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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불황에 몸살… 위기의 대형마트 이마트 2011년 분사 후 첫 분기 적자 최저임금 인상·e커머스와 출혈경쟁 탓
입력 : 2019.09.04 11: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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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년 전만 해도 어린 아이 한둘 낀 가족이 가까운 대형 마트에 차를 타고 가서 아이들을 카트에 태워 일주일치 장을 한꺼번에 보는 게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휴일 풍경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주변에서는 근래 대형 마트 가본 지 꽤 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맥주 묶음 행사를 노리고 대형 마트를 찾던 20~30대 신혼부부들도 편의점에서 동일한 행사가 속속 확산되면서 굳이 대형 마트까지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
국내 1위 대형 마트인 이마트가 지난 2분기 첫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겨줬다. 2016년부터 신규 점포 출점이 안 되는 상황에서 성장정체는 예견됐으나 굳건히 지켜왔던 업계 1위마저 적자를 기록하자 시장에서는 “대형 마트 시대는 끝났다”는 탄식마저 나오고 있다. 미래 고객층이라 할 20~30대가 온라인쇼핑몰과 편의점으로 이동하는 큰 변화가 숫자로 확인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2분기 실적은 온·오프라인 유통업 출혈 경쟁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소비심리 위축으로 소매업황이 부진한 여파에 이어 올해 부동산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부동산 보유세가 급증한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별도 기준 부동산보유세의 올해 증가분만 100억원에 달했기 때문에 고스란히 적자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이마트는 전체 점포 142개 중에서 직접 소유한 점포가 121개(85%)나 되고,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 점포도 16개 중에서 14개(87.5%)를 보유해 부동산보유세 부담이 더 컸다.
같은 기간 편의점(이마트24)과 온라인쇼핑몰(SSG닷컴), 호텔(조선호텔) 사업 등이 반영된 연결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8% 신장한 4조5810억원이었으나 영업손실은 299억원으로 더 컸다.
이마트는 “전반적인 대형 마트 업황 부진에 매년 2분기가 매출 규모가 가장 작은 비수기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며 “전자상거래 업체의 저가 공세와 SSG닷컴 등 일부 자회사 실적 부진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적자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적자 전환을 계기로 대형 마트의 운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형 마트가 유통 패러다임 변화 과정에서 최대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의 신사업 본부에서 출발한 이마트는 1993년 서울 창동에 1호점을 낸 후 국내에 대형 할인마트라는 신개념 대중적인 유통점 장르를 열고 줄곧 승승장구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되레 기회가 됐다. 이마트는 이때 전국의 목 좋은 부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해 할인점 출점을 늘리고 불황기 가성비 높은 소비 수요를 만족시키며 전성기를 누렸다. 까르푸와 테스코 등 외국계 대형 마트가 국내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빠져나간 후 이마트는 삼성테스코에서 주인이 바뀐 홈플러스, 롯데마트와 치열하게 경쟁하며 동네 상권을 위축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1~2인 가족 증가와 출산율 급감 등 인구구조 변화와 이커머스 성장 등 구조적 변화가 진행 중이던 차에 정부가 전통시장 보호를 명목으로 월 2회 의무휴업을 강제한 것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대형 마트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마저 막힌 사이에 식자재마트 등 새로운 오프라인 매장이 등장해 수요를 흡수했을 뿐 아니라 소비자들은 신선식품 구매까지 이커머스로 옮겨가면서 위기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 사용량이 크게 늘고,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팽창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017년 91조3000억원에서 2018년 111조8939억원으로 20% 이상 성장한 반면, 대형마트 매출은 2016년 33조2000억원에서 2017년 33조8000억원으로 커졌다가 2018년에는 33조5000억원으로 뒷걸음질쳤다. 올해 1분기 기준 매출액은 8조3000억원에 그쳤다. 1%대라도 성장하던 2016~2017년과 달리, 2018년부터는 역신장을 면치 못하는 신세다.
