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도 망할 수 있어” 대기업이 작정하고 만든 핫플레이스… 대기업 체인식당 시들해지자 개성·파인다이닝으로 탈바꿈

    입력 : 2019.07.08 14:15:21

  • 지난해 말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인근 독서당로에 문을 연 중식당 쥬에. 입구에 초록색 간판에 황금색으로 새겨진 爵(작)이라는 한자가 눈에 띈다. 공작, 백작 등 관직에 들어가는 작이라는 한자를 중국식으로 읽은 것이 ‘쥬에’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인테리어부터 식기, 메뉴구성까지 섬세함이 돋보인다. 사자조소상, 동양화 등 중국풍을 살리면서도 세련된 모던함을 느낄 수 있다. 쥬에는 강건우 셰프와 황티엔푸 셰프 두 사람이 만들고 있다. 강 셰프는 1996년부터 호텔 중식당에서 일하다 2008년 조선호텔 홍연에서 광동식 요리를 전문적으로 해왔다. 황티엔푸 셰프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 30년간 딤섬을 전문적으로 만들어오다가 홍연에 합류했고, 쥬에에서도 강 셰프와 합을 맞춰 일하고 있다.

    CJ제일제당 ‘쥬에’
    CJ제일제당 ‘쥬에’
    쥬에는 올해 초부터 한남동에서 가장 핫한 중식당으로 떠올랐다. 익숙한 광동식 중국요리지만 좀 더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과 매장 전체의 세련된 분위기가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쥬에’라는 태그의 숫자가 1500개가 넘는다.

    쥬에를 운영하는 회사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 식품 1위 기업인 CJ제일제당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모던한식당 ‘소설한남’도 열었다. ‘쥬에’와 ‘소설한남’은 가장 고급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놀부보쌈으로 유명한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놀부’는 2018년 4월 ‘취하당(醉霞堂)’이라는 막걸리 주점을 강남역에 열었다. 한자그대로 술에 취하고 노는 집이라는 뜻으로 20~30대 젊은 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취하당’은 강남역 핫플로 떠올랐다.

    특히 취하당은 젊은 20~30대 여성들의 인스타그램 인증샷 장소가 되면서 더욱더 많은 사람이 찾았다. 네온사인으로 된 식당 로고, 솜사탕 막걸리 같은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메뉴, 맛있는 안주가 성공 요인이었다.

    사진설명
    놀부는 취하당을 열면서 대기업의 색채를 최대한 지우고 개인이 여는 주점의 느낌을 담았다. 놀부 직원들이 직접 매장을 찾아가 못을 박고 인테리어를 도왔다. 놀부의 젊은 직원들이 자신들의 취향을 그대로 담은 요소들을 곳곳에 심었다. ‘#취하당’이라는 인스타그램 태그 수가 벌써 2500개를 넘었다.

    놀부는 오픈 초기에는 자사에서 운영한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놀부보쌈의 이미지가 취하당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의미다. 곧 경기도 용인에 2호 매장을 열 계획이다.

    ▶위기의 대기업 외식업과 외식 프랜차이즈

    최근 대기업 외식 브랜드와 외식 프랜차이즈들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CJ 그룹 외식업 계열사인 CJ푸드빌은 지난 4월 투썸플레이스를 사모펀드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CJ푸드빌은 계절밥상 빕스 등의 주요 매장을 닫는 등 매장효율화 작업을 하고 있다. 롯데그룹 외식계열사인 롯데GRS도 계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주력 프랜차이즈인 롯데리아와 엔제리너스의 확장세는 주춤하고 있다. 국내 외식기업 1위인 SPC 그룹은 지난해 성적이 나쁘지는 않지만 주력 외식 브랜드들의 성장세는 주춤하다.

