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데이비슨 入門, 캐주얼한 아이언 883

    입력 : 2018.12.04 15:41:46

  • 이름이 중요하다. 사람이나 제품이나 이름이 첫인상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언 883’은 단순한 이름이다. 883은 883cc 배기량을 뜻한다. 배기량 설명을 덜면 더욱 직설적이다. 철(Iron)이라니. 보통명사를 그냥 제품명으로 박아 넣었다. 프레스 기계가 누르듯 쿵, 이름 자체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철이든 쇠든 할리데이비슨의 근간이 되는 물질 아닌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름 지은 모터사이클은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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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바지에 체크셔츠가 어울리는 아이언 883

    아이언 883의 실물을 보면 더욱 감흥이 진해진다. 검다. 핸들 바부터 리어 펜더까지 다 검다. 게다가 무광이다. 무광 검정색은 아이언이라는 이름을 더욱 극적으로 도드라지게 한다. 다른 색도 있지만 대표 색상이 무광 검정이다. 이름처럼 간결하다. ‘아이언’이 주는 어감과 뜻을 시종일관 내세운다. 한결같은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런 고집, 나쁘지 않다.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낼 때 모터사이클은 빛나 보인다. 아이언 883은 그걸 안다.

    아이언 883은 할리데이비슨 라인업 중에선 크지 않은 편이다. 크기로 서열을 매긴다면 할리데이비슨 라인업에서 앞줄에 선다. 하지만 일반적인 모터사이클보다는 조금 크다. 적당히 덩치를 뽐낸다. 그 차이가 아이언 883이 영역을 고수할 토대가 된다. 할리데이비슨이면서 기존 할리데이비슨의 이미지와 다른 색을 칠할 모델. 아이언 883이 속한 할리데이비슨 장르만 봐도 속내가 읽힌다. 아이언 883은 ‘스포스터’ 라인업에 속한다.

    할리데이비슨의 투어링 모델보다 경쾌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패치 붙은 가죽 베스트와 징 박힌 부츠보다는 청바지에 체크 셔츠와 반스 운동화가 어울리는 할리데이비슨이다. 기존 이미지를 전복한다. 아이언 883은 ‘다크 커스텀’ 슬로건의 중심 모델이다. 커스텀 문화를 즐기는 젊은 층의 기본 뼈대가 될 수 있는 모터사이클. 물론 아이언 883은 굳이 뭘 더 달거나 빼지 않아도 완성된 자태를 자랑한다. 모터사이클 커스텀 장르의 하나인 바버 스타일을 채용했다. 크기나 성능보다 자유롭게 문화로서 즐기는 걸 우선한다. 보다 젊은 할리데이비슨인 셈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젊은’ 할리데이비슨이라고 꼭 나이가 어린 친구를 지칭하는 건 아니다. 젊은 감각으로 모터사이클을 대하고 즐길 사람들이라면 모두 해당된다. 투어링의 안락함과 화려함도 좋지만, 경쾌한 아메리칸 캐주얼이 끌릴 수도 있잖나. 취향 차이지 등급 차이는 아니다. 크기나 가격으로만 모터사이클을 보는 것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다. 각기 다른 맛을 아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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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껏 멋 낸 자세로 라이딩을…

    아이언 883은 그 다른 맛을 알려준다. 우선 앉았을 때 자세부터 남다르다. 여느 할리데이비슨 모델처럼 시트고가 낮지만, 핸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고 높지 않다. 발 놓는 위치는 미들 스텝. 모터사이클은 시트고, 핸들 바, 스텝의 높이와 위치에 따라 감각이 현격히 달라진다. 아이언 883에 앉으면 조금 공격적인 투어링 느낌이 난다. 발 위치는 편안하고, 허리는 약간 숙여야 하며, 팔은 쭉 뻗어 얹어놓게 된다. 그 모습이 드래그 머신에 올라탄 듯 커스텀 모터사이클의 흥취도 전한다. 조금 불편한 듯하지만 한껏 멋 낸 자세랄까.

