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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극찬받고 제주로 간 ‘포방터 돈가스’ 누군가에겐 버킷리스트, 해보고 싶은 체험
입력 : 2020.02.04 16: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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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는 백종원 천하다. 백주부란 푸근한 별명과 요리에 관련한 해박한 지식을 내세워 안방시청자를 공략해온 그가 이제는 방송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가 주도한 여러 방송 프로그램들은 연이어 시청률 대박을 치고 있고 나올 때마다 인기검색어를 점령하며 인기몰이다. 이 중 화룡정점은 돈가스가 찍었다. 그가 진행하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영세한 동네식당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침체된 지역상권을 되살리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이 중 작년 말께 방영된 서울 서대문구 ‘포방터시장편’에는 돈가스 가게가 한 곳 나온다. 해당 가게는 맛은 물론이고 음식에 대한 사장님의 철학과 원칙이 높이 평가받아 약간의 개선만을 거쳐 ‘핫플레이스’로 거듭났다. 늦은 오전께 가게가 문을 연 뒤 번호표를 받은 수십 명의 사람만 돈가스를 먹을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전날 밤이나 새벽부터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돈가스 맛집이 됐다. 이처럼 사람이 몰리자 소음, 담배연기 등 문제가 발생했고 임시방편으로 대기실을 따로 마련하기도 했지만 결국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결국 해당 가게는 결국 포방터를 떠나 제주도로 이사했다.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영업 개시 2주차 기준으로 새벽 5시가 안정권으로 보였다. 7번째쯤 줄을 선 고등학생 단짝 5명은 전날 밤 11시에 인근 편의점에서 만나 밤새운 뒤 새벽 3시 반께 줄을 섰다고 했다.
줄지어 있는 사람들은 각자 캠핑용 의자나 두꺼운 담요를 준비해 중무장한 상태였다.
이날 제주는 새벽녘 강한 바람과 국지적으로 내리는 강한 소나기성 비로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었다. 가게 위 아늑한 공간을 지나 콘크리트 바닥으로 이어진 줄에 합류한 원정 대원들은 대부분 서 있거나 울퉁불퉁한 낮은 돌 울타리 위에 불편하게 엉덩이를 잠깐씩 올리거나 했다.
오전 7시가 넘어가면서 제주의 아침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주변이 어스름하게 밝아짐에 따라 움츠려 쪽잠을 청하거나 추위를 피하던 원정 대원들도 스트레칭에 나섰다. 여러 명이 함께 온 경우 번갈아가며 줄을 서며 차에서 몸을 녹이거나 쪽잠을 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7시 반께 ‘ㄱ’자 줄은 더 늘어나 ‘디귿(ㄷ)’자를 이루었다. 화장실에 갈 겸 바로 옆에 위치한 ‘백종원 호텔’을 다녀왔다. 해당 호텔은 백 대표 브랜드의 식당, 베이커리, 카페 등이 입점해 있었다. 방송 프로그램의 인연으로 포방터 돈가스 역시 이곳으로 자리 잡았다. 호텔 앞 주차장은 빈곳을 찾을 수 없었고 조식을 먹기 위해 몰려든 투숙객들로 식당 역시 만석이었다. 크리스마스날 호텔에 문의해본 결과 2인 기준으로 가장 빨리 숙박할 수 있는 날짜는 3월 1일이라고 했다.
오전 9시 40분께 여자 사장님께서 먼저 출근했다. 주변에서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커졌고 대장정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10여 분 후 남자 사장님도 출근을 마쳤고 가게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오전 11시부터 접수한다는 공지와 달리 오전 10시 10분께 여 사장님이 한 손엔 펜, 한 손엔 종이를 들고 등장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5시부터 줄을 서서 장장 6시간에 걸친 인고의 시간 끝에 얻은 열매였다. 접수는 간단했다. “2명이고, 치즈가스 하나 등심가스 하나고요. 카레 추가 2인분 할게요.” 5초 정도 걸렸을까. 오후 1시 50분께 가게에 도착하자 인자하신 여 사장님께서 자리를 안내해줬다. 오후 2시 타임에 입장한 팀은 약 10팀. 동시 입장이 이뤄지며 줄을 선 순서대로 자리 배치가 이뤄졌다.
