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SEAN Trend] 아세안 국가들도 미세먼지와 전쟁 중

    입력 : 2019.06.05 13:30:38

  • 지난 4월 태국 최대의 명절인 송크란을 맞아 치앙마이로 여행을 갔던 현지 거주 한국인 S씨 가족은 떠나기 직전까지 꽤 고민을 했다. 치앙마이의 미세먼지 수준이 최악이라는 뉴스가 연일 나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치앙마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공기질이 나쁜 도시 중 최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여행지로서 기피대상이었다. 한때 온화한 기후로 은퇴자들의 낙원, 한 달 살아보기의 최선호지였지만, 치앙마이 주민들이 나쁜 공기질 개선을 촉구하며 시위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었던 것이다. 올 초에는 방콕의 대기오염지수가 공기가 나쁘기로 유명한 뉴델리·베이징 등보다 심각하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지금은 사정은 좀 나아졌지만 태국의 미세먼지 발 공기 오염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이 미세먼지 문제는 아세안에서 비단 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내 다른 국가들도 미세먼지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세계 미세먼지 정보 공유 플랫폼 에어비주얼(AirVisual)이 펴낸 ‘세계 대기질(World Air Quality)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아세안에서 대기 오염이 가장 심각한 도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나타났다. 세계 전체 순위에서 10위를 차지했다. 베트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베트남 하노이는 공기질이 좋지 않은 도시로 전 세계 국가 중 12위를 차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자카르타의 2.5㎛(마이크로미터) 미만 초미세먼지(PM2.5) 평균 농도는 45.3㎍(마이크로그램)을 나타냈고, 하노이는 1m³당 40.8㎍을 기록했다. 경제 수도 호찌민의 경우는 하노이보다는 나았지만 서울보다 좋지 않았다. 지난해 호찌민시의 초미세먼지 연중 평균 농도는 26.9㎍/m³였는데 이는 서울(23.3㎍/m³)보다 약간 높은 것이다.

    태국 방콕은 공기질 나쁜 도시 글로벌 순위에서 24위를 차지했다. 아세안서도 공업이 발달한 도시들 대부분에서 공기오염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이들 국가의 미세먼지 발생 원인으로는 자국민들의 교통 습관이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들이 주로 애용하는 구형 디젤자동차들과 오토바이 등에서 뿜어내는 오염물질이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태국의 경우 코트라가 인용한 AIT(Asian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교 연구소에 따르면 PM 2.5 오염물질은 디젤 차량 사용(52%)에서 절반 이상이 발생한다. 쓰레기 또는 경작지 소각행위(35%)도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이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태국 방콕 시내 전경
    대기오염이 심각한 태국 방콕 시내 전경
    베트남의 미세먼지 발생원인도 태국과 비슷하다. 이와 관련해 코트라는 관련 보고서에서 올 4월 열린 베트남 정부 정기 보고회의에서 발언한 베트남 천연자원·환경부 차관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베트남의 대기오염이 심화된 것은 교통 밀도, 공사 현장, 공장, 쓰레기 소각장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회의석상에서 밝혔다. 교통 밀도와 관련해 실제 베트남 교통부가 2018년 국회에 제출한 ‘2008년 대비 도로교통 통계 보고서’ 통계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 사이 베트남 내 도로교통 차량 수는 연간 평균 8%씩 증가했다. 특히 호찌민시, 하노이, 하이퐁, 다낭과 같은 대도시의 증가율이 크게 늘어났다.

    이와 함께 자연 환경적 요인도 미세먼지 악화의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다. 태국의 경우 건기 때만 되면 공기순환이 더디게 이뤄져 오염 물질이 잘 분산되지 않아 오염이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노이는 높은 습도와 짙은 안개 때문에 공기 순환이 느려 대기 중 오염 물질이 쉽게 분산되지 않아 미세먼지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 베트남 정부 측의 설명이다.

