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B내고도 당연한 듯 멀리건 ‘반쪽 골프’ 언제까지 하시겠습니까?

    입력 : 2019.05.13 14: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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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운드를 하면서 늘 안타깝죠. 첫 홀, 마지막 홀 모두 파 적어내고 물에 빠지면 그린 근처로 이동하고, OB 나면 ‘멀리건’을 스스로 외치며 한 번씩 더 치고. 골프는 치지만 ‘스포츠’를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늘 아쉬워요.”

    최근 <파인드 유어 템포>라는 골프책을 펴낸 저자 이용희 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며 처음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현재 한국 골프의 현실과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고 ‘접대’ ‘과시’라는 예전 한국 골프의 방향을 벗어나 골프 대중화 시대에 걸맞게 골프가 ‘스포츠’로 제자리를 잡아야 할 시대가 왔다는 결론을 얻었다. 생각해보자. ‘과연 제대로 골프라는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면 ‘스스로 골프의 룰을 파괴하며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고민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아마 많은 한국의 아마추어 골퍼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OB를 내도 벌타 없이 멀리건을 몇 개씩 받고 ‘오케이’를 잘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 취급을 받고 첫 홀과 마지막 홀은 ‘배려’라는 마음으로 모두 파를 적어준다. 당연히 스코어만 보면 고수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스코어라는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골프라는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는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반쪽 골퍼’들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이제는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이 씨는 한국에서 골프가 대중화되기 전인 30년 전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곳에서 이 씨에게 골프 규칙을 숙지하고 규칙에 맞게 18홀 플레이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쳤던 골프는 한국과는 너무 달랐죠. 1년 내내 라운드를 돌 수 있는 회원권은 저렴했고 오히려 연습장은 훨씬 비쌌어요”라고 말한 이 씨는 “덕분에 최대한 필드에서 많이 골프를 칠 수 있었고 크고 작은 대회들에 참가하며 실력을 쌓았습니다”라고 돌아봤다. 그리고 “규칙을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바로 지적을 당하거나 라운드가 끝난 뒤 지적을 하는 건 기본이었다”며 “그 부분에 대해 누구도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하고 반대로 규칙을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했다”고 돌아봤다.

    3년여 만에 싱글 골퍼가 된 이 씨는 귀국해 ‘한국 골프’를 접한 뒤 문화충격에 빠졌다. 골프를 하나의 스포츠로 여기며 즐겼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어떤 모습일까. 현재 한국 골퍼들이 골프장에서 즐기고 있는 ‘골프’를 생각하면 된다. 캐디가 볼을 집고 닦아준 뒤 다시 라이에 맞춰서 놓아주는 모습은 한국이 유일하다. 또 스코어카드를 보면 1번 홀과 18번 홀에 아예 파를 뜻하는 동그라미가 처음부터 새겨져 있고 멀찌감치 OB티와 그린 앞쪽에 빨간 해저드 티가 위치해 있다. 오히려 규칙을 좀 지키면서 치면 ‘고리타분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예전에는 골프를 접하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에 주로 부자들의 스포츠로 ‘접대’와 ‘배려’가 넘쳤다고 웃어넘길 수는 있다. 그때 골프를 친다는 것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의 상징이었다. 당연히 누군가를 접대하기 위해서는 규칙보다는 편하게 칠 수 있게 하는 ‘배려’가 있어야 했고 스코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됐다.

    문제는 초창기 ‘한국 골프’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골프장들은 좀 더 많은 골퍼들을 받기 위해 여전히 카트에 태워 보내고 그린에서는 캐디가 볼을 닦고 놓아주고 그대로 치라고 한다. 벙커샷을 하고 벙커를 정리할 시간조차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벙커 정리를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마추어 골퍼들도 그리 많지 않다.

    룰을 모르는 골퍼들도 많지만 ‘룰을 알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된 것. 이게 ‘한국 골프’의 가장 큰 문제다. ‘골프’는 치지만 ‘골프’가 아닌 것. 다른 스포츠들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동호인 축구와 비교해보자. 골프에서 해저드에 볼이 빠진 뒤 해저드 건너편 그린 근처에 볼을 놓고 치는 것이나 그린 경사를 읽는 법도 모르고 캐디에게 물어보며 치는 것은 축구에서 패스 받은 볼을 손으로 들고 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패널티 박스 안에서 날아오는 볼을 손으로 쳐내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바로 패널티킥이다. 또 ‘멀리건’은 예의상 서로 줄 수는 있지만 마치 테니스나 탁구, 배드민턴에서 서브를 실패한 뒤 상대방이 “서브 한번 다시 넣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서로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것. 골프에서도 지금 적용되는 많은 ‘로컬룰’들은 배려가 아닌 ‘규칙 파괴’다. 전통이 있고 수많은 규칙이 있지만 ‘수박 겉핥기’처럼 모양만 따라하는 골프. 바로 한국의 골프 현실이다.

    손쉽게 파를 잡고 디봇에 빠진 볼을 빼내 좋은 곳에 놓은 뒤 버디를 잡아내면 실력자일까.

    골프는 축구나 야구, 탁구, 테니스 등 일반적인 스포츠들과는 전혀 다르게 ‘규격이 정해진 코스’가 없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골프코스의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한국처럼 산악형 골프장들은 코스가 좁고 나무들이 빽빽하다. 해안가나 스코틀랜드에는 나무는 없지만 우거진 러프들과 거센 바람이 골퍼들을 시험한다. 가장 큰 특징은 굿샷에 대한 보상과 미스샷에 대한 패널티가 극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골프를 칠 때 굿샷만 골퍼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아니다. TV에 나오는 환상적인 묘기샷처럼 수풀 속이나 나무 뒤에서 볼을 꺼내고 다시 그린을 공략하는 과정 또한 골프가 주는 참맛이다. 나무 사이로 친 볼이 깨끗하게 빠져나가 페어웨이에 떨어지는 순간 느껴지는 성취감. 그 순간만큼은 타이거 우즈도 부럽지 않다. 또 자신이 없다면 벌타를 받고 볼을 빼낸 뒤 치면 된다. 벌타를 받는 과정 또한 골프라는 종목의 특징이다. 벌타를 받고 싶지 않다면 조금 더 집중하고 조금 더 신중하게 한 샷 한 샷 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도 하고 대자연의 위대함도 느끼고 코스를 설계한 사람의 마음까지 꿰뚫는 혜안이 생긴다.

    규칙을 지키고 한 발자국 더 움직여 볼을 집고 스스로 그린 경사를 읽어보는 것. 결코 귀찮거나 시쳇말로 ‘없어 보이는’ 행동이 아니다. 그저 ‘골프를 좀 치는 사람’이 아닌 ‘골퍼’가 되는 과정이다.

    끝으로 늘 골프로 고민하고 연습하는 열혈 골퍼들과 함께 <파인드 유어 골프> 속 문구를 소개해드리고 싶다. “골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골프 스윙이 점점 어려워지고 심리적인 면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골프의 모든 것을 터득한 것 같은 큰 성취감을 맛보았다가도 다음 날엔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 실망의 늪에 빠지는 것이 골프다. 수많은 실망과 좌절을 견디어냈을 때, 한 단계 기술도 향상되고 멘탈도 강해지는 것 또한 골프다. 끝없는 도전과 인내심이 골퍼를 만든다.”

    [조효성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4호 (2019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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