온라인 쇼핑은 처음에는 생활용품이나 비식품 분야에서 상품 가짓수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승부를 봤지만, 차츰 대형 마트의 영역을 잠식해 나갔다. 매일 먹는 신선식품과 찬거리 등 ‘장보기’ 영역까지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대형 마트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던 신선식품도 온라인 쇼핑에 고객을 뺏기는 단계에 도달했다. 배송서비스 등에 대한 투자도 대형 마트 온라인몰보다 쿠팡·마켓컬리 등 온라인에서 출발한 업체들이 앞섰다고 평가된다.
이마트도 올 초 온라인쇼핑몰 SSG닷컴을 독립법인으로 분사하고 6월 말부터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작하며 본격 경쟁에 가세했다. 그러나 쿠팡이 신선식품 배송을 강화하고, 마켓컬리가 서울지역 새벽배송 시장을 선점한 상태에서 신규 고객을 유입하려면 막대한 시설 투자와 마케팅 비용이 추가로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선미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소비 트렌드의 구조적 변화로 백화점 실적은 견조한 흐름을 지속하겠으나, 할인점은 온라인 경쟁이 본격화되며 하반기에도 실적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7월 기준 이마트의 온라인 재구매율이 30% 수준인데 이것을 어떻게 끌어올릴지가 이마트의 미래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예측했다.
유통 규제는 중장기적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마트도 실적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의무휴업 적용을 받지 않는 식자재 마트 등 대규모 슈퍼의 성장을 들었다.
지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시행 이후 대형 마트는 월 2회 의무휴업을 실시한다.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에서 대형 마트 매출이 높은 일요일 중 2번을 쉰다. 반면 동네마다 개인이 운영하는 중대형 식자재 마트나 농협하나로마트 등은 이 휴업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규제 틈새에서 식자재마트와 온라인 쇼핑이 의무휴업 때문에 줄어든 대형 마트 매출을 흡수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매주 일요일마다 인터넷포털에서 이마트 의무휴업일이 여전히 검색어 상위에 오를 정도로 고객들 소비를 꺾는 요인이 됐다. 심지어 대형 마트에서 직접 배송하는 온라인쇼핑몰의 경우 의무휴업 때 온라인 배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은 온라인 기반 경쟁사들에 비해 불리하다.
쿠팡 신선식품 배송
무엇보다 이마트는 신세계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고, 적극적으로 복합쇼핑몰 등 신규 사업도 펼쳤으나 채 안정화되지 못한 단계여서 시장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이마트는 8월부터 유통 구조 혁신을 통한 ‘everyday 국민가격’ 캠페인을 시작해 4900원 레드와인, 2900원 바디워시 등 기존 제품가격의 절반 수준인 초저가 상품을 30개 내놓았다. 올 연말까지 200개까지 품목을 늘려 할인점의 본질인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대형 마트 업의 본질인 가격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고객이 확실히 저렴하다고 느끼는 ‘상식 이하의 가격’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스마트한 초저가 상품’인 셈이다. 실제 커피 값 수준의 와인은 1주일 만에 기존 와인의 1년치 물량(7만 병)이 넘는 11만 병이나 팔리는 등 호응이 뜨겁다.
실적 발표 직후 이마트 주가가 사상 최저 수준까지 급락하자 이마트는 사상 첫 자산 유동화를 전격 발표했다. 이마트 10여 개 점포를 매각해 10년 이상 장기로 재임차하는(sale and lease back) 방식으로 1조원가량 수혈하는 과정을 연내 마무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경쟁사 홈플러스와 롯데쇼핑이 점포를 리츠(부동산투자신탁)로 넘기고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자산유동화를 추진한 것에 비하면 한발 늦었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은 리츠자산관리회사 롯데AMC를 설립하고 롯데쇼핑이 대주주로 참여하는 롯데리츠를 10월 상장 추진 중이다. 롯데리츠는 총 자산만 1조5000억원 규모로 롯데백화점 강남점과 롯데아울렛 대구율하점, 롯데마트 청주점 등 10개 점포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담아 시장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홈플러스는 50여 개 점포를 매각해 4조원이 넘는 리츠를 업계 최초로 상장을 추진하다가 시장 여건상 계획을 철회해야 했고, 연내 재상장도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이마트는 부채비율이 지난해 말 89.2%에서 올해 3월 말 기준 109.2%로 뛰는 등 재무구조 악화가 이마트의 결정을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지난 8월 14일 이마트의 신용등급은 Baa3로 유지하되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유완희 무디스 부사장은 “올 2분기 동사의 부진한 영업실적과 동사의 핵심 대형마트 사업부문에서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향후 1~2년간 이마트의 수익성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확대됐음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무디스는 또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는 이마트의 연결기준 조정 차입금이 올해 말 약 6조7000억원으로 작년 말 약 5조7000억원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홈플러스 스페셜 점포
마트 재기 몸부림
이마트는 앞서 사업 재편을 통해 비효율 점포를 줄이고 수익성 중심으로 미래사업을 꾸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H&B스토어 부츠 매장을 33개에서 15개로 줄이는 대신, 2030세대에 인기있는 체험형 매장인 일렉트로마트와 확실한 저가 상품 위주의 노브랜드 전문점 출점은 확대한다는 것이다. 또 온라인 배송을 위한 물류센터를 확충하고, 새벽배송을 확대하는 등 온라인 사업을 강화한다는 방안도 밝혔다.
