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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파올로 리기 ‘칼 라거펠트’ CEO | 포용(accessible) 가능한 럭셔리로 많은 한국 소비자에 다가갈 것
입력 : 2016.05.13 17: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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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파올로 리기는 누구?
올해 47세인 그는 이탈리아와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의 총괄 이사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10년 넘게 나이키의 임원으로서 중앙 유럽,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를 이끌어왔다. 나이키 이전에는 독일의 팬트랜드 그룹 회사에서 일을 하며, 라코스테 풋웨어, 스피도, 엘레세 그리고 로이쉬 등의 브랜드를 포함해 다수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키워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 2011년부터 칼 라거펠트 대표를 맡고 있다.
패션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칼 라거펠트.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칼 라거펠트’가 한국에 상륙했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에 한국 첫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한 것. 토미힐피거 그룹이 보유한 ‘칼 라거펠트’의 국내 유통은 가방제조업체 시몬느가 맡는다. 현재 샤넬 디자이너로 30여 년 동안 활약해오고 있는 ‘칼 라거펠트’는 이와는 별도로 본인의 브랜드를 진두지휘한다.
실제 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는 한국 태생의 김훈 씨가 맡고 있다. 지난해 첫 방한해 화제를 모았던 칼 라거펠트가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한국 고객들과 만나게 됐다.
지난달 서울에 1호점 개관차 방한한 피에르 파올로 리기 ‘칼 라거펠트’ 대표를 단독 인터뷰했다. 다음은 피에르 파올로 리기 대표와의 일문일답.
정말 기대되고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과 서울은 아시아 패션의 영혼이라 할 수 있죠. 이곳에서 많은 것이 발생하고, 많은 것들이 이동하고 한마디로 한국은 매우 스타일리시합니다. 스타일 측면에서 한국은 패션산업이 발달한 아시아의 이탈리아 같습니다. 아시아 패션중심지인 한국의 수도 서울에 진출했다는 건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아시아를 향해 중요한 첫걸음을 떼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 진출하면서 국내 핸드백제조업체인 시몬느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어떻게 사업이 성사되었는가.
시몬느는 세계 가방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업체 중 하나입니다. 가방은 저희 사업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5년 전부터 시몬느의 케니 박(박은관 회장)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놀랄 만한 파트너 관계를 이루었습니다. 양사의 좋은 관계가 이번에 칼 라거펠트의 한국 유통업 진출로 이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협력 관계를 유통 및 브랜드 구축 관계로 발전시켰고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현재 샤넬과 펜디의 디자이너로도 오랫동안 활동해오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칼 라거펠트와 기존에 해온 브랜드 간 디자인이 겹치지는 않는가.
칼은 샤넬을 30여 년간 디자인해오고 있습니다. 펜디도 마찬가지죠. 그는 브랜드 샤넬과 펜디의 속성을 대단히 많이 이해하고 디자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본인을 위해 일하고 디자인한다면 어떤 것도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칼 자체가 브랜드기 때문입니다. 그는 ‘칼 라거펠트’를 통해서는 그 자신의 DNA와 속성을 이용할 것이고, 과연 어떤 디자인일지는 매장에 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린다면 그는 본인의 브랜드에 관해서는 샤넬처럼 하이-엔드 럭셔리가 아닌 더 많은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어세서블(accessible·포용 가능한) 럭셔리를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칼 라거펠트는 살아있는 패션계 전설로 통한다. 가까이에서 본 칼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떤가.
제가 단적으로 말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도 솔직히 칼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그가 항상 자신에게 정직하려 노력하고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것을 하려는 점은 확실합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칼은 브랜드를 위해 필요한 사항과 브랜드를 위해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서로 잘 조합시킵니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칼이 한국어로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라고 직접 쓴 액자가 탁자에 놓여있다.
▶럭셔리 업계에도 온라인 비즈니스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작년 말부터 전 세계 98개국에서 온라인 스토어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서울에도 온라인 매장을 가지고 있고요. 동업을 통해서든 직접 소유하든 우리는 온라인 스토어 확장을 계속해서 해나갈 방침입니다.
