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업프런티어] “북한 가정식 궁금하시죠 온면·두부밥 맛보러 오세요”

    입력 : 2019.02.01 15:02:52

  • 서울 중구 정동에 자리한 서울성공회성당 골목에 들어서면 그믐달 아래 ‘월향’이라 쓰인 간판이 눈에 띈다. 술 꽤나 마시는 이들에게 트렌디한 술집으로 기억되는 이곳은 ‘달의 향기가 나야한다’는 고즈넉한 이름부터 낭만적이다. 상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세종대로 뒷골목에 4년 전 문을 연 월향은 당시 생소했던 막걸리바를 표방하며 직접 제조한 막걸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결과는 대성공. 평일이나 주말 모두 점심·저녁시간에 만석인 이곳의 한 달 매출은 3억원이나 된다.

    전통 주점은 막걸리에 부침개가 전부 아니냐는 편견을 깨고 이곳을 손꼽히는 맛집으로 이끈 이는 이여영 ㈜월향 대표다. 첫 직업이 언론사 기자였던 그가 외식업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어려움에 처한 막걸리 양조장을 취재하면서부터. ‘이렇게 좋은 술이 왜 제대로 팔리지 않느냐’며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홍대 앞에서 ‘낮술 환영’ ‘월향’이란 간판을 내건 게 10년 전이었다. 그 동안 서울 시내 주요 상권에 그가 발로 뛰고 꾸민 매장이 하나 둘 늘었다. 와인전문점 ‘문샤인’, ‘조선횟집’, 제주도식 샤브샤브 ‘문사부’, ‘산방돼지’, ‘문차이나’, ‘버거문’, 한우전문점 ‘우월관’ 등 브랜드만 10여 개. 지난해 11월엔 종합외식기업 놀부와 합작법인 ‘서울의 맛 : TOS(Taste of Seoul)’을 설립하고 인천 송도 트리플스트리트에 북한 가정식 전문점 ‘료리집 북향’ 1호점을 개장했다. 국내 최초의 프랜차이즈 북한음식점이다. 과연 그가 생각하는 외식업 성패의 기준은 무엇일까. 월향의 성공요인이 궁금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월 중순에 진행됐다. 이 대표는 올 봄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2015년 정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임정식 오너셰프와 결혼했다. 정식당은 ‘2019 미쉐린 가이드’ 서울판에서 별 2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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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 10년차,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 ▶막걸리집 월향의 매출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평일, 주말이 따로 없다던데.

    ▷한 달 매출이 3억원 정도 되요. 점심시간이면 11시 반부터 만석이죠. 광화문 오피스 타운은 주말장사가 꽝이라고들 하는데, 토요일에도 하루 종일 손님이 꽉 들어찹니다.

    ▶아니, 이곳이 주요 상권은 아닌데요?

    ▷주말에 들르시는 손님층이 다양해요. 주변 직장인도 있고, 놀러 오신 분들, 해외 관광객도 찾으시고. 이 길이 운치가 있잖아요. 처음 이곳에 문을 연 게 4년 전인데, 그 동안 단골손님 중에 외식업계 전문가분들부터 경영대학 교수님들까지 이곳은 상권이 아니라 망할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희가 운영하는 매장 중 가장 매출이 좋습니다.

    ▶굳이 이곳에 문을 연 이유가 있습니까.

    ▷직장생활은 저기 보이는 사랑의 열매 건물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니 누구보다 이곳을 잘 알기도 했고, 한번 오게 되면 다시 오겠구나 싶었죠. 점심 먹고 산책을 즐기는 코스거든요. 또 처음엔 상권이 아니라 7개월간 임대료도 없었어요. 지금이요? 매달 2000만원, 꽤 높아졌죠?

    ▶요즘 꽤 일정이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외식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됐습니다.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식당은 돈을 버는 데 한계가 있거든요. 가게가 늘 때마다 인건비나 지출이 똑같이 늘어나니…. 정말 볼륨이 커질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어서 고민 중이죠.

    ▶월향은 현재 10여 개 브랜드를 운영 중인데 프랜차이즈 사업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외식업에서 볼륨을 키우는 방법 중 하나가 프랜차이즈 아닙니까.

    ▷저희는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는데, 공장이나 물류시스템에 대한 역량이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그 역량을 가진 회사와 협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놀부를 만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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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는 5년 후를 바라보는 눈 필요해 ▶놀부와의 협업은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놀부는 30여 년 전에 설립된 종합외식기업이에요. 인프라와 시스템이 완벽합니다. 처음엔 저희 매장에 손님으로 오신 모건스탠리 분들이 제안을 해 만나게 됐어요. 월향은 매번 재미있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데, 놀부를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요. 놀부는 소비자의 감성을 사로잡는, 그러면서도 전혀 놀부스럽지 않은 기획에 목말랐고, 저희는 놀부의 인프라와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였죠.