시간별 변화
여전히 긴 줄, 새벽 5시에 줄 서야
치즈가스 역시 족히 1m는 늘어날 듯한 쫀득한 치즈의 맛깔 나는 매력을 뽐냈다.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면 식당이 정리되고 오후 3시 타임 손님들이 들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4번의 분주한 루틴이 반복되면 새벽부터 분주했던 식당의 하루도 마감된다. 가게를 다녀온 후 많은 지인이 진짜 그 돈가스가 10시간씩 투자해서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냐고 물어왔다. 그 와중에 해당 돈가스 번호표를 받기 위한 ‘대리 줄 서기’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뉴스도 나왔다. 대신 줄을 서주는 대신 1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 정말 개인적으로 대답한다면 그 정도 시간을 한 번쯤 투자해 먹어볼 만은 하지만, 굳이 10만원을 내서 먹는 것까진 권하고 싶진 않다. 물론 맛있다.
처음 방영을 시작한 지난해부터 제주도로 이전한 지금까지도 포방터 돈가스는 이슈의 중심에 서있다. 제주도 이전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한 내용을 다룬 해당 방송이 나간 지난주, 하루 종일 해당 가게 관련 인기검색어가 상위권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밤에 포방터 돈가스의 제주도 이야기가 방영된다고 한다. 해당 가게에서 기나긴 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게는 이른 시일 내에 직원을 충원하고 수량을 늘려 영업시간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2월 23일 사장님은 인스타그램에 채용 공고를 올려 “최소 5년간 제주에서 저희와 함께 노력해주시길 바란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지원해 달라”고 글을 올렸다.
사장님은 여전히 더 나은 방법을 마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새벽부터 이어지는 줄 서기 경쟁도 언제까지 이어질 지 알 수 없다. 휴가를 떠나 업무 때보다 더 혹독한 기다림의 시간을 버텨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두 사장님 부부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봤다. 묵묵히 돈가스를 준비하는 무표정한 남 사장님과 서빙에 정신이 없는 여 사장님의 과묵한 표정 그 행간에서 보다 나은 상황을 마련하고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사장님들의 고민이 엿보이는 듯했다. 우연히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포방터 돈가스를 먹어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난 것만으로도 매우 흡족하다. 앞으로 또 몇 년 뒤에 돈가스를 먹을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더욱 나아진 상황에서 여유를 품은 사장님 부부의 미소를 찾아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제주도를 떠났다.
돈가스 메뉴
해당 돈가스집이 제주로 쫓겨난 이유 중 하나는 밤새 줄을 선 사람들의 소음으로 인한 주변 민원이었다. 주거지와 동떨어진 제주 식당에선 그런 문제가 발생할 일은 없다. 당장 그 누구에게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밤새 줄을 설 권리도 누릴 수 있다. 돈가스집 사장님은 향후 직원을 추가로 뽑고 줄서기 시스템을 손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누군가에겐 시간낭비이고 바보 같은 짓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버킷리스트고, 해보고 싶은 도전일 것이다.
이러한 대중의 뜨거운 반응은 실제 정책반영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지난해 예산편성 과정에서도 정부는 제2의 백종원을 키우기 위해 청년 외식 창업자 육성에 나선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빈 공간을 식당으로 활용하는 공유주방으로 활용하고 전문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또 지역별로 이러한 소상공인들이 힘을 합치고 지역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도 두 팔을 걷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충남 천안에서 소상공인연대 조직화가 추진되는 등 전국 방방곳곳에서는 이러한 소상공인 살리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 역시 백종원이란 개인 브랜드의 힘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정세균 국무총리는 15일 “각 부처는 올 한 해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에 매진해 주기 바란다”며 “특히 과감한 규제혁파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혁신성장을 더욱 가속화해 달라”고 취임일성을 뱉기도 했다.
연돈 인스타그램 캡처
[추동훈 매일경제 프리미엄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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