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트럼프 흔들리자 민주당은 이미 대선 모드, 해리스·부커·질리브랜드·오루크 유색인종·여성 후보까지 줄줄이 출마 선언

    입력 : 2019.02.12 17:40:56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역사상 최장기간 ‘셧다운(연방정부 부분폐쇄)’으로 인해 힘겹게 집권 3년차를 시작했다.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는 2020년 11월이다. 아직 22개월이나 남아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1년 내 최저치로 곤두박질치자 민주당은 벌써 대선 바람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잠시 시간을 2016년 대선 때로 되돌려보자. 당시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걸출한 후보에다 좌파 정책으로 돌풍을 몰고 온 버니 샌더스가 양대 산맥으로 버티고 있었다. 반면 공화당은 10여 명의 군소 후보 간 ‘도토리 키 재기’로 당내 경선을 시작했다. 트럼프가 막판 대선전에 뛰어들었을 때도 코웃음을 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곧바로 여론조사 1위로 치고 올랐다. 공화당 내 주류 정치인들은 트럼프의 급부상에 허둥댔다.

    주지사는 물론 의원 경력조차 없는 철저한 ‘아웃사이더’ 트럼프는 결국 힐러리를 꺾고 미국 45대 대통령 자리를 꿰찼다. 그는 여러 면에서 전임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었다.

    2019년 초 민주당 상황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미국 언론들은 “민주당 후보군은 40명이 넘는다”며 “꿀벌들이 모이는 것 같다”며 조롱을 내놨지만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을 사실상 재추대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민주당은 흥행몰이를 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지난 2년간 정치적 무기력증에 빠졌던 민주당이 지난해 11월 하원 승리를 기반으로 정국 주도권 싸움에 다시 뛰어든 점도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출마선언을 한 사람은 엘리자베스 워런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69)이다. 그녀는 지난 대선 때는 출마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디언 혈통을 가졌다고 주장해온 워런 의원을 ‘포카혼타스’라 부르며 깎아내리고 있지만 내공이 만만찮다. 입지전적 스토리도 갖췄다. 시골 오클라호마 출신으로 아버지는 청소부, 어머니는 백화점 점원이었다. 아이까지 있는 몸으로 로스쿨에 진학했고 하버드대 교수까지 올랐다. 의회 내에선 금융 전문가로 입지가 탄탄하다. 그녀의 출사표는 중산층 재건이다. 대기업과 부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독선적 이미지에다 인디언 혈통 논란은 득보다 실이 컸다.이 를 극복하려는 듯 출마 동영상에선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친근함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 다른 거물급 인사는 아직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이다.

    지난 대선에서 아들 사망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던 바이든은 77세의 고령이 걸림돌이지만 최근 야외에서 조깅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노익장을 선보이고 있다. ‘원조 좌파’ 샌더스 의원(78)의 경우 역시 나이가 문제지만 열혈 지지자들이 최근 전국 수백 곳에서 동시에 ‘콘퍼런스 콜’ 형식의 회합을 가지며 출마를 종용하고 있다.

    억만장자 기업인이자 뉴욕시장 출신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중도 노선을 외치며 사실상 출사표를 던진 상태지만 그 역시 바이든과 동갑이다. 이로 인해 민주당 진영에선 신선한 세대교체 바람에 더 기대를 거는 눈치다.

    카말라 해리스(캘리포니아주), 커스틴 질리브랜드(뉴욕주) 등 여성 상원의원 2명이 이미 출전을 선언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최연소 장관을 지낸 히스패닉계 훌리안 카스트로도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모두 40~50대 초반의 ‘젊은 피’다. 해리스 의원은 인도 출신인 어머니와 자메이카 이민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유색인종 여성 최초의 캘리포니아 검찰총장이 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상원까지 무난히 올라섰다. 질리브랜드 의원은 뉴욕주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상원의원 자리를 물려받은 차세대 여성 정치인으로 꼽힌다. ‘미투 운동’을 주도하며 지명도를 높인 질리브랜드 의원은 과거 민주당내 중도파인 ‘블루독’에 속했으나 상원의원이 된 뒤 좌클릭을 시작했다는 평가다.

    사진설명
    ▶중도 이미지 벗고 너나없이 선명성 표방

    ‘노익장’ 바이든·샌더스도 곧 뛰어들 듯

    ‘제2의 오바마’로 불리는 코리 부커 역시 발언권을 키우고 있다. 부커 의원은 지난 9월 브렛 캐버노 대법관 후보 청문회에서 ‘스파르타쿠스’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들은 너나없이 진보적 선명성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최근 민주당 내 주도권이 중도에서 좌파로 넘어간 상태인 데다 미지근한 태도로는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수 없다는 분위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이 주목하는 다크호스도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테드 크루즈 공화당 의원에게 도전했다가 2.6%포인트 차로 석패한 베토 오루크 전 하원의원(텍사스)을 집중 보도했다. 낙선 의원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이례적이다.

    1972년생인 오루크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샌더스와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말 진보성향 시민그룹인 ‘무브온’으로부터는 선호도 1위(15.6%)로 꼽혔다. 바이든, 샌더스, 워런 등을 모두 제친 것이다. 중간선거 전 정치자금 3800만달러를 끌어 모아 전국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브온은 한국으로 치면 ‘노사모’나 ‘달빛기사단’을 연상케 하는 집단이다. 무브온은 2016년 대선에서 샌더스 열풍을 주도했고, 차기 대선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밖에 리처드 오제다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 툴시 가바드 하원의원(하와이), 존 델라니 전 하원의원 등이 이미 출마를 선언했다. 또 존 히켄루퍼 콜로라도 주지사, 셰러드 브라운 오하이오주 상원의원, 에이미 클로버샤 미네소타주 상원의원 등도 후보군으로 거명된다.

    민주당의 최대 후원자인 억만장자 톰 스타이어는 불출마를 택했고,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장외에서 몸풀기를 하는 중이다.

    민주당 경선의 관전 포인트는 과연 백인 남성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유색인종이나 여성 후보를 내세울 것인지가 첫 번째다. 백인 남성이라면 공화당 표까지 흡수할 여지가 있긴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마이너리티’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후보들이 너도나도 트럼프와 정반대의 정책을 내세울 것이란 예상이다. 다음 대선은 ‘극과 극’이 맞서는 한판 승부가 될 것 같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1호 (2019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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