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 | ‘2세대 미디어아트’의 진수 포켓몬 없는 제주에서 AR로 만나는 ‘반 고흐’

    입력 : 2016.08.31 10:34:17

  • 7살 남짓한 아이가 전시장 안에서 하는 이야기가 이채롭다.

    “엄마! 여기부터는 반 고흐가 남프랑스로 이주하면서 남긴 그림들이야.”

    “이 자화상은 고흐가 동생 테오한데 보여주려고 그린 거래!”

    우연히 만난 이 꼬마는 미술 영재나 비범한 천재도 아닌 평범한 아이였다. 스마트폰을 통해 김구라 아저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누구보다 심취해 그림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주변 또래 아이들 중 반 고흐에 대해 가장 깊숙이 체험한 아이가 아닐까. 아이 엄마는 주변을 의식한 듯 멋쩍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작동이 어려운지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터치를 반복했다. 일반적인 전시장을 찾으면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니며 그림에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손을 이끌어 억지로 주입식 교육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엄마들이다. 이와 정반대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바로 미디어아트의 힘이다. 국내 2세대 미디어아트를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지성욱 대표는 <반 고흐 인사이드>를 통해 전시 영역에 새로운 지평을 써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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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에 걸려 있는 카페 사진에 비치된 테블릿PC를 가져다대자 신세계가 펼쳐진다. 화면속의 사진은 이내 그림으로 바뀌어 간다. 완성된 그림은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흐의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Cafe Terrace, Place du Forum, Arles)>. 작품 설명과 배경이 된 장소 역시 친절하게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명 증강현실(AR)을 활용해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와 실제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VR 장비를 착용하자 고흐의 작품 중 하나인 <밤의 카페(The Night Cafe)>가 눈앞에 펼쳐진다. 3차원 영상을 통해 그림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고 느끼는 이 코너는 특히 젊은 층의 발걸음을 전시장으로 이끄는 힘이 되고 있다. ▶원화로 느낄 수 없는 감동… ‘반 고흐’에 눈뜨다 “문화 기술은 기존 예술을 디지털 기술과 접목하는 것입니다. 대상을 바라보고 읽는 아날로그 방식을 뛰어넘어 그림을 입체화하고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것이 2세대 미디어아트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전시계의 대세로 자리 잡은 미디어아트는 원화전에서 느낄 수 없는 색감과 생동감, 대형 스크린 등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해왔다. 영상을 위주로 구성하던 1세대 미디어아트가 보여준 큐레이션 방식에서 진일보해 명화의 오리지널리티를 뛰어넘는 적극적인 연출을 통해 상상력과 감동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2세대 미디어아트로 정의한다. 지성욱 대표는 국내 2세대 미디어아트를 이끌고 있는 선구자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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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작곡된 음악으로 명화의 감동을 새롭게 전달하는 방식도 2세대 미디어아트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 고흐 인사이드>를 위해 최고의 작곡가와 세션을 통해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AR, VR을 통한 인터렉티브존을 통한 체험은 물론 보고 듣고 만지는 등 적극적으로 전시를 체험하고 작품을 재가공할 수 있다는 것이 미디어아트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 체험존 외에도 <반 고흐 인사이드>는 스크린 구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시별로 감정을 극대화하는 음악을 즐기고 IMAX 영화관을 방불케 할 정도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붓터치와 디테일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객을 360도 휘감거나 각 작품의 화풍에 특화된 질감의 캔버스를 활용하는 등 관객이 작품에 빠져들 수 있도록 다양한 연출을 시도했다. 즉, 기존의 한 작품을 고정된 캔버스에서 감상하는 ‘문법’을 탈피한 것이다. “미술과 기술의 결합에 있어 경쟁력은 사실 최첨단 기술이 아닌 스토리텔링 능력입니다. 기술은 누구나 구현하고 따라올 수 있거든요. 게다가 시시각각 최첨단 기술들이 발표되죠. 엄청난 기획력과 스토리텔링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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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중심의 한국형 테마파크 조성이 목표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아트는 검증된 콘텐츠입니다. 고흐에 이어 9월에는 클림트 전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작가의 전시가 모이면 자연스레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상업시설들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미디어아트의 가능성에 대해 강조한 지 대표는 콘텐츠의 힘을 갖춘 강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신기술 외에 섬세하고 뛰어난 구성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전시의 뒤에는 오랜 기간 콘텐츠 분야에 몸담아온 지 대표의 ‘내공’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과거 KT, 다날 등을 거쳐 미디어 제작, 콘텐츠 전략을 담당하며 성공과 실패를 수없이 경험해왔다. 그 후에 아이오케이컴퍼니를 설립해 고현정과 조인성의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지 대표는 론칭당시 ‘고현정 화장품’으로 불리며 밀리언히트를 기록한 리엔케이(Re:Nk) K라인의 기획과 마케팅에도 참여한 바 있다.

    “일반적인 콘텐츠는 시간이 가면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태양의 후예>가 끝나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지는 것처럼요. 그러나 <태양의 서커스>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르죠. 시간이 지나도 콘텐츠 가치가 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브랜딩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전시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지 대표는 이종산업 간의 결합에 산업 경계나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등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는 한편 한국형 테마파크 조성이라는 장기적인 비전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미디어아트를 해외 유명 화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년고도 경주를 재현할 수 있는 것이고, 신윤복 같은 훌륭한 작가의 삶도 복원할 수 있습니다. 인구 수 등의 제약으로 세계적인 디즈니랜드와 같은 테마파크가 국내에 들어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콘텐츠가 중심이 된 한국형 테마파크가 형성된다면 미디어아트가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생활과 여행을 동시에… 제주는 지금 ‘컬트립’ 열풍

    히든클리프 호텔 인피니티 풀
    히든클리프 호텔 인피니티 풀
    맛집 탐방을 테마로 한 식도락 여행이 시들해지고 고품격 문화여행(Culture+ Trip, 컬트립)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8월에 몰린 휴가철로, 다양한 문화콘텐츠 시설이 밀집한 제주도에는 컬트립을 즐기는 관광객이 몰렸다. 미디어앤아트 관계자는 “8월 기록적인 폭염에도 반 고흐 인사이드가 열린 제주도 중문 인근은 평소보다 관광객이 30% 이상 크게 늘었다”며 “전시를 즐기고 인근 호텔에서 숙박하는 패키지 상품이 인기가 많다”고 밝혔다. 밀림을 연상시키는 풍광에 자리 잡아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인피니티 풀을 조성한 히든클리프 호텔은 제주 중문의 최고 관광명소로 꼽히고 있다. 히든클리프 관계자는 “인피니티 풀에 대한 문의와 함께 전시를 관람할 예정이라고 밝히는 고객들이 상당히 많다”며 “사전 오픈 기간임에도 모든 객실이 꽉 찰 정도로 컬트립 트렌드를 체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 중문=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2호 (2016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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