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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걷기 프로젝트] 산과 호수, 청정자연이 숨 쉬는 곳-충청북도 괴산 산막이옛길
입력 : 2018.03.16 09: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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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 딸이 학업을 중단했어요. 지난해 대학에 들어가서 이제 2학년이 돼야 하는데 좀 쉬어야겠다는 겁니다. 그걸 갭이어(Gap Year)라고 하던데, 휴학하고 공부 말고 다른 경험을 해보겠다고 아예 선언을 하더군요. 거 뭐 거창한 거라고 선언씩이나 하는지 원….”
대학을 졸업하고 20여 년간 중견기업에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김 부장이 웬일로 투정 아닌 투정이다. 별말 없이 과묵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오늘은 유난히 수다가 늘었다.
“딸이 하던 일을 멈추겠다니 좀 묘하더라고요. 난 저런 적이 없었는데 요즘 애들은 저런가 싶고. 뒷바라지가 하나 더 늘었구나 싶다가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딸이 대견하기도 하고. 그런데 정작 날 돌아보니….”
주절주절 읊조리듯 내뱉던 말이 갑자기 끊어졌다. 얼굴 표정을 보니 너무 많은 말을 했나 싶었는지 혼자 뜨악한 표정이다.
오랫동안 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40대 중반의 남자에게 수다는 때로 독이 돼 돌아온다는 걸 이미 깨달았는지, 쏟아낸 말을 다시 담겠다는 듯 입을 앙다물었다. 그럴 땐 상대방이 먼저 보따리를 푸는 수밖에….
“그래도 김 부장은 빨리도 키웠네. 전 한참 멀었어요. 이참에 딸하고 같이 쉬어 가지 그래요. 그럴 수 있으면 벌써 그랬겠지만….”
산막이옛길 주차장→물레방아→산막이나루→삼신바위→연하협구름다리→굴바위나루→원앙 섬→신랑바위
▶· 등산코스
-1코스(4.4㎞)
출발점(노루샘)→등잔봉→한반도전망대→천장봉→산막이마을
-2코스(2.9㎞)
출발점(노루샘)→등잔봉→한반도전망대→진달래동산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된 총 10리(약 4㎞)의 옛길이다. 흔적처럼 남아있던 길을 다듬어 산책로로 꾸몄는데, 경사가 가파른 길 위에 받침을 만들고 데크(나무받침)를 올려 환경 훼손을 최소화했다. 이제는 괴산의 대표 관광 상품이 된 이 길 위쪽엔 국사봉(477m), 등잔봉(450m), 천장봉(437m), 삼성봉(550m) 등 4개 봉우리를 연결한 등산코스가 자리했다. 주변이 장막처럼 산으로 막혀있다는 의미의 ‘산막이’란 지명이 생긴 이유다. 천장봉과 등잔봉 사이엔 한반도전망대가 우뚝 솟아있는데,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괴산호수를 강처럼 휘돌게 한 지형이 흡사 한반도를 닮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다. 오르막에 오르면 호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내리막에선 앉은뱅이 약수, 얼음바람골, 호랑이굴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읽고 보고 경험할 수 있다. 일테면 산책에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되는 ‘소나무 출렁다리’는 꼭 경험해야 할 코스 중 하나다. 극기훈련장에서나 볼 수 있는 출렁다리가 다양한 코스로 설치돼 있는데, 양손으로 지지대를 잡고 나무판을 밟고 건너야 하는 구조가 재미있다.
산에서 내려온 약수가 나무를 통과해 흐르는 앉은뱅이 약수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호숫가로 내려오면 얼음호수 위에 임시로 낸 길이 오롯하다. 산막이 옛길의 중간지점인 병풍루 코스 보수공사가 올 6월까지 이어지는 탓에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다리를 냈는데, 산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호수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전혀 달라 새로웠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0호 (2018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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