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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헛바퀴 돈 아세안 공략 신남방정책으로 길 찾는다
입력 : 2018.02.28 15: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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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방정책은 그동안 미·중·일·러 4강에 치우쳤던 우리 외교 노선을 다변화한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 출범 이후 아세안의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선언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아세안은 중국 다음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2006년 618억1000만달러(약 66조1550억원)에 그쳤던 한-아세안 교역 규모는 2016년 1188억4000만달러(약 127조1945억원)로 2배 가까이 증가하며 2위를 기록했다. 아세안의 향후 잠재력은 더 크다. 경제통합을 이뤄낸 아세안 전체 인구는 6억4000만 명으로 세계 3위 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 또한 2조8000억달러(약 2997조4000억원)에 달한다. 북핵 위협을 안고 사는 대한민국의 안보환경에서도 아세안은 활용도가 많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북한이 유일하게 참가하는 다자안보체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 정부 들어 부는 ‘아세안 열풍’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른 또 한 번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그동안 대한민국의 아세안에 대한 관심은 ‘때 되면’ 한 번씩 부는 지역풍이었다. 이는 신남방정책으로 표출된 대한민국의 대아세안 정책도 언제든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전 세계가 글로벌 유망 시장인 아세안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또 다시 도돌이표처럼 우리의 대아세안 정책이 표류한다면 이는 과거와는 다른 ‘실기’가 될 확률이 높다.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그나마 찾은 돌파구가 아세안이고, 이는 우리 경제 성장의 지속성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매일경제 럭스멘은 그동안 한국의 아세안 접근법에 대해 짚어 보고, 현지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대한민국의 대아세안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매달 1~2개 국가의 기업인을 선정해 이들의 성공 스토리와 정책 조언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호에는 미얀마와 태국의 성공한 기업가들이 주인공이다.
▶1990년대부터 가속화된
우리 기업의 대아세안 진출
대한민국의 아세안 열풍이 처음으로 뚜렷하게 나타났던 것은 1990년대 초반께다. 아세안, 당시 동남아시아로 더 자주 불렸던 이 지역은 지금처럼 성장성이 부각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진출 러시가 거셌다. 삼성, 현대, LG, 지금은 해체된 대우 등 국내 대기업들은 앞다퉈 태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 등 아세안 각 지역으로 나아갔다. 당시 삼성은 아세안 지역 관련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재학 중 지원은 물론, 원한다면 입사까지 보장해 주는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세울 정도로 인재 확보에도 열을 올렸다. 그러다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이 열기에 발목을 잡았다. 이후 잠시 또 관심이 집중되다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이 지역은 다시 우리의 시선 밖으로 멀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그동안 우리 정부와 사회 전체의 들쑥날쑥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진출과 투자는 꾸준했다는 점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의 해외통계를 보면 기관이 통계를 집계한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아세안 지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147개에 불과했지만, 1990년부터 외환위기가 발생한 해인 1997년까지 1191개의 우리 기업이 진출했다. 또 외환위기 발생 후 주춤했던 우리 기업의 동남아 진출 러시는 2007년 또 한 번 폭발해 이 해에만 1094개의 기업이 아세안 지역에 진출했다. 기업이 많이 진출하니 투자도 느는 것은 당연하다. 2014년부터는 우리나라의 대동남아 투자액은 대중국 투자액을 초과한 상태다. 2017년 3분기까지 535억달러(약 57조6000억원)가 투자됐다. 같은 시기 진출 기업은 1만3600여 개에 이른다. 최근 갑자기 떠오른 듯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대한 열기도 마찬가지다. 양국은 우리 기업들의 아세안 진출이 시작된 이래 계속된 주요 관심 지역이었다. 1992년 정식 수교를 맺기 전 10여 개에 불과했던 베트남 진출 우리 기업은 1997년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직전까지 183개(1993~1997)로 크게 늘어났다. 그러다 외환위기 직후 주춤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1400여 개(1998~2007)로 더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이 추세는 지금도 이어지며 2017년 3분기까지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5200여 개로, 한국 기업은 아세안 진출국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흐름도 베트남과 유사하다. 현재 2050개의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다.
