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어로 늘었는데 감동은 줄었네

    입력 : 2017.11.15 17:28:45

  • ◆ 리뷰 / 히어로영화 '저스티스 리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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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어로물은 시리즈 회차가 거듭될 수록 한계가 노출되기 마련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서사적 단순성 때문이다. 안쪽의 선이 바깥의 악을 무찌른다는 권선징악 서사는 쉽고 명쾌하지만 자주 접하면 아무래도 지겨워진다. 지금처럼 마블과 디씨가 매해 두세편씩 경쟁하듯 신작들을 쏟아내는 형국이라면 더욱이.  이같은 서사적 얼개 속에선 번번이 더 강력한 적이 요청된다. 선이 악을 무찌른다는 이야기 자체를 바꿀 여지가 크지 않기에 더 세고 사악한 적이 매번 수혈돼야 하는 것이다. 근래 히어로물이 지구 너머 우주로 내뻗어갈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다. 이같은 강박증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이 되기 십상인데, 이에 대해 최근의 마블은 꽤나 영리한 전략을 취하는 것 같다.

     몇 편의 목록이 있었다. 각자의 가치관이 충돌하며 내전으로 치닫는 양상을 연출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2016). 노쇠환 엑스맨 로건을 저 광활한 서부의 황야로 들여다 놓아 21세기 히어로물과 20세기 고전 서부극의 물리·화학적 결합을 시도한 '로건'(2017). 지질한 'B급 감성'에 호소하며 히어로물의 오락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토르: 라그나로크' (2017) 등.

     반면 디씨는 어떠한가. 번번이 공회전을 거듭하며 마블에 밀리는 모양새였다. 지난해 쏘아올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기대와 달리 원더우먼(갤 가돗)의 존재감을 제외하면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영화였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더 암담했는데, 두 시간짜리 뮤직비디오라는 비아냥이 들려올 만큼 완성도가 미흡했다.

     그럼에도 이 '저스티스 리그'(15일 개봉)에 대한 기대감 만큼은 내려 놓고 싶지 않았다. 지난 5월 개봉한 '원더 우먼'의 반사 효과 덕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 갤 가돗이라는 장신의 배우가 선보인 여성 히어로의 포스는 한 마디로 압도적인 것이었으니, 여기에 세 명의 신규 히어로, 플래시(에즈라 밀러),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 사이보그(레이 피셔)가 합류한다는 사실 만으로 팬들의 기대를 높이기 충분했다.

     예고편만 본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그야말로 끝내준다. 디씨는 예고편 만큼은 정말 걸작처럼 만드는데,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때의 배반감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최근 시사회 때 공개된 '저스티스 리그'가 꼭 그러했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선형적인 플롯은 지루하며, 캐릭터들 간 밸런스는 어긋나고 일부는 자주 삐거덕댄다.

     영화는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죽은 슈퍼맨(헨리 카빌)의 생전 모습을 담은 스마트폰 영상에서 출발한다. 그런 다음 베트맨과 원더우먼의 액션신을 차례로 보여주고, 세 명의 신규 캐릭터를 소개하는 식이다. 그 사이 스테픈울프라는 거대한 체구의 장수가 파라데몬 군대를 이끌고 나타난다. 그는 아쿠아맨과 원더우먼의 고향인 아틀란티스와 아마존, 지구 어딘가에 감춰진 고대 물체 '마더박스' 세 개를 탈취해 지구를 점령하려 한다.

     신규 히어로들이 베일을 벗는 중반부까진 그래도 볼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부터다. 애초에 한껏 멋 부리며 등장한 이들은 원더우먼, 베트맨과 협력해서도 스테픈울프의 적수가 못 된다. '마더박스'로 부활한 우리의 슈퍼맨이 아군을 잠시 못 알아볼 때 빚어지는 찰나의 집안싸움에서도 슈퍼맨의 털끝 하나 못 건드린다. 더욱이 이 직육면체 마더박스로 슈퍼맨을 부활시킨다는 설정은 만화 드래곤볼에서나 따온 듯한 상상력의 빈곤마저 드러낸다.

     가장 문제인 건 배트맨(벤 애플렉)이다. 동료들이 물리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며 초월적인 힘을 뽐낼 때 그는 거구를 이끌고서도 이리 뒤뚱 저리 뒤뚱이다. 그렇게 스스로가 최약체임을 감추지 못한다. "당신의 능력이 무엇이냐"는 플래시의 치기 어린 물음에 "나는 부자"라는 말로 받아치지만 웃어 넘기기엔 어딘지 씁쓸해진다. 그나마 이 엄숙한 디씨 세계관에 유머 담당으로 새로 투입된 산만한 소년 플래쉬가 조금 돋보일 뿐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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