두 자릿수 신장을 이어가는 트레이더스도 부천 옥길, 부산 명지 등에 지속적으로 출점할 계획이다. 롯데마트도 38개에 달하던 자체 브랜드(PB)를 10개로 줄이는 사실상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대표 브랜드인 초이스엘과 가정간편식 브랜드 요리하다, 균일가 브랜드 온리프라이스 등에 집중해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롯데쇼핑에서 롯데마트도 2분기 매출은 1조59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한 반면 영업손실은 지난해 2분기 273억원에서 339억원으로 더 늘었다. 부동산보유세와 지급 수수료 등 판관비가 81억원이나 증가한 탓이다.
롯데쇼핑 측은 “전년 대비 적자 폭은 커졌으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해외점포 매출이 2분기 기준 11.3% 늘었고, 영업이익도 증가해 향후 실적개선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에서 대형 마트는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와 유럽 초저가 슈퍼마켓 알디나 리들 같은 매장이 득세하고 있다. 알디는 인근 대형 마트보다 취급 품목은 적은 대신 30~60% 저렴한 PB제품 위주로만 판다. 코스트코도 강력한 매입력을 바탕으로 엄선한 품목을 대량으로 싸게 판다. 온라인 채널과 상품 숫자로 경쟁할 수 없으니 가격에만 집중하는 전략이다.
홈플러스는 이런 창고형 할인점과 1~2인 가구 겨냥 슈퍼마켓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매장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창고형 할인점과 대형 마트의 모델을 결합한 ‘홈플러스 스페셜’ 점포 전용 온라인몰을 오픈했다. 기존 홈플러스 온라인몰과 달리 스페셜 점포에서만 파는 묶음 상품, 해외 소싱해온 단독 기획 상품을 취급한다. 카페나 소규모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게 목표다. 롯데마트의 창고형 마트 빅(VIC)마켓도 하이브리드형 매장으로 변신을 추진한다. 창고형 할인점에서만 판매하는 가성비 좋은 상품 3000개에 1~2인 가구용 중소용량 상품을 일부 보강할 계획이다.
이마트는 체험형 공간을 강화한 신개념 복합쇼핑몰 스타필드를 지어 미래 오프라인 유통 변화에 대응해왔다. 최근에는 경기도 화성 송산그린시티에 부동산개발사 신세계프라퍼티 주도로 국제테마파크 조성을 맡는 투자양해각서(MOU)를 경기도, 화성시 등과 체결했다. 2031년까지 4조5700억원을 투자해 그룹의 확실한 미래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뿐 아니다. 국내 출점이 막힌 상태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해외 사업도 확장하려는 분위기다. 이마트는 프리미엄 그로서리 마켓 ‘PK마켓(가칭)’으로 미국 LA 진출을 준비 중이다. 구매한 식품을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그로서란트’ 공간을 확충하고 아시안푸드에 특화된 마트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 미국 서부지역 프리미엄 마트 24곳을 보유한 식품유통회사 굿푸드홀딩스도 약 3000억원에 인수했다. 아울러 베트남 호치민 고밥점 성장세에 힘입어 추가 출점도 계획 중이다.
[이한나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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