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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도시의 나무꾼
입력 : 2019.10.10 14: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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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일산 신도시가 처음 생겼을 때 두 개의 카페촌이 있었습니다. 시내의 카페촌은 밤이면 불빛 요란한 술집들이 모여 있고, 경의선 철길 넘어 시 외곽지역의 카페들은 홀 중앙에 커다란 무쇠 난로나 페치카를 설치해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이 카페촌은 신도시가 생기기 전부터 이미 드문드문 있었고, 신도시가 생기자 다시 나무나 연탄을 때서 난방을 하는 옛날 방식의 카페들이 더 많이 생겨났던 것이지요.
그 무렵 내가 자주 다니던 ‘시인학교’라는 카페도 그런 무쇠난로 카페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느 시인이 자신을 ‘일산 시인학교 교장’이라고 명함까지 박아 운영했던 카페인데, 그 카페에 자주 놀러갔습니다. 차보다도 그 집의 장작 난로가 좋아서였습니다. 그 카페 덕에 대관령을 떠나 도시 한 귀퉁이에 와 살면서도 겨울마다 장작을 패보는 즐거움을 누렸던 것이죠.
무쇠난로나 페치카에 웬만한 굵기의 통나무는 그냥 잘라서 때지만 너무 굵은 것은 두 쪽이나 네 쪽으로 쪼개야 합니다. 그 일을 몇 해 겨울 내가 자원하여 대신 해주었습니다. 전부 다 해준 것은 아니지만, 아주 많은 분량을 자원봉사로 패주었습니다. 취미생활을 하듯 며칠에 한 번씩 장작을 패러 갈 때마다 자동차 뒷자리에 아빠가 장작을 얼마나 잘 패는지를 누구에게든 증명해줄 우리 집 두 아이를 꼭 태우고 다녔습니다.
시인학교가 문을 닫고 난 다음 한동안 나는 철길 넘어 시 외곽의 카페촌에 갈 때마다 나를 새로 그 집의 ‘장작을 패는 나무꾼’으로 받아줄 카페가 없나 두리번거리곤 했습니다. ‘돈 안 받고 장작을 패줌’하고 카페마다 전단지라도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럴 만큼 장작패기는 내게 단순한 스포츠거나 취미생활 그 이상의 것입니다. 예전엔 이런저런 신상명세 취미란에 ‘장작패기’라고 꼭 적었을 정도입니다.
대관령 아래에서 자라, 어린 시절에도 아름드리 참나무를 베어와 부엌에 때기 좋은 크기로 장작을 패곤 했습니다. 아무리 큰 장작도 도끼질 몇 방이면 반으로 쫙, 갈라지곤 했지요. 그러면서 참나무 특유의 쉰밥냄새(양주 뚜껑을 딸 때 한순간 슬며시 풍기는 바로 그 황홀한 냄새)가 “너,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응원을 하듯 코를 찌릅니다.
참나무와 밤나무 냄새는 원래 그렇습니다. 늦가을과 한겨울에 하얀 입김을 훅훅, 내뱉으며 장작을 팰 때, 몇 번의 도끼질에 아름드리 참나무와 밤나무가 갈라질 때, 입김보다 더 강하게 훅, 하고 다가오는 참나무와 밤나무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그걸 참나무 냄새거나 밤나무 냄새라 하지 않고 쉰밥냄새라고 불렀습니다. 어른이 되어 처음 양주 한 모금을 입에 넣었을 때, 아, 이거 참나무 냄새잖아, 하고 바로 혀끝과 코끝으로 느꼈던 거지요.
소나무 장작은 마치 산속의 향기처럼 송진 냄새로 언제나 향긋하고, 뽕나무, 아카시아나무, 자작나무, 모두 다 그 나름으로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속살 붉은 오리나무 냄새도 참 좋습니다. 오리나무를 부엌 아궁이에 넣으면 다른 나무들보다 불꽃이 아름답습니다. 오리나무 껍질 때문인지 아니면 붉은 속살 때문인지 오색 불꽃이 일어납니다. 그런 중에 참나무와 밤나무는 불을 땔 때에도 느낌이 무척 강렬합니다. 자라서는 이게 바로 오크향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릴 때는 그게 쉰밥냄새처럼 다가왔던 거지요.
나는 대장간에서 금방 벼려와 날이 선듯하게 선 도끼에 나무 중에 가장 탄력이 좋은 물푸레나무 자루를 구멍에 잘 맞추어 단단하게 박아놓은, 대관령 아래 옛 우리 시골집의 도끼를 참 사랑합니다. 도시의 어른들은 골프채가 왼손잡이용과 오른손잡이용이 따로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사용하는 낫과 호미도 골프채와 마찬가지로 왼낫·오른낫이 있고, 왼호미·오른호미가 있다는 건 잘 모르지요. 그 중에 도끼는 삽이나 괭이와 마찬가지로 좌우 평등한 점이 좋습니다. 누가 패다가 나무에 박아놓은 도끼를 아무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무를 패는 일이지만 도끼를 휘두르는 일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정작을 팰 때 어른들은 아이들이 옆에 가까이 다가오면 뒤쪽으로 물러나 있으라고 합니다. 도끼가 나무에 빗맞아 튕겨나가기도 하고, 도끼를 맞은 나무 조각이 잘못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장작을 패는 일은 도끼를 휘두르는 힘만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잘 숙련된 솜씨와 요령과 나무의 한중간을 때려야 하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합니다. 무기를 쟁기로 사용하는 일이 바로 도끼질입니다. 장작을 패는 일이 녹록지 않습니다.
옛날 선비들이 임금께 상소를 올릴 때, 때로는 그 상소문을 도끼와 함께 들고 궁궐 앞에 가 거적을 깔고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이른바 ‘지부상소’라고 부르는데 함께 가져간 도끼로 왕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 저의(혹은 저희의) 상소 내용이 옳지 않거나 옳더라도 따라주지 않으실 거면 이 도끼로 제 머리를 쳐 주십시오”하는 뜻입니다.
어린 날, 그 얘기를 듣고 대관령 아래 산촌의 한 소년이 저 옛날 어느 선비가 왕에게 지부상소를 올리듯 일심전력으로 아름드리 참나무와 밤나무의 정수리를 맞춰가며 장작을 팼던 것이지요. 그 상상력이 가당하거나, 가당찮거나 말입니다.
아, 마지막으로 장작에 대해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골집 마당 한 귀퉁이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혹은 마루 밑에 쌓아둔 장작들을 보노라면 영락없이, 그 장작이 그 집 아버지를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거기에 그냥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듯 보여도 그냥 쌓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장작을 팬 그 집 아버지의 솜씨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솜씨 안에 도끼를 잡은 사람의 실력과 인품이 있고, 삶의 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 옛날 어느 선비가 왕에게 지부상소를 올리듯 일심전력으로 아름드리나무의 정수리를 맞춰가며 장작을 팼던 소년 나무꾼이 도시의 어른 나무꾼으로 자라서 현재는 그토록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 안달을 내며 드리는 말씀입니다.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9호 (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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