    ▶합작으로 론칭한 브랜드가 북한가정식 전문점인데.

    ▷인천 송도에 론칭했는데, ‘료리집 북향’이라고. 북향은 북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목표를 향해 공격적으로 전진한다는 뜻도 있어요. ‘북향온반’ ‘온면’ ‘두부밥’ ‘어복쟁반’ 등을 내고 있습니다. 놀부의 직영점 관리나 프랜차이즈 가맹점 관리 등의 시스템을 활용하고 또 모건스탠리가 아시아권에 편의점이나 디저트 회사 등이 있어서 먹거리 상품을 통한 해외진출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PB상품이나 김치 등을 만들어 합작법인인 ‘서울의 맛’이 식품회사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것이죠.

    ▶구체적인 기획이라면.

    ▷현재로선 매장에 집중하고 있어요. 료리집 북향의 프랜차이즈는 획기적인 가맹 모델을 제시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가맹점이 돈을 벌지 못하면 가맹 본부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구조’가 기본인데, 월향과 놀부가 이를 실천하려고 3가지 주요 원칙을 만들었어요. 식자재 마진 제로화, 가맹점 최저 수익 미달 시 로열티 제로화, 가맹점 광고비 분담 제로화 등인데 철저히 실천하려고 합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를 전개를 할 계획입니다.

    ▶북향의 해외진출도 계획하고 있는 겁니까.

    ▷아시아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힙스터들이 모인다는 도쿄나 맨해튼에 가면 아무리 비싸고 새로워도 별로 놀라지 않아요. 그런데 단 하나 ‘북한’에 대해선 관심이 집중됩니다. 재밌어하죠. 얼마 전에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북한음식에 대한 시연회를 열었는데, 사실 송도가 서울에서 이동하기에 거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방에서 올라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영국인 셰프도 왔더군요. 너무 궁금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북한음식을 선택했고, 현재 중국 진출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놀부와 월향의 각자 역할이 있을 것 같은데요.

    ▷월향이 새로운 메뉴를 만들면 놀부가 시식을 합니다. 그리고 놀부의 R&D가 더해져 대량생산을 하는 방식으로 출시하죠. 기획은 월향이 생산은 놀부가 하는 방식입니다.

    ▶북한음식을 만든다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인데.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다보니 공부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국내 북한음식점을 모두 가보고 그 위에 상상을 덧입혔어요. 물론 실향민 분들의 감수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음식점이라고 해서 북한 분들만 드시는 건 아니잖아요. 서울사람들이 먹는 북한스타일의 음식인데, 양념이 세지 않고 신선한 재료의 맛을 살려 상에 올리고 있어요. 장사를 해보니 5년 후를 바라보고 가야 하더라고요. 요즘처럼 고령화가 화두인 시기에 재료의 맛을 살린 북한음식이 트렌드에 맞다고 확신합니다.

    ▶주로 어떤 분들이 오십니까.

    ▷아저씨 손님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이와 함께 오는 가족들이 많아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양념이 센 걸 잘 못 먹잖아요. 대부분 메뉴가 슴슴하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예 ‘노 키즈 존’이 아니라 ‘예스 키즈 존’이라고 명명했습니다.(웃음)

    ▶고객층을 구분해보면 주요 타깃이 아이(~10대)와 부모(30대 이상)네요.

    ▷장사하는 입장에서 냉정히 말하면 20대보다 40~50대가 타깃일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원을 받잖아요. 그래서 이 두 층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북향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IPO(Initial Public Offering·주식공개상장)나 매각도 경험하고 싶은데, 놀부와 3년을 얘기했어요. 잘돼도 당장 매각하지 말고 3년 뒤에 이 합자회사를 IPO를 하자고. 국내에선 200~300개 매장, 동시에 아시아는 직영점과 라이선스 계약 형태로 진출할 계획입니다.

    지금은 창업보다 지켜봐야 할 시기 ▶혹 메뉴 기획할 때 임 셰프의 도움도 받는지요.

    ▷아니 전혀요. 바깥에서 하는 일을 집에 갖고 가진 않아요. 사실 그런 환상이 없었던 건 아닌데, 싸우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서로 각자의 일엔 관여하진 않습니다.

