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torcycle Test-Drive] 군살 뺀 경쾌한 할리는 어떤가요? 할리데이비슨 스트리트 시리즈

    입력 : 2019.11.06 10:47:21

  • 이상하게 궁금해지는 모델이 있다. 브랜드 라인업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모델. 게다가 영역을 확장하려는 포부까지 담겼다면 더욱. 도전하는 자세는 언제나 마음을 움직인다. 더 많은 사람에게 모터사이클의 재미를 퍼뜨리려는 각오가 느껴져서일까. 물론 브랜드 입장에서는 고객층을 넓혀 수익을 늘리는 전략이긴 하다. 각오든 전략이든 전에 없던 모델이 등장하면 궁금해지는 게 사람 마음. 할리데이비슨의 ‘스트리트 시리즈’가 그랬다. 스트리트 시리즈는 할리데이비슨의 엔트리 모델이다. 스트리트 시리즈가 등장하기 전에는 ‘스포스터’ 라인업이 그 역할을 맡았다. 다크 커스텀이라는 양념을 뿌리며 젊은 층을 공략했다. 스트리트 시리즈는 스포스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하려 했다. 스트리트 시리즈의 심장은 749cc 수랭 V트윈. 883cc 공랭 V트윈인, 할리데이비슨의 엔트리를 담당해온 883 아이언 엔진과는 또 다르다. 배기량이 더 적은 것보다 수랭이라는 냉각 형식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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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데이비슨에 공랭 V트윈 엔진은 가문의 인장처럼 이어졌다. 물론 가끔, 아주 가끔 수랭 엔진 모델을 선보이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배기량만은 넘쳐흘렀다. 스트리트 시리즈는 배기량도 가장 낮고, 냉각 방식도 달랐다. 할리데이비슨 기준에선 꽤 대담한 시도를 감행한 셈이다. 이 시도를 사람들이 좋게만 보지는 않았다. 이게 할리야? 하는 반응. 모터사이클을 타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인 과시 면에서 효과가 크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스트리트 시리즈가 가장 할리데이비슨답지 않은 모델인 건 확실하다. (상대적으로) 싼값에 할리데이비슨 엠블럼만을 손에 넣을 이유가 있느냐는 반응도 나올 수 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이라고 몰랐을까? 진입 장벽을 낮출 때 나오는 이런 반응은 어느 브랜드나 겪는 일이다. 사실 반응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스트리트 시리즈의 핵심은 이거다. 할리데이비슨이 만든, 조금 색다른 엔트리 모터사이클. 모델이 품은 가치는 반응과 별개다.

    스트리트 시리즈는 두 가지다. 처음 나온 ‘스트리트750’과 달리는 데 보다 집중한 ‘스트리트 로드’. 둘 다 749cc 수랭 V트윈 레볼루션X 엔진을 품었다. 하지만 둘은 성격이 다르다. 스트리트750이 도심 주행을 고려했다면 스트리트 로드는 스포츠 주행까지 넘본다. 스트리트750을 기본으로 여러 부품을 바꾸고 엔진 성능을 끌어올렸다. 스트리트 로드는 스트리트750을 스포츠 모터사이클로 커스텀한 형태다. 그런 점에서 스트리트 시리즈에 속하더라도 스트리트 로드가 보다 할리데이비슨과 멀리 떨어져 있다. 해서 더 궁금했다. 할리데이비슨이 도전 정신을 발휘했다는 얘기니까.

    스트리트 로드를 보면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다. 할리데이비슨 라인업에서나 엔트리를 담당할 뿐이다. 언제나 상대적이다. 다른 할리데이비슨이 유독 덩치를 자랑하는 거다. 엔진 배기량도 적지 않다. 수랭 2기통 749cc라면 출력이 아쉬울 제원이 아니다. 다른 할리데이비슨이 기준이기 때문에 아담하게 보일 뿐이다. 그런 기준의 차이가 앞선 반응을 유발했다. 반대로 기준이 달라지면 결과가 흥미롭게 변할지도 모른다. 스트리트 로드의 진면모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할리데이비슨인데 작고 스포츠성을 강조한 로드스터. 할리데이비슨의 매력은 육중한 쇳덩어리 질감을 호령하듯 타는 맛이다. 할리데이비슨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부인할 수 없는 특성이다. 할리데이비슨이 아무리 변해도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을 특성이기도 하다. 그런 할리데이비슨이 만들었다. 스포츠성을 강조해도 다른 브랜드와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아무리 생각을 전환해도 할리데이비슨의 시각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미들급 로드스터는 많아도 할리데이비슨이 만든 모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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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리트 로드의 시트고는 765㎜다. 스트리트750보다 45㎜ 높아졌다. 반면 휠베이스는 1510㎜, 전장은 2130㎜ 짧아졌다. 스트리트750보다 경쾌하게 차체를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수치는 할리데이비슨 전체에서 가장 경쾌하게 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트고는 낮지만 아예 긴장을 풀고 앉을 순 없다. 시트 형태가 옆으로 퍼져 발을 벌려 앉아야 한다. 할리데이비슨의 특성 중 하나다. 시트고가 낮지만 옆으로 두툼한 형태. 스트리트 로드는 이런 특성을 그대로 따른다. 옆으로 뚱뚱한 로드스터라. 신선하다.

