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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신년기획] 北여행금지국 족쇄 풀리면…남북 잇는 `평화순례길` 활짝
입력 : 2019.01.01 18: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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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新경제구상 / ① 다시 그리는 新관광 패러다임 ◆
두 도시의 거리는 채 200㎞가 안 된다. 그러나 분단이 낳은 시공간의 단절은 서울과 평양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만들었다. 전쟁이 만든 철저한 폐허 속에서 재탄생된 두 도시 가운데 서울은 전후 경제 기적을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쇼윈도'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평양은 고립과 국제 제재 속에서 세계와 담을 쌓았다. 세계와 단절된 평양에는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상징하는 대규모 상징물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고층빌딩과 대형 상업·위락 시설이 속속 들어서면서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과 빌딩숲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과 평양을 함께 묶는 '피스 트래블(Peace travel)' 루트를 개척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북한도 서울을 방문했던 관광객이 평양도 같이 방문할 수 있도록 나름의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독자적 북한 방문 금지 조치나 유엔 제재 등 난관도 있다.
하지만 비핵화가 진전되고 인적 교류·왕래 문제가 선제적으로 풀린다면 서울과 평양을 잇는 '평화의 여행길'이 다른 경제협력 분야보다 빠르게 현실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관광 자체는 유엔 제재상 저촉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관광대금 또한 유엔 제재상 '벌크 캐시(bulk cash·대량의 현금)' 제한 조항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이다. 정부 소식통은 "관광은 유엔 제재와 무관한 분야라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큰 분야"라며 "개별 여행자들이 평양 도착 시 북측 여행사 등에 개별적으로 지불한다면 벌크 캐시 관련 유엔 제재 조항과 상충되는 부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 관광객들의 개별적인 북한 방문은 허용되고 있다"며 "북한 관광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여행사들의 관광객 모집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평양은 이미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상징물들과 비교적 잘 계획된 공원·광장으로 이뤄져 있어 특색 있는 관광지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도시 설계·건축 전문가인 민경태 (재)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은 "사회주의 이념의 기반 위에 세워진 평양이 이질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서울과 대조되는 특성으로 관광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 팀장은 "평양의 모습을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살아 숨쉬는 '도시박물관'으로 보존한다면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는 광역경제권은 전 세계 관광객이 꼭 방문해보고 싶은 명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이러한 평양의 랜드마크들을 도보 혹은 자전거 여행길로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길이 곧 훌륭한 관광상품이 된 제주 올레길처럼 이른바 '평양 올레길'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앞서 민 팀장은 이 같은 '평양 올레길'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우선 보통강구역의 105층짜리 랜드마크인 류경호텔에서 출발해 중구역 평양성과 보통문, 인민문화궁전과 평양체육관을 거쳐 옥류관과 맞먹는 평양냉면의 강자 '청류관'으로 가는 길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 김일성 광장에서 인민대학습당, 주체사상탑과 옥류관, 만수대언덕으로 이어지는 길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색다른 느낌을 주는 도보여행 루트가 될 것이다.
대동강보다 강폭이 좁은 보통강변에 자연 상태를 보존한 수변공원을 조성하고 상업시설을 배치해 파리의 센강이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운하, 일본 오사카 강변과 같은 운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방안도 가능하다.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이미지로 각인된 김일성광장에는 대형 노천카페나 공연장을 배치해 관광객을 불러모을 수 있다. 북측 관광당국도 지난해 말부터 국영여행사를 통해 김일성광장에서 새해를 맞는 양력 설맞이 관광상품을 내놓으며 광장이 가진 관광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평양의 대학타운이자 외교단지인 동대원·대동강 구역에는 서울 대학로나 이태원 같은 청년·국제 문화거리를 엇갈리게 조성해 새로운 문화 중심으로 키울 수도 있다. 이곳에서 평양과 세계의 청년·음식 문화가 만난다면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가진 관광지가 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평양역 서쪽에 있는 공해시설인 평양화력발전소는 원형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예술·상업단지로 변모시키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발전소를 개조한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이나 과거 거대 육가공·포장단지였던 뉴욕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 Packing District)'가 맨해튼에서도 가장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로 바뀐 것은 북측도 유심히 참고할 만한 사례다. 마침 평양화력발전소 근처에는 북한 미술을 대표하는 만수대창작사도 있어 연계 관광이나 관련 산업 육성도 용이할 전망이다.
매경·(재)여시재 공동기획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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