    인도네시아는 경작을 위해 밀림을 태워 발생시키는 연무로 주변국의 공기질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종종 낙인찍히지만 인도네시아 역시 디젤 차량과 오토바이 등 교통수단이 미세먼지 발생의 주원인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을 연 인도네시아는 대회 개최를 앞두고 공기질 개선 때문에 종종걸음을 친 바 있다.

    대기오염과 관련한 문제가 이처럼 점점 심각해지자 각국은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 문제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제 막 본격 성장궤도에 올라선 이들 국가의 발전 영속성과도 연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 남성이 태국 방콕에서 대기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했다.
    한 남성이 태국 방콕에서 대기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했다.
    먼저 장기적 방안으로 현재 이들 국가들은 국가 에너지 수급 방안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들 국가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은 주로 석탄 발전이 많은데 이를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으로 다변화하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여러 걸림돌이 많아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의욕만큼 현실화되고 있지 않지만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대기 오염 정도가 심각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육성에 관한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현재 수준의 약 29%까지 감축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의 효과적인 감축과 에너지원 확충, 그리고 천연자원 고갈 방지를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에너지 혼합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최근에 에너지 자원 수입으로 인해 무역적자가 증가함에 따라 신재생에너지원 비중을 늘리기를 정부는 희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코트라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체 에너지원 중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25년에는 23%로, 2050년에는 31%로 가져가려 한다”고 밝혔다. 올해 인도네시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로의 투자 규모는 17억9000만달러로 추정된다는 것이 코트라 측의 분석이다.

    베트남도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도 전력 공급에서 화력과 수력의 발전 비중이 70%나 된다. 특히 석탄 발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가뜩이나 심각한 환경 문제가 더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같이 커지고 있다. 이에 신재생에너지로 조기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사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현재 민간에서 태양광 발전 사업 투자에 적극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베트남 전체로 보면 이 같은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볼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의 의지와 달리 인허가 과정이 오래 걸리는 등 제도적 미비점이 신재생에너지 정책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반해 각국의 미세먼지 잡기와 관련한 단기 대응은 적극적이다.

    태국을 예로 들어 보면, 정부는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태국 지하철(MRT) 공사를 임시 중단했고, 검은 연기를 발생시키는 디젤 차량 단속에 적극 나섰다. 특히 50대의 드론을 활용해 오염도가 특히 높은 지역에 고수압 스프레이를 분사하기도 했다. 물론 이 정도로 미세먼지를 잡을 수 있겠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빠른 대응에 대한 전체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디젤 사용 시내버스의 엔진윤활유를 교체하고, 오염 물질 배출을 줄이는 바이오 디젤의 일종인 B20 연료를 사용토록 했다. 태국은 인공강우 실험도 여러 번 했다. 이와 함께 이들 각국에서도 마스크, 공기청정기 등 미세먼지와 관련해 개별 안전장치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관련 상품의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코트라 방콕 무역관은 “N95 마스크 품절, 각종 공기청정기 품절 현상이 보여주듯 최근 방콕과 수도권 지역의 심각한 미세먼지 문제로 인해 태국 정부와 태국인, 태국 거주자들 사이에서 환경문제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아세안서 가장 공기 질이 좋은 국가는 필리핀으로 나타났다. 세계 대기질(World Air Quality)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필리핀의 초미세먼지는 14.6μg/m³로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월등히 낮았다. 특히 오염도가 높은 순으로 순위가 매겨진 전체 73개 국가 중 48위를 기록해 세계적으로도 미세먼지 청정지대로 분류됐다. 아세안으로만 한정하면 필리핀의 깨끗한 공기는 더 두드러진다. 아세안 전체 도시 평가에서 상위 15개 중 11곳이 필리핀의 도시들이었다. 동남아서 가장 깨끗한 공기를 가진 곳은 필리핀 라구나주의 칼람바로 초미세먼지 수치는 9.3μg/m³를 기록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5호 (2019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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