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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전운 감도는 호르무즈 해협… 美-이란 일촉즉발 슈퍼매파 볼턴, 전쟁도 수단으로 여겨
입력 : 2019.06.05 10: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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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사이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1979년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기 전까지 이란은 중동 내 대표적인 친미국가였다. 이후 꼭 40년간 이어져온 갈등의 국면이 정점을 향해 치닫는 양상이다.
워싱턴 일각에선 양측의 대치 상황이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과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003년 3월 20일 새벽 5시 34분. 미영 연합군은 군함 6척을 동원해 40여 기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향해 발사했다. 40여 일간 계속된 전쟁 끝에 사담 후세인 정권은 결국 무너졌다. 하지만 전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은닉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서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는 정당성 논란에 휘말렸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하산 로하니 이란 정권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싸움도 일면 비슷하다. 지난해 5월 이란핵협정(JCPOA)을 파기한 트럼프 정부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면서도 이란의 도발 시 응징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B-52H, 패트리어트 포대 등은 이미 중동 지역에 배치돼 있다. 이란이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해 군사도발을 감행할 것이란 정보가 입수됐다는 이유였다. 또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이 소규모 피습을 당하자 이란 배후설이 제기되며 전쟁 일보 직전까지 다가서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는 우방국들의 반발 속에서도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전면 봉쇄하겠다며 고강도 압박에 나선 데 이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정권교체 시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6년 “나의 최우선 과제는 재앙에 가까운 이란과의 핵협상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그는 당선 전 출간한 저서 <터프해질 시간(Time to Get Tough)>에서 “우리는 이라크를 위해 후세인이라는 흉포한 독재자를 제거해줬다”며 “전쟁의 비용과 희생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석유는 우리가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트럼프 정부는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전면 봉쇄하겠다며 압박에 나섰다.
또 “2009년 이란에서 녹색혁명이 일어났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위대를 돕겠다고 일찍 나섰으면 이란 지배체제는 쉽게 전복됐을 것”이라며 “이란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인 이스라엘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국민 다수는 이란의 다수 종파인 시아파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 중동 내 시아파 패권을 지향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과 대립해온 이란을 경계하는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트럼프의 중동전략의 핵심은 석유 헤게모니와 친(親)이스라엘 노선이다. 당선 이전 발언은 대통령이 된 뒤의 발언보다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그는 저서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가리켜 “미국의 부를 볼모로 잡고 있는 불법 카르텔”이라며 이란과 베네수엘라, 이라크 등 회원국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미국이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을 봉쇄한 것은 바로 OPEC의 분열을 꾀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대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우군으로 개별 포섭해 유가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보면 당선 이전 발언을 무서울 정도로 이행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전직 대통령들이 백악관에 입성한 뒤 참모들의 의견에 포획되거나 현실적 한계를 받아들여 노선을 수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언론들은 물론 외교 전문가들도 일제히 대이란 강경책의 배후로 볼턴을 지목하고 있다. 대표적인 반(反) 트럼프 언론인 CNN은 볼턴을 가리켜 ‘전쟁을 속삭이는 자(War Whis perer)’라고 불렀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이 북한과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해선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이란 문제에선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존 볼턴 미 NSC 보좌관
볼턴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부득이 부시 정권 당시 외교를 장악했던 ‘네오콘’을 다시 소환해야 한다. 네오콘들은 이란이 다시 친미국가가 된다면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해소되고, 중동의 민주화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더불어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의 헤게모니도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이란의 극한 대결이 어떻게 결론을 맺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전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는 중국과 유럽 등의 소극적 태도로 기대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 위기가 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이란의 정권교체에 있다는 점이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5호 (2019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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