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장원 특파원의 굿모닝 하노이] 베트남 시총 1위 빈그룹 SK그룹과 왜 손잡았나

    입력 : 2019.06.05 13:45:17

  • 지난 5월 1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빈그룹 지주회사 지분(빈그룹JSC)을 SK그룹에 매입하는 세리머니가 열렸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팜낫뷰용(Pham Nhat Vuong) 회장이 행사에 참석했다. SK그룹은 빈그룹JSC 지분 6.1%를 10억달러(약 1조1900억원)를 들여 매입했다. 매입 주체는 SK계열사 5곳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SK동남아투자법인이다. 지주사인 SK(주)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 SK하이닉스가 공동출자해 만든 법인이다.

    베트남에서 빈그룹이 차지하는 위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현지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베트남 전체 시총에서 빈그룹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24%에 달한다. 빈그룹은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무려 9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호텔(리조트), 건설사, 학교, 약국, 스마트폰, 마트, 가전유통, 병원 등 다루지 않는 영역을 찾기 힘들 정도다. 현지에서는 빈그룹과 평생을 함께하는 삶을 안락한 삶의 전형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빈그룹이 운영하는 최고급 병원인 빈멕국제병원에서 태어나, 빈그룹이 투자한 빈스쿨에서 교육을 받고 빈그룹 건설사 빈홈이 지은 고급아파트에서 살다가 휴가 때 빈그룹 소속 빈펄이 지은 리조트에서 여가를 즐기는 식이다. 최근에는 자동차 사업(빈패스트)과 스마트폰 사업(빈스마트)까지 진출한 덕에 베트남 일상에서 빈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높아지게 됐다.

    박원철 SK동남아투자법인 대표(오른쪽 두번째)와 응웬 비엣 꽝 빈그룹 부회장 겸 CEO(다섯번째)가 16일 베트남 하노이 빈그룹 본사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박원철 SK동남아투자법인 대표(오른쪽 두번째)와 응웬 비엣 꽝 빈그룹 부회장 겸 CEO(다섯번째)가 16일 베트남 하노이 빈그룹 본사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번 딜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투자주체인 SK그룹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SK그룹은 지난해 8월 베트남의 또 다른 대기업인 마산그룹 지분 9.5%를 약 5500억원에 매입한 바 있다. 마산기업은 베트남 민영기업 중 빈그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아직까지 베트남 국영기업 M&A 길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SK그룹이 선도적으로 지분 매입이 가능한 빈그룹과 마산그룹 지분 상당수를 입도선매한 셈이다.

    SK그룹 측은 투자를 통해 시세차익을 목표로 하거나 경영권 확보에 나설 생각은 전혀 없다고 설명한다. 딱히 배당을 의도하고 거금을 쓴 것도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득이 없는 상황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해 거금을 선뜻 쏟아 부은 것이다. SK 관계자는 “빈그룹과 마산그룹에 대한 투자는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의도할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다”라며 “앞으로 베트남 민영기업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현지 시장 투자기회를 모색하고 더 나아가 국영기업 민영화 프로젝트에도 공동 참여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일단 피를 섞어놓은 뒤 훗날 더 큰 사업 시너지를 노리겠다는 복안이다. 이는 SK그룹 차원에서 베트남 시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내다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팜낫뷰용 빈그룹 회장
    팜낫뷰용 빈그룹 회장
    또 하나 의미 있게 지켜봐야 할 포인트는 잇달아 한국 대기업에게 지분을 넘겨주는 빈그룹의 행보다. 이날 세리모니에 팜낫뷰용 회장이 직접 참석한 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는 자수성가해 대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창업가로 손꼽힌다. 그는 젊은 시절 우크라이나에서 베트남 식당사업을 하다가 ‘테크노컴’이란 라면 회사를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먹거리가 마땅치 않은 우크라이나 식품 시장을 강타해 ‘우크라이나 라면왕’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는 라면 사업으로 번 돈을 베트남에 가져와 해변에 투자했다. 리조트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2003년 냐짱에 초호화 리조트인 ‘빈펄 리조트 냐짱’을 열었는데 이 역시 대박이 났다. 사업 바탕이 됐던 테크노컴은 2009년 네슬레에 1억5000만달러에 매각했고, 이후 해변에 고급 리조트를 지어 흥행시키는 전략을 고수하며 승승장구했다. 건설업에 뛰어들어 연일 분양 대박 신화를 쓰기도 했다. 베트남 부동산 붐에 편승해 짧은 시간 급격하게 성장한 회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베트남 특성상 고위관료와의 커넥션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이런 점이 문제가 되어 공식석상에서 팜낫뷰용 회장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다. 외부사람과 여간해서 약속도 잘 잡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저한 로키(Low Key)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본업인 사업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권에 찍히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가 간만에 공식석상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현지에서 큰 화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그가 이번 딜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빈그룹이 연일 한국 기업에게 지분을 매각하는 속내에 대해서도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8월 빈그룹은 한화그룹에 4억달러 지분 투자를 받았다. 한화그룹이 4억달러를 들여 전환우선주 8400만 주를 발급받는 구조다. 1년도 안되는 사이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두 곳으로부터 막대한 지분 투자를 받은 것이다.

    한화그룹 역시 빈그룹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해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빈그룹이 베트남에 보유한 막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화그룹이 베트남 핀테크 사업에 펼치는 방안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업에 손을 뻗치는 빈그룹의 노력은 겉으로 알려진 것 훨씬 이상이다. 최근에는 한국 사모펀드를 상대로 빈그룹이 짓는 아파트를 건물채로 통매각하는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문제가 겹쳐 계약서가 오가지는 못했지만 한국 기업을 상대로 자금을 유치하려는 빈그룹의 열망이 매우 뜨겁다는 걸 보여준 셈이 됐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빈그룹 자금사정이 썩 좋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빈그룹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자동차 사업과 스마트폰 사업을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 초기 설비투자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제품이 시장에 안착하기 전까지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도 모른다. 빈그룹 입장에서는 팔 수 있는 것은 일단 팔아서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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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빈그룹이 자동차 사업과 스마트폰 사업을 동시에 시작했는지를 놓고도 여러 추측이 나온다. 가장 설득력이 높은 시나리오는 베트남 정부와의 ‘밀약설’이다. 베트남 정부가 빈그룹과 팜낫뷰용 회장을 건드리지 않는 대신 팜낫뷰용 회장은 베트남 정부의 숙원 사업인 스마트폰과 자동차 사업에 뛰어드는 식으로 ‘딜’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금 부담을 감수하고 두 가지 신사업에 동시에 뛰어드는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앞으로도 빈그룹이 자금 마련을 위해 여러 수단을 강구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한화그룹과 SK그룹에 이어 빈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한국 기업에 매각하는 세 번째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빈그룹이 베트남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기에 빈그룹의 행보를 놓고서도 설왕설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홍장원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5호 (2019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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