신남방정책 선언 이후 특정 국가에 대한 쏠림 현상도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당시 선거를 통해 오랜 군부정권을 끝내고 문민정부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낸 미얀마를 향해 불었던 열풍이 대표적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의 통계자료를 보면 2008~2012년 26곳에 그쳤던 한국기업들의 미얀마 법인설립은 2013~2017년(3분기) 269곳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물론 절대적인 숫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에 못 미친다. 하지만 증가속도로 보면 최근 5년간 가장 핫한 지역임에는 틀림없다.
입국객으로 붐비는 미얀마 양곤 공항
이처럼 우리 기업들의 아세안 진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동안 아세안은 우리에게 그다지 큰 의미는 아니었다. 성장성이 좋아 먹거리가 있는 지역 정도로만 치부됐을 뿐, 장기적·전략적 관계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1990년대부터 지속된 우리 기업들의 아세안 진출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에서 신남방정책처럼 확실한 아세안 외교노선이 없었던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물론 2015년 말 아세안이 단일 경제공동체를 출범시키면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모습이 있었지만, 전략적 모습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중국과의 사드 갈등은 아세안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가 주는 취약성에 대한 우려는 누차 지적돼 왔지만, 실제 현실화되자 이에 대한 충격파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내세운 신남방정책이 때늦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APEC 연구컨소시엄 사무국장은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아세안 진출은 스스로 이뤄진 것”이라면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 정부가 내세운 신남방정책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외교부에서 ‘아세안통’으로 꼽히는 서정인 기조실장은 “아세안을 상대로 한 외교 노선 천명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라면서 “특히 대통령께서 공약으로 내세운 것을 실제 천명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단계로 접어 든 것은 아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서 실장은 “과거에는 캠페인 차원의 수준이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신남방정책은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란 세 기조를 토대로 한다. 이른바 3P 전략이다. 처음으로 정부 내 아세안 정책을 총괄하는 아세안 기획단을 출범시키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현재 신남방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정부차원에서 강한 ‘드라이브’가 걸리는 모습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신남방정책과 함께 현 정부 외교노선의 또 다른 축인 북방정책의 경우 이미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립돼 이미 업무에 돌입한 상태다.
아세안 정책의 총괄 기능을 수행할 기획단의 경우 대통령의 아세안 현지 공식 언급 이후에야 관련 기구 설치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상태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까지 관련된 뚜렷한 움직임은 없어 보였다”고 전했다. 이러다 보니 또 설익은 아세안 정책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다섯 번째)과 아세안 정상들이 손을 잡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신남방정책의 강력한 실행을 천명했다.
일례가 신남방정책 이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로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고, 정부 움직임 또한 여기에 발맞춰 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우리 기업들의 최대 진출국이고, 교역량도 최대인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국가들임에는 맞다. 최근 5년간을 볼 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국가 중 교역과 투자 비중이 각각 1위, 3위에 해당한다. 또 2016년 기준 한국의 교역 및 투자 대상국 가운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4위와 14위를 차지하는 주요국이다. 또 인구수와 성장잠재력에 있어서도 다른 아세안 국가에 비해 두 국가의 이점은 두드러진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우 동남아 최대 인구국이란 사실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팩트다. 굳이 현 시점에서 그렇게 부각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베트남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것도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베트남은 몇 년 전 부터 ‘중진국 함정’이 언제든 수면 위로 오를 수 있는 국가로 거론되고 있다. 이미 이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는 나오기 시작했다.
곽성일 사무국장은 “현재 아세안 투자의 절반 이상이 베트남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너무 긍정적으로만 베트남을 바라보면 안 된다”면서 “베트남의 성장성은 주목할 만하지만 특정 국가의 쏠림 현상보다는 다변화된 아세안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몇 년간의 베트남 열풍에 불을 지핀 삼성전자의 베트남 휴대폰 공장 사례를 보면, 2016년 노트7이 배터리 발화문제로 조기 단종됐을 때, 베트남 현지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업을 접는 이들도 꽤 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금을 제때 지불하지 못한 현지 한국기업이 야반도주하는 일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남방정책은 거시와 미시적 측면에서 균형 잡힌 아세안 정책이 돼야 한다는 점은 반드시 고려돼야 할 상황이다.
