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우의 보르도 와인 이야기] 역사가 빚은 이탈리아 최고 와인 비온디 산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입력 : 2019.09.06 10:34:48

  •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국산 와인에 대해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오늘날 와인의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에 와인을 전수해준 것이 이탈리아라는 점이다. 와인은 오래전부터 지중해 무역의 중요한 상품 중 하나였다. 지금의 프랑스가 위치한 갈리아 지역에 거점을 마련한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이곳에 포도나무를 심었다. 특히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이 진출하지 않았던 내륙 안쪽까지 들어가 와인을 만들었는데, 현재 세계 최고급 와인으로 알려진 보르도와 부르고뉴에 처음 포도나무를 심은 것도 로마 사람들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탈리아 와인의 두 번째 특징은 세계 어느 곳보다 다양한 와인을 만든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도 많은 종류의 포도를 경작하고 있지만,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피노누아(Pinot Noir), 쉬라(Syrah) 등 몇 가지 핵심 포도 품종 위주로 소비가 단순화된 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종류의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장점인 동시에, 해외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집중하기 어렵고 기억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세계 와인 애호가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 와인 생산지는 북부의 산업도시 토리노가 위치한 피에몬테(Piemonte) 지역 그리고 피렌체가 위치한 토스카나(Toscana) 지역이다. 하지만 피에몬테와 토스카나는 2018년 생산량을 기준으로 시칠리아(Sicilia)와 아브루조(Abruzzo)에 이어 겨우 6위와 7위에 해당한다. 두 지역의 와인 생산량을 모두 합쳐도, 4위인 시칠리아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고 1위인 베네토(Veneto)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지역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인 바롤로(Barolo)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덕분이다. 이 두 와인은 단연코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으로 부를 만하다. 그 중에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와인으로서도 훌륭하지만, 경제사의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흥미로운 와인이다.

    사진설명
    이탈리아 와인의 오랜 역사라는 필터를 통해 브루넬로도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이 나타난 것은 겨우 1860년대에 이르러서다. 보르도의 와인 등급이 정해진 1855년보다도 더 이후의 일로, 이웃한 다른 토스카나 와인들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것과 큰 비교가 된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몬탈치노 마을에서 만드는 브루넬로라는 뜻이다. 브루넬로는 포도 품종의 이름으로 토스카나의 유명한 포도 산지오베제(Sangiovese)와 같은 포도라는 것이 발견되었다.

    몬탈치노 마을은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약 100㎞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몬탈치노는 로마로 여행하는 순례자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도시로 중세 때 많은 번영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몬탈치노가 번영했던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이후 계속해서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 중 하나로 남아 있었다. 피렌체에서 가까운 마을이면서도, 피렌체 공국과의 전쟁에서 가장 끝까지 항거했던 사정 때문에 르네상스의 혜택을 받지 못한 가장 운이 나쁜 마을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1960년대 말까지도 중세의 소작제도가 남아 있어서 농부들은 자신들이 경작한 곡식의 대부분을 지주에게 바쳐야 했으며, 그때까지도 마을의 많은 가구에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몬탈치노는 이탈리아의 마을 중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부유한 마을이 되었다. 겨우 수십 년 만에 이루어진 이러한 반전은 순전히 몬탈치노에서 생산되는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세계적인 성공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토스카나 와인인 카스텔로 반피(Castello Banfi)나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 등은 모두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로 유명한 생산자들이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비온디 산티(Biondi Santi) 와이너리를 건립한 클레멘테 산티(Clemente Santi)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사이자 역사가였던 클레멘테 산티는 그의 농장인 일 그레포(Il Greppo)에 머물며 고급 와인을 만들고 기록하는 데에 일생을 바쳤다. 당시 대부분의 이탈리아 와이너리들은 얼마나 많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나, 그는 몹시 특이하게도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 품종을 개량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100% 산지오베제로 만든 그의 와인을 브루넬로로 불렀는데, 이후 와인 이름이었던 브루넬로는 포도 품종의 이름이 되었다. 클레멘테 산티가 죽은 후, 그의 조카인 페루치오 비온디 산티(Ferruccio Biondi Santi)가 포도원을 물려받았고, 비온디 산티만을 위한 특별한 브루넬로 클론을 만드는 데에 평생을 바친다.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로 기록된 1888년산도 바로 페루치오 비온디 산티의 작품이다.

    비온디 산티의 브루넬로 와인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클레멘테 산티 때부터 몇몇 애호가들 사이에서 알려져 있었으나 세계무대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일이다. 1969년 당시 이탈리아 대통령이었던 쥬세페 사라가트가 런던을 방문했을 때, 영국여왕 엘레자베스 2세를 초대한 대사관의 만찬에 비온디 산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리제르바 1955년산이 서브되었다.

    지금도 연예인과 비즈니스맨 등 유명인사의 테이블에 어떤 와인이 서브되었는지가 큰 관심거리가 되는 것처럼, 이탈리아 대통령이 영국 여왕에게 서브한 비온디 산티는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으로 전 세계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고 비온디 산티가 위치한 몬탈치노 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이 되었다.

    비온디 산티의 상업적인 성공은 뒤이어 인근의 다른 브루넬로 생산자들의 성공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외부 자본이 와인에 대한 열정 혹은 상업적인 동기에서 몬탈치노 마을에 대규모로 투자를 하게되었다. 늦게 합류한 와인 애호가나 투자자들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허용되는 지역 안에서 포도밭을 구하지 못하고 인근의 포도밭에서 와인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들은 브루넬로가 아닌 카베르네 소비뇽같은 외국 포도 품종을 쓰는 등 새로운 전략을 통해 브루넬로만큼의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의 와인 평론가들은 이 새로운 투자가들이 만든 와인들을 슈퍼 투스칸(Super Tuscan)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온디 산티는 장기 숙성 와인으로 유명하며, 심지어 와인을 오픈하고 하루 이상 기다려야 그 맛이 날 정도다. 비온디 산티 와인의 한 모금은 그 피니시만큼이나 기억에 오래 남는다. 비온디 산티 포도원은 오랫동안 비온디 산티 가문에서 운영해오다가 2017년 찰스 하이직 샴페인을 소유한 EPI 그룹에 인수되었다.

    [이민우 와인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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