    놀부 ‘취하당’
    놀부 ‘취하당’
    중소 외식 프랜차이즈들도 한계를 체감하고 있다. 과거와 같이 좋은 아이템으로 가맹점을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해 외식업 전반의 비용구조가 오른 것도 대기업과 프랜차이즈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이들 회사들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 중 하나는 유행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 소위 밀레니얼들이다. 특히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이 보편화되면서 ‘맛’보다는 ‘인스타그래머블’한가가 외식 매장이 성공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 이는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시각적으로 중요하다는 뜻도 있지만 ‘인증’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전국에 매장이 있고 언제든 원할 때 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밀레니얼은 드물다. 고생을 해서라도 찾아가고 아무나 쉽게 먹어볼 수 있는 것을 올려야 더 많은 ‘좋아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블루보틀이 성수동에 첫 매장을 오픈했을 때 3시간을 기다려서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은 아무나 블루보틀 ‘인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대기업 외식 브랜드와 프랜차이즈는 젊은 층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CJ푸드빌 빕스만 해도 전국에 매장이 60여 개다. 힙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브랜드인 더 플레이스도 매장이 18개다. 요즘 소비자들은 전국에 매장이 10개만 넘어도 식상하게 느낀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잘 먹고나서도 대기업 계열사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다시 찾아오지 않는 것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SPC ‘파스쿠찌’
    SPC ‘파스쿠찌’
    이 같은 변화는 국내 외식산업의 기본적인 성장 모델이 통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과거 외식업체들은 최초 직영매장에서 성공을 거두면 이를 시스템화해서 프랜차이즈로 매장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베이커리, 치킨, 피자 등이 이런 방식이었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직영이어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보다는 동네빵집을, 프랜차이즈 커피보다는 개인커피 매장을 선호하고 있다. 트렌드를 타지 않는 치킨이나 분식 같은 메뉴는 괜찮지만 젊은 층들이 주요 고객인 베이커리나 서양식 등은 고객들에게 어필하는 데 점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CJ제일제당의 ‘쥬에’나 놀부의 ‘취하당’ 같은 고급 매장은 이 같은 트렌드에서 나온 대기업 브랜드들의 ‘반격’이다.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안성현 책보다 대표는 “우리나라 대기업 F&B 브랜드들이 빠르게 확장만 하는 규모의 경제에서 선진국 브랜드들처럼 헤리티지를 찾고 브랜드 보이스를 내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대기업들이 ‘우리도 좋은 원료를 쓰고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데 대중들을 위해 표준화된 제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이런 매장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동시에 트렌드에 가장 영향이 큰 밀레니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인테리어와 비주얼을 갖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매장들은 돈을 벌기위한 목적보다는 마케팅 측면의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이디야 ‘커피랩’
    이디야 ‘커피랩’
    ▶젊은 소비자들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대기업 및 프랜차이즈들의 시그니처 매장들이 젊은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상업적인 차원에서 이런 매장들은 성공하기 어렵다. 이런 매장들은 많은 비용을 투자해 서울 핵심 상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모델처럼 이런 매장을 대량으로 프랜차이즈하기도 어렵다. 매장 숫자를 늘리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매력이 반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장기적인 투자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의 경우 가정간편식(HMR)에서 다양한 한식 및 중식 제품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파인다이닝이 브랜드 가치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계열사인 CJ푸드빌의 외식 브랜드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놀부의 경우 ‘보쌈’으로 대표되는 올드한 이미지를 좀 더 젊게 바꿀 수 있다.

    안성현 대표는 “대기업들도 결국 브랜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면서 “과거처럼 규모만 늘리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다보면 트렌드가 바뀌면 7년 후에는 외식 브랜드를 없애야하는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태원 TSP737
    이태원 TSP737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 브랜드들도 좀 더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설명이다. 이미 밀레니얼 등 소비자들은 전 세계의 최고급 브랜드들을 직접 경험해보고 있다. 브랜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를 소비자들이 더 잘 안다는 것이다.

    시그니처 매장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쥬에와 취하당의 해시태그와 소비자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해당 매장이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다면 소비자들은 대기업 브랜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표이사가 바뀌거나 트렌드가 달라져도 브랜드 헤리티지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외식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 대표는 “이 같은 과정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국의 오래된 브랜드도 경험했던 것”이라면서 “당장은 티가 나지 않겠지만 브랜드 가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피맥컴퍼니 남양주점
    피맥컴퍼니 남양주점
    대기업·프랜차이즈가 만든 ‘핫플’ <이디야 커피랩> 논현동 이디야 사옥 1~2층에 위치한 500평 규모의 매장. 스타벅스 로스터리 매장처럼 내부에 로스터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각종 스페셜티커피도 맛볼 수 있다. 가장 저렴한 이미지의 커피 프랜차이즈였던 이디야의 전체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올렸다. #이디야커피랩 해시태그 수 1만9500개

    오픈 : 2016년 3월

    주소 : 서울 강남구 논현로 636 이디야빌딩 1~2층

    <이태원 맥심 플랜트> 우리나라 인스턴트커피 시장 80%를 점유하고 있는 동서식품이 만든 콘셉트 스토어. 지하에 소규모 로스터리가 있고 3층에 있는 ‘더 리저브’에서는 24개 스페셜티 블렌드 커피를 마셔볼 수 있다. 오픈 후 20만 명이 찾을 정도로 이태원의 핫플이 됐다. #맥심플랜트 해시태그 수 5731개

    오픈 : 2018년 4월

    주소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50

    <이태원 TSP737> 유럽 에스프레소 문화를 경험한다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투썸플레이스의 프리미엄 매장. 16종의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음료를 판매하는데 흑임자와 검은콩이 들어간 블랙라테, 보드카가 들어간 에스프레소 마티니 등 개성 있는 음료도 있다. 디저트에 강한 투썸플레이스의 경쟁력을 살린 조그만 디저트들이 인상적이다. #TSP737 해시태그 수 2749개

    오픈 : 2018년 12월

    주소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11

    <SPC 파스쿠찌 역삼테헤란점>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의 파스쿠찌 콘셉트스토어. 이탈리아 브랜드인 파스쿠찌의 콘셉트에 맞춰 매장을 꾸렸다. TSP737과 다르게 모카포트를 전면에 내세우고 포카치아 등 이탈리아 베이커리도 판매한다. 오비맥주 산하 수제맥주인 핸드앤몰트와 손잡고 맥주를 파는 것도 인상적.

    오픈 : 2019년 6월

    주소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151 1층

    <피맥컴퍼니 남양주점> 중소 프랜차이즈인 ‘피맥컴퍼니’가 지난해 남양주 한강변에 문을 연 매장. 푸른 잔디밭과 한강이 보이는 시원한 풍경으로 인해 현재 남양주 인근에서 가장 뜨거운 핫플이다. #피맥컴퍼니남양주점 해시태그 1052개.

    오픈 : 2018년 6월

    주소 :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경강로926번길 10

    [이덕주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6호 (2019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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