    ▶최근 TV프로그램을 비롯해 외식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저도 긍정적인 말을 하고 싶긴 한데, 현실이 녹록지 않아요. 외식업이 주목받는 건 사실 다른 분야가 더 힘들어 그런 게 아닐까요. 치킨집이라도 할까, 뭐 이런 식의 생각들이죠. 하지만 외식업은 뒤로 물러설 곳이 없어요. 제 주변 친구들에겐 지금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니 그건 왜 그렇죠?

    ▷손님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마음을 닫은 시기에요. 작은 가게를 차려도 2억원은 드는데, 외식업은 한번 고꾸라지면 하루아침에 망하게 됩니다. 개업하고 안 된다고 바로 접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가게가 팔리질 않아요. 이렇게 저렇게 시간 보내다 보면 3~4억이 훅 날라 갑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놀러 다니는 게 어쩌면 득이에요. 외국에 나가서 식재료나 와인을 공부하는 게 남는 장삽니다. 현금이 많으면 모를까 지금 무턱대고 가게를 차리는 건 무모합니다.

    ▶구체적으로 창업의 소나기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제가 10년 전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흥청망청의 분위기가 있었어요. 홍대에 20평짜리 막걸리집을 내고 시작했는데, 그 때는 법인카드 손님도 많았고, 알아서 달라는 분들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1000원, 2000원에 민감합니다. 앞으로 저성장에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이어질 텐데, 이건 저희가 일본 오사카에서 4년간 장사하면서 이미 겪은 상황이에요. 그렇다면 상황에 맞는 창업을 하면 되는데, 지금은 이 상황이 계속될지 아니면 경기가 살아날지 알 수가 없어요. 좀 더 현실적으로 다음 대선의 향방을 어느 정도 보고 나서 창업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예를 들어 임금이 계속 오른다면 기계화되고 머리로 승부하는 가게를 내야겠죠. 장사는 개인의 정치성향과는 다른 문제잖아요. 저는 이걸 사회적 감수성이라고 생각하는데, 10년 전엔 해도 됐지만 지금은 안 되는 일들이 있어요. 그게 없는 가게, 회사는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정치상황도 지켜봐야죠.

    ▶현재 외식업계 혹은 사회감수성의 트렌드라면.

    ▷일단 술집은 당분간 어렵습니다. 제가 2000만원 퇴직금에 2000만원 빚내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래도 그 때 빨리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술집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마진이 높고 매일 현금이 돌잖아요. 그 때 모은 돈으로 확장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술을 그렇게 안 마셔요. 지금은 밥집이죠. 그렇다고 수준 낮은 밥집은 사람들이 찾지 않습니다. 혼자 가도 좀 있어 보이는, 이 가게에서 밥을 먹는 게 부끄럽지 않아야 해요. 예를 들어 꼬막비빔밥이 요즘 인기인데, 여기엔 미식가적인 느낌과 트렌드가 한몫하고 있는 거예요. 밥집을 하는데 있어 보이면서 가격은 중상. 저희도 손님들이 선택하는 메뉴의 가격 선을 살펴보면 1만5000원까진 무난하게 올라갑니다. 오히려 싸면 못 믿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요즘엔 SNS를 통한 맛집 전파도 무시할 수 없는데요.

    ▷그건 저희도 공부 중인데, 그런 곳에 가보면 물론 맛좋은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많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맛있다고 올리거든요. 이게 뭔가 싶었는데, MIT에서 발표한 내용을 봤더니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소뇌가 작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영상을 보고 먹지 않고도 맛있다고 느낀다는 거죠. 그만큼 비주얼이 좋아야 합니다. 그걸 ‘인스타그래머블’하다고 하던데 어찌보면 현 시대는 ‘맛있다’보다 ‘인스타그래머블’하다가 상위 표현인 것 같아요.

    ▶월향의 목표가 있다면.

    ▷작고 돈 잘 버는 마케팅회사가 되는 게 제 목푭니다. 덩치를 키우기보다 아이디어를 내고 구현하는 방향으로 갈 생각이에요.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는데, 저는 큰 조직을 이끄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디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지 보는 게 주특기여서 큰 회사들과 협업하면서 커가려고 합니다.

    이여영 월향 대표 서울대를 졸업하고 두 곳의 언론사를 거쳤다. 이후 막걸리주점 ‘월향’을 내고 10년 동안 10개의 브랜드를 일궜다. 최근 놀부와 합작으로 ‘료리집 북향’을 내고 프랜차이즈 사업에 나섰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1호 (2019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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