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승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슐츠 전 스타벅스 회장, 대선 출마 포기 선언… 출마 시사 8개월 만에 무소속 한계 부담

    입력 : 2019.10.04 15:21:58

  • “무소속 대선 후보 출마는 포기하지만 상식이 통하는 미국 사회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노력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 무소속 출마 의지를 밝혔던 하워드 슐츠(66) 전 스타벅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대선 출마를 공식 포기한다고 지난 9월 6일 선언했다.

    슐츠 전 회장은 자신의 웹사이트 하워드슐츠닷컴에 올린 서한에서 “우리 양당 체제를 개혁할 필요성에 대한 내 믿음은 약해지지 않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무소속으로 백악관을 향해 캠페인을 하는 것이 나라에 봉사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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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슐츠 전 회장은 앞서 지난 1월 대선 출마를 시사한 이후 미국 전국을 돌며 ‘흥행몰이’에 나섰지만, ‘공화당-민주당’의 견고한 양당 정치체계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결국 무소속 후보 출마를 포기한 것이다. 지난해 6월 CEO에서 물러난 이후로 줄곧 정계 진출 가능성이 거론됐던 슐츠 전 회장의 대선 도전기는 약 8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슐츠 전 회장의 대선 출마 포기는 여러 후보 중 한 명이 사퇴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그가 미국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이 꿈의 복원을 위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의 대선 출마 포기 선언을 미국 주요 언론들이 비중 있게 다룬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난한 트럭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난 슐츠 전 회장은 커피 제국 스타벅스를 세운 성공신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약 33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슐츠 전 회장은 시애틀의 작은 커피 전문점이었던 스타벅스를 세계 77개국, 약 3만 개의 매장을 가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슐츠 전 회장은 ‘인간 중심 경영’을 주창하며 기업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해석했다. 사업 목적을 주주 이익에서 매장을 찾는 고객과 종업원의 행복으로 바꿨다. 이러한 ‘백그라운드’로 전 세계적 유명세를 얻은 슐츠 전 회장의 미국 대권 도전 자체가 큰 뉴스거리였다.

    슐츠 전 회장이 대권 도전에 나선 명분은 기존 정치권의 ‘편 가르기’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평생 민주당원’을 자처해온 슐츠 전 회장은 ‘자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이는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도 문제이지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주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민주당도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이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면서 미국 경쟁력이 약화돼 과거처럼 젊은이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없게 됐다는 게 슐츠 전 회장이 제기한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지난 1월 대선 출마 시사 당시 “민주·공화 양당은 전체 미국인을 대변하지 못한 채 맨날 보복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고 붕괴된 정치 시스템을 복원하겠다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게 된 계기에 대해 “민주당은 너무 강한 진보적인 아이디어로 지나치게 좌측에 편향돼 있다”며 “정부가 모든 미국인들을 위한 건강 보험은 물론 일자리, 대학 교육도 지원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슐츠 전 회장은 또 “내가 바로 자수성가한 ‘아메리칸 드림’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무엇보다 차기 대통령 후보는 모든 국민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국민들이 과거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슐츠 전 회장은 무소속 대선 후보 출마를 포기하지만 정치 개혁에 나름대로의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향점은 ‘상식 있는 미국 사회’다. 정치권이 국민들을 분열시켜 ‘표’를 얻는 데만 혈안이어서 미국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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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슐츠 전 회장은 대선 출마 포기 선언 서한에서 “워싱턴DC 정가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국익보다는 정당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며 “미국 국민들이 정치 리더들보다 더욱 단결돼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전국 투어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미국인 84%가 자신이 극단 보수 또는 극단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상식을 원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그에 맞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슐츠 전 회장은 선거체제를 개혁하고 부서진 정치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 상당한 재원을 쓸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슐츠 전 회장은 “상식에 맞는 정책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사람, 조직 등에 투자할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다른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미국 사회에 보다 많은 기회가 창출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달라고 독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단결할 때 힘이 커진다”며 “후손들에게 분열되지 않은 사회를 물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그는 지난 1월 대선 출마를 시사하면서 1억달러를 대선 캠페인에 쓰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슐츠 전 회장은 무소속 대선 출마를 시사한 지난 1월부터 많은 비판에 시달려왔다. 무엇보다 그를 핵심 당원으로 여겨왔던 민주당은 하루속히 무소속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슐츠 전 회장이 무소속으로 2020년 차기 대선에 나선다면 ‘반(反) 도널드 트럼프’ 전선에 분열을 초래해 트럼프 대통령이 어부지리로 재선에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도 슐츠 전 회장에 대해 “대선에 출마할 만한 배짱이 없다”고 조롱했을 정도다.

    슐츠 전 회장의 대선 출마 포기로 그의 목소리가 약해지겠지만 주목되는 것은 최근 미국 사회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복원해야 한다는 비즈니스 리더들 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변하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지난 8월 19일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을 강조하는 ‘기업의 목적의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윤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기존 기업의 존재 이유 설정에서 벗어나 고객, 근로자, 납품업체, 커뮤니티 등 모든 이해당사자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성명에는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애플의 팀 쿡,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보잉의 데니스 뮐렌버그,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 등 181명의 CEO가 서명했다. BRT 회장인 다이먼 CEO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있지만 시들해지고 있다”고 이번 성명을 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슐츠 전 회장의 미국 대권 도전은 끝났다. 하지만 ‘상식이 통하는 사회’, ‘아메리칸 드림 복원’ 등 그가 주장하는 핵심 가치는 향후 미국 대선에서 주요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용승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9호 (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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