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torcycle Test-Drive] 앉기만 해도 즐거운 중년 남성의 로망 할리데이비슨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

    입력 : 2019.09.05 13:58:30

  • 위압감이 상당하다. 거대하고 길고 묵직하다. 두 바퀴지만 자동차의 영역으로 간 기분이다. 동양인 평균 체형이라면 더 큼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두 가지 기분이 교차한다. 이 커다란 걸 타야한다고? 하는 부담감. 그러면서도 이 녀석을 타고 달리면 얼마나 통쾌할까? 하는 도전 의식. 두 감정이 교차하면서 심장이 쿵쾅거린다. 거대한 기계덩어리를 조종한다는 어떤 설렘. 할리데이비슨의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을 앞에 두면 누구나 느낄 기분일 것이다. 기함(氣陷)이라는 위치와 합당한 위용,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확실히 자신을 드러낸다.

    사진설명
    어떤 브랜드든 상징 같은 모델이 있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위치에 놓인다. 브랜드의 성격이 집약되고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당연히 브랜드도 기술력을 아낌없이 쏟아 넣는다. 잘 팔리니 더 공을 들이고, 그래서 더욱 더 잘 팔려 결국 상징이 되는 모델. 점점 좋은 쪽으로 나아가는 선순환 구조다. 말은 쉽게 했지만 여기까지 도달하기는 힘들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은 이미 도달했다. 수많은 모델이 원하고 바라는 위치에 올랐다. 브랜드의 기함이라면 그 과정은 더욱 쉽지 않다. 기함은 좋은 만큼 가격대가 높다. 낮은 가격대 모델보다 접근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라인업의 보편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할리데이비슨은 조금 다르다. 기함이 곧 인기 모델이다. 할리데이비슨의 상징적인 모델이자 잘 팔리는 모델로도 확고히 자리 잡았다. 아메리칸 크루저의 대표 모델,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이 도달한 현주소다. 아메리칸 크루저의 투어링 버전으로 풍요로움이 무엇인지 전한다. 투어링은 긴 거리를 안락하게 달릴 수 있는 장르다. 즉, 딱 알맞기보다는 뭐든지 넉넉하다. 페어링은 웅장하고 각종 편의장치는 화려하다. 뭘 이렇게까지 있어야 할까 싶은데 오히려 차고 넘치는 게 매력이다.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하는 모델이랄까. 그러고 보면 아메리칸 크루저는 지금껏 그래왔다. 투어링인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은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했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육중한 엔진이 깨어난다. 1868cc 밀워키에이트 114엔진이다. 2ℓ 중형차에 필적하는 배기량이다(요즘은 중형차도 1.6ℓ 터보 엔진이 보편적이지만). 묵직한 차체를 가뿐하게 움직이기 위해선 당연한 배기량이려나.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의 건조중량은 362㎏이다. 모터사이클 기준에선, 물론 무겁다. 하지만 자동차 기준에선 가벼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1868cc를 다 채워 넣었다. 풍요로움과 효율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이. 무지막지한 배기량에서 생성된 힘은 두툼한 토크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크루즈는 사실 최고속도가 의미 없는 장르다. 계기반 바늘을 끝까지 꺾는 데 즐거움이 있지 않다. 대신 순간순간 노도 같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재미를 추구한다. 조금만 스로틀을 비틀어도 힘이 쏟아지는 박력. 묵직한 차체를 밀어붙이는 ‘펀치력’을 만끽한다.

    쇳덩어리 질감을 간직한 할리데이비슨이기에 더욱 극적으로 퍼진다. 이런 점이 할리데이비슨이 추구하는 라이딩의 즐거움이자 태생적 특징이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은 그 질감을 넉넉하게 선보인다. 넓적한 의자에 걸터앉는다. 시트고는 690㎜. 낮지만 차체가 두꺼워 다리를 제법 벌려야 한다. 시트고에 비해 한없이 낮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키 170㎝대 중반이면 느긋하게 양발이 닿는다. 처음에는 양발이 닿아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묵직한 덩치와 무게, 기함에 걸맞은 가격이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하지만 이내 적응한다. 그 이후론 엔진의 연주를 즐길 수 있다.

    퉁퉁 쳐대는 엔진의 박동은 명불허전. 타악기 연주를 듣는 기분이다. 앉아만 있어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다. 할리데이비슨 최신형 모델들은 엔진부터 마운트까지 다듬었다. 전보다 불편함을 덜고 질감은 살렸다. 게다가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은 투어링으로서 엔진을 더욱 부드럽게 매만졌다. 기존 할리데이비슨 엔진 박동에 기름칠을 더 했달까.