    라이딩 자세의 생경함이 우선 아이언 883의 호감도를 높인다. 모터사이클을 타는 행위는 명확하다. 특별한 순간을 보내고자 하는 욕망이다. 아이언 883은 라이딩 자세만으로도 특별한 느낌을 선사한다. 지극히 편한 할리데이비슨 투어링과는 다른 맛이다. 결이 다르다. 라이딩 자세는 다른 요소와 결합돼 라이딩의 감각을 좌우한다. (할리데이비슨 라인업에서) 비교적 가벼운 차체이기에 아이언 883의 라이딩 자세는 보다 경쾌해진다. 스포스터 라인업의 로드스터처럼 본격적인 느낌은 덜하다. 하지만 크루저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엉덩이로 코너워크를 조절할 민첩성을 확보했다. 엉덩이를 좌우로 밀어내면서 반대쪽으로 돌아나갈 때 아이언 883이 재밌는 탈것이라고 직감했다. 익숙해질수록 더욱 역동적인 느낌을 증폭시킬 거라고도. 물론 휠베이스가 길고 중량이 무거운 모터사이클이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아이언 883은 883cc 2기통 V-트윈 엔진을 품었다. 젊은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할리데이비슨의 전통이자 상징인 V-트윈 엔진은 잊지 않았다. 이름도 따로 붙였다. 레볼루션이다. 고전적인 공랭식 V-트윈 엔진에 혁신적 느낌의 이름이라니. 그냥 V-트윈으로 부르기보다 레볼루션 엔진이라고 부르면 조금 다르긴 하다. 이름을 불렀을 때 꽃, 아니 의미가 더해져 다가오니까. 레볼루션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엔진 질감은 꽤 걸걸하다. 그 괴리가 신선하다. 할리데이비슨은 1700cc가 넘는 고배기량 엔진이 주류를 이룬다. 883cc가 소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레볼루션 엔진은 자기 성격을 명확히 전달한다. 최근 할리데이비슨 라인업은 엔진 러버 마운트를 개선해 진동을 많이 상쇄했다. 예전 할리데이비슨의 정제되지 않은 진동보다는 부드러움을 가미했다.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반면에 아이언 883은 여전히 걸걸하다. 차대와 엔진에 공간이 있어 진동이 도드라지는 할리데이비슨의 특징을 잘 살린다. 처음 시동 걸면 마치 엔진이 심장처럼 펄떡거린다. 상대적으로 얇은 차체이기에 엔진 반응이 더욱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덜 고급스러워서, 덜 편해서 오히려 야성적이다.

    아이언 883을 타고 조금만 달려도 지금까지 말한 세 가지 요소가 융합된다. 셋이 하나로 뒤섞여 아이언 883만의 주행 감각으로 자극하는 셈이다. 독특한 라이딩 자세와 상대적으로 가벼운 차체, 야성적으로 펄떡거리는 엔진의 하모니. 물론 그 근간에는 할리데이비슨의 고동감이 있다. 아이언 883도 할리데이비슨의 정체성 위에 변주하는 모델이다. 젊은 층의 자유로움이든 다크 커스텀의 멋이든 기본적으로 고동감의 운치를 다르게 더하는 요소인 셈이다.

    아이언 883을 타면서 할리데이비슨의 헤리티지가 떠올랐다. 간결한 차대에 V-트윈 엔진을 달고 묵직한 고동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리는 광경. 길이 쭉 뻗어 있으면 더 좋을 테다. 곡선보다는 직선이, 너무 빠른 속도보다는 중속이 기분을 증폭시킬 거다. 역시 아이언 883에도 할리데이비슨의 영역대가 적용된다. 엔진 회전수 2500을 유지하며 시속 80~90㎞ 정도 달릴 때. 그 영역에선 지금 세상 누구보다 자유롭다고 느끼게 한다. 불어오는 바람부터 허벅지 사이의 엔진 고동까지, 완벽하다. 이런 기분을 가장 단출하게 느끼는 방법이 아이언 883이다. 할리데이비슨의 원형 같다는 이유다. 할리데이비슨의 헤리티지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아이언 883을 엔트리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가장 작고 싼 모델이라서 엔트리가 아닌, 기본이 되는 모델로서 엔트리. 아이언 883을 타다 보면 방향성이 생길 테니까. 더 기름진(?) 고동감을 즐기기 위해 소프테일 라인업으로 갈 수도 있다. 거기에 더해 화려하고 과시적인 장식을 단 투어링을 떠올릴 수도 있다. 아니면 더욱 단출하게 덜어낼 커스텀 작업에 관심이 생길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시작은 아이언 883이다. 다음 단계의 즐거움을 상상하게 하는 기본. 물론 아이언 883 자체를 오래 즐겨도 무방하다. 길은 다채롭다. 그 새로운 길을 아이언 883이 열어준다. 경험하고 나니 아이언 883의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김종훈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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