그동안 방향성 없는 아세안 정책으로 우리 기업들이 아세안에서 쌓아놓은 많은 유무형의 자산들이 사라졌다. 그중 한 예가 지금은 사라진 대우의 미얀마 내 위상이다.
유선하 미얀마 스카이아시아 대표는 “1990년대 상사맨으로 미얀마에서 활동할 때 대우의 위상은 대단했다”며 “미얀마 곳곳에 대우의 영향력이 미쳤다”고 말했다. 아직도 현지에서 대우란 브랜드가 제대로 관리되고 유지 발전되었다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장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대우그룹 해체 후에도 상당기간 대우 브랜드의 가치는 미얀마에서 유효했고, 일부에는 아직도 대우의 향수가 남아 있다”고 전했다. 또 태국이 2003년 삼성전자가 야심 차게 추진한 글로벌 전략국가 프로젝트의 주요 국가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당시 삼성전자는 미·중·러·독·인도·태국을 6대 핵심국가로 선정해, 소위 1등화 전략이란 것을 추진했다. 선진국이나 강대국이 아닌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태국이 들어간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당시 삼성전자의 주력 품목은 세탁기였지만, 휴대폰 판매 비중이 점점 높아지던 상황이었다. 자연스레 동남아 휴대폰 시장 석권을 위한 마케팅이 태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졌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이후 베트남에 휴대폰 공장을 짓고, 또 국가의 정정이 불안정해지면서, 태국은 우리에게 존재감을 상실한 상태다.
당시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전창관 더비빔밥 대표는 “동남아의 지리적·문화적 중심국가로 견실한 성장이 예상된다”는 것이 주요 공략지 선정 배경이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군부 쿠데타 이후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태국의 현실을 보면 삼성전자의 선택은 옳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의 행보와 비교해 볼 때 다소 아쉬운 대목도 없지 않다. 태국은 그동안 일본 자동차 기업들에게 아세안 공략 전진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다 2011년 태국의 대홍수 이후 일본 자동차 관련 기업들은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근 국가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했다. 이유는 자연재해란 우발적 리스크를 상쇄할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는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당시 홍수로 인한 공장 침수로 부품 조달에 문제가 생겼다. 이는 일본의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부품 공장을 인근 국가로 분산시켰다. 이는 공장 전체를 옮기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자신들의 본거지 격인 태국을 버리지 않으면서, 동남아 시장 자체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실제 혼다자동차는 대홍수 이후에도 오히려 아세안이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역내 ‘연결(커넥티비티)’ 전략의 핵심거점인 태국 촌부리 지역(동부회랑)에 대규모 부품공장을 증설했고, 국제학교까지 세웠다. 부품공장을 일부 라오스로 옮긴 도요타도 동남아 R&D 거점 기지로서의 태국 역할을 계속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오히려 기능을 확대했다. 이 같은 일본 각 기업들의 생산기지 다변화는 아세안경제공동체 출범 후 동남아 전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 그동안 장기적이고도 전략적인 차원 아래 적극적 민관 협력으로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누구나 인정하는 아세안의 ‘실세’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었던 일본이 지금처럼 동남아를 쥐고 흔드는 것은 치밀한 전략하에 이 지역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일본의 제대로 된 아세안 공략의 첫 출발을 후쿠다 독트린에서 찾는다. 1977년 발표된 후쿠다 독트린은 2차 세계대전 전범 일본이 동남아시아와 관계를 새롭게 출발하자는 뜻에서 내세운 동남아 접근법이었다. 후쿠다 독트린 이전 일본의 동남아시아 접근법은 ‘돈’이었다. 일본은 베트남·필리핀·미얀마·인도네시아 등 식민통치했던 국가들을 돈으로 환심을 사려 했다. 적극적 배상 정책을 통해 다가가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동남아 현지의 반일 분위기는 거셌다. 1974년 타나카 수상이 필리핀·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5개국을 방문했을 당시를 기록한 일본의 외교백서를 보면, 방콕에서는 “추악한 제국주의자들은 꺼져라”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시위로 인해 11명이 사망했다. 당시 백서는 반일 감정의 기저에는 이익만 챙겨가는 일본인 기업가들의 행태에 대한 혐오감이 깔려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에 후쿠다 수상은 기존의 동남아시아 접근법을 확 바꿨다.
