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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Test-Drive] 고성능 모터사이클의 대명사 ‘두카티’의 레트로 공략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
입력 : 2019.08.01 1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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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모터사이클이 으르렁거린다. 납작 엎드린 라이더가 스로틀을 살짝살짝 감아대며 소리에 리듬을 넣는다. 신호가 바뀌자 새빨간 잔상을 도로에 남긴다. 가슴을 관통하는 소리도 흩뿌린다. 모터사이클은 사라졌지만 새빨간 이미지는 선명해진다. 많은 사람에게 두카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탈리아 레드. 고성능 모터사이클. 섹시한 기계의 자태….
한 브랜드가 자기 색을 드러내는 건 중요하다. 점점 기술이 상향평준화되는 시대다. 기술적 우위로만 시장을 평정하긴 힘들다. 취향을 고려하고 건드려야 더 공고해진다. 더불어 더 넓은 영역에서 사람들을 유혹해야 한다. 두카티도 모를 리 없다. 새빨간 이탈리안 레드는 훌륭하지만, 그것만으로 미래를 맡겨놓을 순 없었다. 두카티가 움직였다. 마침 레트로 모터사이클 바람도 불었다. 계기가 생겼다. 두카티 ‘스크램블러’는 그렇게 탄생했다.
여러 브랜드에서 레트로 모터사이클을 내놨다. 복각 모델이든, 새로 빚은 네오 클래식이든 레트로 바람에 몸을 실었다. 두카티 역시 긴 역사만큼 복각할 모델이 수두룩했다. 그 중에서 두카티가 선택한 모델은 스크램블러였다. 1960년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미국 히피 문화가 퍼뜨린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기획한 모델이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기존 모델을 손봐 내놓았다. 경쾌한 차체에, 비포장에서도 접지력이 좋은 블록 타이어를 끼우고 핸들바를 높였다. 두카티의 스크램블러 모델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
두카티는 판을 크게 벌렸다. 단지 모델을 복각하기보다 아예 서브 브랜드로 만들었다. 두카티 스크램블러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라인업을 꾸렸다. 기존 두카티 이미지를 보존하면서도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이었다. 목표는 명확했다. 스크램블러가 유행하던 시절의 젊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전면에 내세워 젊은 라이더를 끌어들이기. 두카티 스크램블러에 매력을 느껴도 좋고, 이후 두카티의 라인업으로 가기 전 입문 단계로도 나쁠 것 없다. 레트로 모터사이클이 일으키는 바람에 올라타 라이더의 시선을 사로잡으면 그만이니까.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는 두카티 스크램블러 라인업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모델이다. 기본형은 ‘아이콘’이다. 1960년대 모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이다. 아이콘을 비롯해 커스텀 파생 모델로 ‘카페레이서’ ‘클래식’ ‘풀스로틀’ ‘데저트 슬레드’가 있다. 각자 부품을 바꿔 해당 모델의 특징을 살렸다. 한껏 멋 낸 커스텀 모델부터 서스펜션까지 싹 바꿔 능력치를 조정한 모델도 있다. 두카티 스크램블러 아래 다양한 레트로 모터사이클 취향을 반영한 셈이다.
803cc 모델 다섯 종이 라인업의 중심을 이루고, 그 위로 배기량을 높인 1079cc 모델이 있다. 타 브랜드가 오버리터급(1000 이상 고배기량 모터사이클) 레트로 모터사이클을 내놓자 배기량을 높인 모델이 필요했다. 두카티 스크램블러 중 고가모델 라인업이다.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는 1079cc 모델 중에서도 고급 부품을 장착해 꼭짓점을 차지한다. 뒤에 스포츠가 붙은 만큼 달리기 성능을 높였다. 라인업에서 뭐든 아끼지 않고 재료를 넣어 완성한 모델이랄까. 그만큼 가격도 가장 비싸다.
배기량을 늘렸지만 크기 차이는 크지 않다. 배기량을 올렸어도 경쾌한 차체를 지향하는 스크램블러 특성을 버리지 않은 까닭이다. 크기보다는 몇몇 부품의 질을 높이고 형상을 달리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위로 껑충 올라간 머플러다. 시트 바로 아래 차체 양 옆으로 머플러를 배치했다. 스크램블러 커스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명 ‘업 머플러’다. 험로에서 돌 같은 위험 요소가 머플러에 부딪치지 않도록 올린 형태다. 하지만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는 머플러 보호 효과보다는 멋을 위해서다. 시트 바로 밑으로 뻗어나간 양쪽 머플러는 더욱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니까. 자동차가 듀얼 머플러일 때 받는 인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기본적으로 지면과 멀어지니 위험 요소와 멀어지는 건 맞다.
스로틀을 감아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 타보지 않은 모델을 처음 탈 때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익숙해진다.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는 익숙해지는 시기가 부쩍 짧았다. 이내 편하게 스로틀을 감으며 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스치는 생각. 은근히 유순한데? 아이콘은 덩치에 비해 괄괄했다. 약간 신경질적이기도 했다.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는 그런 신경질을 죽이고 출력을 빼 완숙한 느낌도 들었다. 높아진 배기량을 어떤 부분에 할당했느냐 하는 얘기다. 제원을 봐도 803cc와 마력 차이가 크지 않다. 마력보다 토크에 집중한 결과다. 게다가 저속에도 토크를 두툼하게 배치했다. 툴툴거리면서 끈끈하게 힘을 전달하는 느낌이 생생했다. 한결 편하게 탈 수 있다는 뜻이다. 고배기량인데 편하다. 얼마나 마음 편하게 하는 느낌인가. 스로틀 감는 데 주저함이 사라졌다. 이런 안정감에는 올린즈에서 만든 서스펜션이 주효했다. 올린즈는 자동차에서든, 모터사이클에서든 서스펜션 명가로 손꼽히는 브랜드다. 물론 이름값에 걸맞게 고급 부품이기도 하다.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에는 올린즈 서스펜션을 앞뒤에 모두 장착했다. 두툼한 토크와 노면 대응력이 뛰어난 서스펜션을 조합하자 한결 즐겁게 갖고 놀 수 있었다. 보다 편하고, 보다 안정적이니까. 모터사이클과 함께 길을 휘저으며 달리기에 좋다. 스크램블러의 성격이 그렇듯이 올린즈 서스펜션은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의 결정적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상위 라인업인 만큼 안전장치도 기본 장착했다. 트랙션 컨트롤과 코너링 ABS를 조합했다. 편하게 꺼내 쓰도록 한 출력과 한층 안정적인 서스펜션,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까지 있으니 타는 내내 즐기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스크램블러 1100 스포츠는 이름처럼 비포장도로보다는 포장도로 위주로 달릴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그럼에도 스크램블러라는 장르의 자유분방함은 고스란히 담았다. 아이콘에서 조금만 더 얹어줬으면 하는 마음은 금세 충족됐다. 조금이 아니라 충분하게 눌러 담았으니까. 아, 가격도 충분히 오르긴 했지만.
[김종훈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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