테이블을 접지 않은 건 주얼리 분야로의 사업 확장 의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18년 세계 보석 시장의 성장률은 7%로 명품 시장의 평균성장률(5%)보다 높았다. LVMH가 앞으로 잠재력이 높은 보석 부문을 강화하고 미국 시장 확대를 겨냥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이번 인수로 보석 부문을 비롯해 럭셔리 업계의 재편도 예상된다.

    그동안 전 세계 보석·시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기업은 ‘까르띠에’를 보유한 스위스의 ‘리치몬트(RICHEMONT)그룹’이었다. 파울린 브라운 LVMH 전 북미담당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치몬트그룹은 LVMH의 20~25% 규모지만 보석·시계 부문에선 LVMH보다 2배 이상 크다”고 답했다. 명품, 뷰티, 유통 등 럭셔리의 A부터 Z까지 모든 걸 갖고 있는 LVMH가 단 하나 아쉬웠던 게 바로 보석이었다. 2018년 무렵 리치몬트 그룹의 보석·시계 부문 매출은 약 100억유로에 이른다. LVMH는 이번 티파니 인수로 이 부문 매출이 약 96억달러에 이르게 됐다. 자연스럽게 글로벌 톱2 반열에 오르며 대결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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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시장 재편이 아쉬운 건 LVMH에 이어 럭셔리 분야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는 프랑스의 ‘케링(Kering)그룹’이다. ‘구찌’ ‘입생로랑’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케링그룹은 ‘부쉐론’ 등 보석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LVMH가 보유한 불가리, 쇼메, 여기에 티파니까지 더해진 보석 라인을 당장 뛰어넘을 뾰족한 묘수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업계에선 LVMH의 티파니 인수가 알려진 시점에 케링그룹의 보석·시계 부문을 이끌어오던 최고 경영자가 사퇴한 사실을 두고 이러한 시장 상황과 연결하기도 한다.

    LVMH는 세계적인 부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지휘 아래 공격적으로 세를 불려가고 있다. 패션뿐만 아니라 주얼리, 레저, 유통 등 분야도 다방면이다. 2018년 12월에는 고급 호텔 리조트 체인 ‘벨몬드’를 32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티파니와의 인수합병 이후 LVMH는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인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된다.

    티파니 트루 파베 링
    티파니 트루 파베 링
    ▶인수합병의 귀재, LVMH그룹

    사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전 세계 럭셔리 업계는 하나의 브랜드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가족 회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이 전문기업인 주도 아래 수십 개의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그룹으로 바뀌게 된 배경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있었다. 그가 인수합병의 귀재였기 때문이다.

    LVMH의 사업 확장을 이해하려면 그룹의 성장과정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LVMH그룹은 루이비통, 펜디, 셀린느, 마크 제이콥스, 벨루티, 불가리, 쇼메, 위블로, 제니스, 크리스찬 디올, 모엣 샹동 등 수십여 개의 최고급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공룡 그룹이다. 2010년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면세사업 협의를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당시 이부진 호텔 신라 전무가 직접 인천국제공항에 나갔던 이유도 명품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LVMH의 위상 때문이었다. 블룸버그 통신의 억만장자 지수를 살펴보면 지난해 아르노 회장의 재산은 순자산 1030억달러(약 120조2010억원)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힘과 재력 또한 대단하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1987년 아르노 회장이 루이비통을 인수하며 탄생한 LVMH그룹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성장곡선을 그려왔다. 패션·가죽 부문에서 1988년 지방시, 1993년 겐조, 1996년 로에베와 셀린느, 1997년 마크 제이콥스, 2000년 에밀리오 푸치, 2001년 펜디와 도나 카렌을 인수했고, 주류부문은 헤네시 꼬냑 인수 후 브라질과 호주,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포도밭을 사들이며 명품 와인 제조에 몰두, 모엣 샹동, 돔 페리뇽, 크뤼그 등의 브랜드를 인수했다. 그의 와인 사랑은 집안 혼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녀 델핀 아르노는 2005년 이탈리아 와인 명가 ‘간치아’의 알렉산드로 간치아 CEO와 결혼했다.

    LVMH그룹의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250억유로를 돌파했다.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한 수치다. 그룹의 전체 매출을 이끄는 패션과 가죽 부문이 20%나 성장했다. 핵심브랜드인 루이비통이 앞에서 끌고 크리스찬 디올이 뒤에서 밀었다.

    LVMH그룹의 성공전략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공격적인 인수합병이다. 1984년 경영난에 빠진 크리스찬 디올을 인수하며 시작된 LVMH의 인수합병은 70여 개로 브랜드 수를 늘리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르노 회장은 명품의 역사와 전통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인수하는 게 훨씬 시너지 효과가 높다고 판단했다. 둘째, 디자이너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단행됐다. 일례로 아르노 회장은 크리스찬 디올의 전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패션쇼에 혹평이 일자 “쇼킹하지 않으면 창조적이지 않다”며 극찬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브랜드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셋째, 명품에 대한 꿈과 환상을 만들고 퍼뜨렸다. 소비자에게 언젠가 꼭 사고 싶은 브랜드, 제품이란 환상을 심어주며 상류 사회와 일류 브랜드의 마케팅을 멈추지 않았다. 루이비통컵 요트대회와 유명 스포츠 스타 마케팅 등이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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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지지 않는 관심, 아시아 대표 시장 한국

    아시아를 대표하는 럭셔리 시장 중 하나인 한국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매년 아르노 회장이 직접 한국을 찾아 그룹의 주력 브랜드 매장을 방문해 시장을 챙기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인 ‘루이비통 메종 서울’의 리뉴얼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해 명동에 자리한 롯데와 신세계면세점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처럼 아르노 회장이 한국에 공을 들이는 건 불황에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국내 럭셔리 시장 때문이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제품 가격을 인상해도 루이비통 매장의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며 “여전히 백화점 매출의 효자 브랜드”라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LVMH그룹의 일원인 세계 최대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도 국내에 진출했다. 해외 직구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자체 브랜드와 백화점 1층에서 찾아볼 수 있는 럭셔리 화장품을 중심으로 소비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세포라는 국내 진출 후 매월 1개꼴로 신규 매장을 열며 한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루이비통 메종 서울. 지난해 11월 쌍용건설이 2년여의 리모델링을 마무리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루이비통 메종 서울(LVMS)’.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들어선 이 건물은 ‘빌바오 효과’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국내 최초의 작품이다. 건물 전면에는 유선형 유리블록을 쌓아 부산 동래학춤에 등장하는 학(鶴)이 내려앉은 듯한 모습을 재현했다.
    루이비통 메종 서울. 지난해 11월 쌍용건설이 2년여의 리모델링을 마무리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루이비통 메종 서울(LVMS)’.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들어선 이 건물은 ‘빌바오 효과’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국내 최초의 작품이다. 건물 전면에는 유선형 유리블록을 쌓아 부산 동래학춤에 등장하는 학(鶴)이 내려앉은 듯한 모습을 재현했다.
    티파니 인수 두 달 만에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원석 사들여 그런가하면 최근 뉴욕타임즈(NYT)가 루이비통이 178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원석을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슈웰로(Sewelo)’란 이름이 붙은 이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 보츠나와의 카로웨 광산에서 채굴됐다. 보츠나와어로 ‘희귀한 발견’이란 뜻이다. NYT는 “티파니 인수 후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원석까지 사들인 건 고급 보석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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