    발을 놓는 스텝은 차체 중간에 있다. 크루즈의 기본 스텝 위치다. 스트리트 로드는 스포츠 주행까지 염두에 둔 모델이다. 보통 주행 성격에 따라 스텝 위치가 달라진다. 빨리 달릴수록 뒤로 뺀다. 그럼에도 스텝 위치를 중간에 놓았다. 할리데이비슨 기본 위치를 고수한 셈이다(대신 스텝 위치가 높아 더욱 웅크리는 자세를 연출한다). 스포츠성을 띠면서도 기본 형태가 크루즈라는 점을 의식하게 한다. 널찍하고 두툼한 연료탱크도, 그 너머 넓고 낮은 파이프형 핸들바 또한 같은 영향을 미친다. 바라보고 앉아보고 잡아볼 때 할리데이비슨의 특성이 은근히 전해진다. 누가 할리데이비슨 아니라고?

    시동을 걸면 할리데이비슨 치고는 매끄러운 느낌이 차체를 타고 넘어온다. 확실히 공랭 V트윈 엔진과는 다름을 느낀다. 이제부터 달라지나 싶은 기대감 혹은 아쉬움이 공존한다. 수랭과 공랭 방식에 따른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좋고 나쁨을 떠나 다르다. 물론 할리데이비슨을 연상하면 아쉬운 점이 더 도드라질 테지만. 대신 매끄러운 주행을 기대하게 한다.

    클러치를 붙이고 스로틀을 감으면 오호, 부드럽게 속도가 붙는다. 엉덩이를 간질이는 고동보다는 슈루룩, 하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어느 순간부터 속도를 줄였다 높였다 스로틀 반응을 확인하며 즐겼다. 그와 더불어 차체의 경쾌한 거동도 엉덩이로 느꼈다. 순간적으로 속도를 내고 차체를 이리저리 움직이길 반복했다. 짧은 코너가 이어지는 구간에서 의식적으로 차체를 기울이며 속도를 올리기도 했다. 스트리트 로드가 생각보다 날렵해서, 은근히 엔진회전수를 높여서 밀어붙이며 타기도 했다. 할리데이비슨에서 이런 경쾌함을 느낀 적이 있었나? 이런 생각이 스칠 때쯤 스트리트 로드가 달리 보였다. 한참 타다보니 감각이 전환됐다. 처음에 느낀 매끄러운 느낌이 희미해졌다. 그러면서 그 아래쪽에서 스며든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거친 감각이 표면에 올라왔다. 물론 공랭 모델의 굵직한 고동은 아니다. 그럼에도 걸걸함이 전해졌다. 앞서 느낀 부드러움에 적응한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처음에도 수랭 엔진 치고는 걸걸했다. 기존 할리데이비슨을 생각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매끄럽게 느낀 셈이다. 한숨 돌리듯 기어 단수를 높이고 엔진회전수를 낮췄다. 크루저를 즐기는 방법으로, 스트리트 로드를 탔다. 그러니 또 전과 다른 여유로운 크루저의 풍미도 피어올랐다. 할리데이비슨의 영역은 스트리트 로드에도 해당됐다. 그게 또 신선했다.

    스트리트 로드는 할리데이비슨에선 엔트리 모델이다. 그냥 모터사이클로도 엔트리일까? 오히려 독특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묵직한 쇳덩이 느낌을 좋아하는데 매끄럽게 달리고도 싶은 사람. 있을 수 있다. 기존 할리데이비슨은 너무 거대하다고 느끼는 사람. 역시 있을 수 있다. 크루저를 로드스터처럼 커스텀하고 싶은 사람. 없으리란 법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스트리트 로드는 할리데이비슨도, 엔트리도 아니다. 그냥 갖고 싶은 모터사이클이 된다.

    할리데이비슨은 그 지점을 겨냥하지 않았을까. 단지 엔트리가 아닌 독립적 라인업. 할리데이비슨은 최근 어드벤처와 네이키드 장르도 발표했다.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모델이다. 그 말은 즉, 라인업을 확장한다는 뜻이다. 스트리트 로드는 본격적인 도전의 전초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스트리트 로드에서 내리면서 스친 생각이었다.

    [김종훈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0호 (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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