▶SNS를 통한 마케팅 활동에 대해.
패션비즈니스에서 SNS를 통한 마케팅 활동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브랜드는 많은 소셜 미디어 팔로워를 가지고 있어 더욱 그러합니다. 많은 우리의 팬과 소비자들은 칼과 직접 연결됩니다. 그게 가능한 것이 칼이 아주 디지털적으로 현대화된 사람이기 때문이죠. ‘Karl.com’사이트에 접속하면 칼의 세계에 대한 많은 콘텐츠와 스토리들이 존재합니다. 온라인 매장의 형태에 우리의 제품을 구매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당연한 발전입니다.
▶칼 라거펠트 브랜드는 컬래보레이션(협업)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많은 컬래보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형태의 협력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브랜드의 DNA기도 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까지 협업을 합니다. 다음 달에 브라질과 함께 컬래보레이션 성과물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영역도 패션 분야뿐만 아니라 화장품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시도하고 있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언제부터 대표를 맡았나.
칼 라거펠트에서 대표로 일한 지 5년이 됐습니다. 굉장한 5년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나이키에서 근무했는데, 스포츠웨어나 패션이나 성취를 이루어내기에는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제품을 만들어 특정한 라이프 스타일을 생활에 적용하도록 하는 점이 유사합니다. 지난 5년이 마치 5일처럼 액티브하게 흘러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서울에 매장을 열면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어떤 소감을 밝혔는지.
칼은 1년 전에 샤넬 패션쇼를 위해 방한했었습니다. 그는 그때 서울이 얼마나 좋았는지 흥분해서 얘기하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개인사정으로 못 왔지만 대신에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라고 직접 한국어로 쓴 스케치를 그려줬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고, 지금도 계속 사진과 메신저를 통해 한국 동향을 직접 수시로 체크하고 있습니다.
칼 라거펠트 브랜드 소개 칼 라거펠트는 1938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교육을 마치고, 1954년 인터내셔널 울 협회에서 주최한 콘테스트에서 수상했다. 이 젊은 청년이 디자인하여 수상한 코트는 피에르 발망에서 생산되었고, 17세에 그는 유명한 디자이너의 어시스턴트가 되었다. 3년간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마치고, 유명디자이너 브랜드인 장 파투의 아트 디렉터가 되었다. 자유분방한 작업을 해온 그는 특히 퍼(Fur) 소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에 펜디의 디자인을 오늘날까지 맡고 있다. 1975년에는 클로에서 기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1983년부터 ‘샤넬’ 하우스에서 아트 디렉터를 시작했다. 1984년 자신만의 브랜드 ‘칼 라거펠트’를 만들었다. 그는 1998년 다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라거펠트 갤러리’를 설립하였다. 2004년 칼 라거펠트는 H&M과 ‘Karl Lagerfeld for H&M’이라는 컬래보레이션을 실시해 큰 화제를 모았다.
2005년 칼 라거펠트는 토미힐피거 회사에 자신의 브랜드 ‘라거펠트 갤러리’와 다른 라거펠트 컬렉션을 매각하여 브랜드가 계속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하였다. 샤넬과 펜디와 맺은 계약과는 별개의 조건으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커리어를 진행할 수 있었다. 2006년 브랜드 ‘라거펠트 갤러리’를 ‘칼 라거펠트’로 바꿨다. 2012년 1월 브랜드 ‘칼 라거펠트’가 새로운 콘셉트로 론칭됐는데,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어세서블 럭셔리(Accessible Luxury)를 지향하는 이미지로 온라인을 통해 독점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리고 1년 후 파리에 ‘칼 라거펠트’ 첫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하였고, 올해 봄 서울 론칭을 포함하여 암스테르담, 베를린, 뮌헨, 베이징, 상하이 등 세계 곳곳으로 매장을 확장해가고 있다.
[김지미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8호 (2016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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