1977년 8월 18일 필리핀을 방문한 다케오 후쿠다 수상은 그 유명한 ‘Heart to Heart(가슴과 가슴으로)’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에서 사람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후쿠다 독트린 수상은 “일본은 동남아를 가슴과 가슴으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 신뢰와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상호 이해를 통해 기초 관계를 증진시켜 동남아의 번영과 평화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경제에만 집중하는 것에 한계를 인식하고 정치·문화·사람 등 아세안의 다양한 분야에서 진정성 있게 접근할 것을 내세운 것이다. 이때부터 일본은 아세안 공적원조(ODA)와 직접 투자(FDI)를 통해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하는 동시에 일본의 소프트파워 증진을 위해 인적·문화 교류를 강화했다. 특히 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 등 공산화된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의 격차를 줄이는 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이 같은 일본의 아세안 전략은 현 아베 정권까지 그 기조가 이어져 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지로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 3개국을 택했다. 아베 총리의 행보에는 아세안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었지만, 기저에는 일본이 아세안서 쌓아온 것을 바탕으로 ‘위상’을 잃어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기류는 아세안에 진출한 일본의 각 기관들과 기업들이 보여주는 밀착관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전창관 대표는 “자료를 찾기 위해 태국의 일본무역진흥기구(제트로)를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체계적인 자료 분류와 규모에 놀랐던 적이 있다”면서 “특히 일본 민관기업과 정부 관련 기구들의 정보 공유는 솔직히 부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전경
한국의 아세안 정책은 현 시점에서 대 전환점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 3세계를 향해 확고하고도 장기적인 외교 비전을 내세우는 첫 시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아세안 정책은 중일에 대한 접근법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만큼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세안 자체 환경도 과거와 확 달라졌다. 아세안경제공동체가 출범하면서 아세안의 거시적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세안의 발전이 더딘 이유로 아세안 10개국의 언어·문화·경제발전 수준 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 거론됐다. 그런 이들이 경제 공동체를 출범시키면서 단일경제권을 형성에 동의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고려 변수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때문에 쏠림 현상을 방지한 국별 접근과 함께 전체 시장을 겨냥한 ‘거점’에 대한 고려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정인 기조실장은 “국별 접근을 하면 인구수, 잠재력을 감안할 때 큰 나라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아세안경제공동체가 출범한 이후 개별 국가란 ‘점’보다는 ‘면’의 관점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별 국가를 개별 국가 자체로 보지 말고 아세안이란 전체 큰 틀에서 활용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곽성일 국장은 “솔직히 모든 국가에 우리의 역량을 고르게 쓰면 좋겠지만 우리 경제력으론 아직 무리가 있다”면서 “인도차이나 등 대륙권과 인도네시아 등 해양권으로 나눠서 접근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국장은 “같은 아세안이라도 대륙과 해양 국가들의 성격은 다르다”면서 “이는 특정 국가에 쏠린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서 실장은 이런 시각과 관련해 “다국적 기업들의 아세안 접근법을 보면 국가별로 접근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이 깔려 있다는 점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한다”면서 P&G의 전략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P&G는 아세안을 소득에 기반한 3개 그룹으로 나눠 시장 공략을 한다. 소득 수준이 높은 자카르타·방콕·호치민 등 각국 대도시는 1군으로, 그 다음 수준의 도시들은 2군으로, 나머지 지역들은 3군으로 분류하고 이에 따른 맞춤형 판매 전략을 구사한다. 서 실장은 “아세안 각국의 문화, 언어는 다르지만 경제력 관점에서 보면 중산층의 성향은 다 비슷하다”면서 “방콕에 살든 자카르타에서 거주하든 중산층들의 소비성향은 비슷하고 P&G는 이런 전략하에 각국을 공략하고 있다”고 전했다. ‘점’을 공략하되 전략은 ‘면’을 보고 하는 것이다. 서 실장은 “전체와 개별 국가 전략을 ‘하이브리드’적으로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가별 전략적 다변화도 지속돼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싱가포르는 금융 등 첨단산업을,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 등은 제조업 중심으로 우리 기업의 현지 역량을 계속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필리핀의 경우 미·중 간 벌어지는 지역 패권 경쟁에서 지렛대 역할을 하며 몸값을 높이고 있는 것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여기에다 아세안과 대한민국이 ‘상생’을 강조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일본이 아세안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경제적 이익을 강조하는 것보다 ‘상생’을 강조하면서였다.