    클러치를 붙이면서 스로틀을 살짝 감으면 두두두 하며 힘이 밀려온다. 육중한 차체는 버거운 기색 없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의 주행 자세는 편하다. 핸들은 적당히 높고 시트 쪽으로 휘었다.

    앉아서 손을 앞으로 툭 놓으면 핸들이 잡힌다. 그 상태로 발을 뻗어 포워드 스텝에 얹으면 자세가 완성된다. 허리를 숙이거나 팔을 쭉 뻗어서 핸들을 잡지 않아도 되기에 몸에 힘이 덜 들어간다. 넉넉한 시트에 앉아 편안하게 조종하도록 한다. 모든 할리데이비슨이 다 그렇진 않다. 어떤 모델은 팔도 쭉 뻗고 허리도 숙여야 한다. 타는 멋은 있어도 오래 타면 힘들다. 하지만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은 오래 타도 편하다. 투어링은 편하게 장거리를 타도록 만든 장르니까. 편하게 박력을 만끽한다는 이점이 크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의 명확한 특징은 페어링이다. 투어링이라는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우선 주행풍을 효과적으로 막는 기능을 한다. 또한 차체를 더욱 압도적으로 보이게 하는 디자인적 요소로서도 기능한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의 페어링은 박쥐의 날개 형상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명칭도 배트윙 페어링이다. 멋지게 만들기만 한 건 아니다. 주행풍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형상에 재미 요소를 더했다. 페어링 전면 중앙에는 스플릿-스트림 벤트(Split-Stream Vent) 시스템을 적용했다. 페어링과 라이더 사이에 발생하는 와류를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단지 방패처럼 막기만 한다고 바람을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윈드실드를 장착해도 바람이 타고 넘어와 라이더를 괴롭힌다. 효과적으로 제어할 기술이 필요하다. 독특한 형상의 페어링에는 그 기술이 담겼다.

    페어링에는 주행풍을 제어하는 기술만 담기지 않았다. 페어링 안쪽, 그러니까 라이더가 바라보는 쪽에는 각종 편의장치도 담았다. 페어링은 모터사이클에 공간을 더하는 역할도 한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에는 붐박스 GTS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장착됐다. 양쪽으로 스피커가 자리하고, 가운데 디스플레이가 다양한 정보를 보여준다. 스마트폰 미러링 기능도 넣었으니 자동차 부러울 것 없는 편의장치인 셈이다. 기함이라는 용어가 어울릴 수밖에 없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에도 할리의 영역대가 적용된다. 기어 단수를 높이고 엔진 회전수를 낮춘 채 시속 80㎞로 달릴 때. 약간 헐떡거리는 듯한 엔진 고동이 온몸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영역대다. 속도가 주는 자극보다는 특별한 여정의 감흥을 즐기게 한다. 게다가 붐박스도 달려있어 음악까지 곁들일 수 있다. 바람의 결과 엔진의 고동, 게다가 배경음악까지 깔려주니 감흥은 더욱 증폭한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로 강원도 국도를 달렸다. 당연히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풍경과 제법 산뜻한 바람, 지루할 틈 없이 나오는 코너를 즐겼다. 할리데이비슨의 투어링을 타면 미 대륙의 광활함이 떠오른다. 한도 끝도 없이 직진만 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넓지 않은 국도의 완만한 코너도 은근히 즐거웠다. 육중한 기계덩어리를 부드럽게 기울이며 코너를 돌아나가는 느낌, 코너가 반복될수록 몸은 익숙해졌다. 점차 거대한 덩치의 진중한 거동을 즐겼다. 적응할수록 재미의 종류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엔진의 고동이, 나중에는 기계덩어리를 길들이는 즐거움이 생겼다. 일정한 속도로 직진할 때 느끼는 종합적인 감흥은 그 중 가장 진했다.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의 정체성이 만개하는 구간이니까.

    커다란 모터사이클에 로망은 별로 없다. 딱 내 몸에 맞는 크기와 출력을 선호한다. 모터사이클에 끌려 다니기보다 갖고 놀고 싶은 성향이 큰 까닭이다. 그럼에도 왜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이 인기 모델인지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할리데이비슨의 투어링이 왜 대표성을 띠는지도. 모든 게 차고 넘치는 대상을 만끽할 때 어떤 뿌듯함 비슷한 걸 느끼잖나. 스트리트 글라이드 스페셜은 그 기분을 충족시킨다. 왜 중년의 로망을 건드린다고 하는지 알겠다.

    [김종훈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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