곽성일 국장은 “우리 기업들도 이익만 추구하는 행태를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면서 “현재 일본의 경우 현지 토착 기업을 키우는 수준까지 상생 노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류는 지속돼야 할 전략적 무기
이런 가운데 우리는 현재 한류라는 강력한 소프트 파워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대외 환경 자체가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신남방정책 3원칙 중 하나가 ‘사람’인데, 핵심은 소프트 파워다. 미국의 역사학자 조지프 나이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 소프트 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하드 파워보다는 민간교류, 문화 등 무형의 자산으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아세안에서 부는 강한 ‘한류’는 든든한 응원군이다. 이미 한류가 아세안서 확산된 후 우리 기업들은 톡톡히 수혜를 입고 있다.
아세안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질도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1990년대 우리 진출 기업들은 아세안의 저임금 노동력만 보고 들어왔던 섬유 봉제업이 주였다면, 이제는 기계, 전자제품 등 고부가 가치 산업이 많다. 이는 아세안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 기업들이 제공할 수 있고, 우리 기업들의 다변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한류에만 기대기에는 지속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일본도 한때 일류(日流)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경험이 있다. 일류가 없더라도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의 아성은 여전히 공고하다. 이는 그만큼 일본이 내린 뿌리가 아세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단 얘기다. 일본이 절대 강자인 아세안 차 시장만 보더라도 2016년 기준 일본차의 아세안 시장 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도요타, 혼다, 미쓰비시, 마쓰다 등 일본 주요기업들이 동남아 각국을 서로 나눠 먹듯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이면 아세안 차 시장 규모가 400만 대 이상 된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에서, 현대차 등 우리 차 기업들은 눈앞의 실익만 따져 아세안 직접 진출은 매번 고민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현지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영속성과 적극성, 그리고 의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 중소기업의 동남아 주요국 투자실태에 대한 평가와 정책 시사점’에서 “한국의 중소기업 해외진출 지원정책이나 시책을 일본과 비교하면 사업단계별로 거의 유사하게 구비되어 있지만, 일본에 비해 우리의 지원정책은 구체성과 현실성이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면서 “지원기관 간의 유기적인 협력체계도 잘 구축되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구원은 “일본정부는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에만 국한한 것이 아닌 기진출 해외사업의 재편에도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는 점, 중소기업의 필요자금을 예산이나 ODA를 통해 실제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에 필요한 인재 육성 및 확보도 지원하고 있다는 점 등은 우리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교부 차원의 제도적 역량, 지역연구와 기능 분야 연구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지적 역량 강화, 국내 동남아 이미지 개선 및 동남아 내 한국학 진흥 등 동남아 정책 관련 공간의 확장 등 내적 역량강화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지역 전문가 육성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은 신남방정책 이후 청년 인턴을 아세안으로 보내겠다며 지원 의사를 밝혔다. 과거 아세안 열풍이 불 때의 데자뷔다. 1990년대부터 삼성이 앞장서 운영했던 지역전문가 제도는 일본의 종합상사가 운영하던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우리만의 아세안 접근법을 더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국가과제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0호 (2018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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