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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연 블랙록자산운용 대표 | ‘흙수저’ 시골 청년이 글로벌 자산운용사 대표로 인연을 소중히 하지 않는 것은 인생 일대의 기회를 흘려보내는 것
입력 : 2016.03.17 16: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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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의 심장이라 불리는 월가를 이끄는 유수의 금융투자사들이 있지만 그 정점엔 블랙록자산운용이 있다. 블랙록이 운용하는 자산은 지난해 기준 4조6500억달러(약 5732조) 규모로 지난해 우리나라 총예산(376조원)의 15배가 넘는다. 1988년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핑크(Laurence Fink)가 창업한 이래로 M&A를 통한 사세 확장과 함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블랙록은 애플, 맥도널드, MS, GE 등 글로벌 기업의 최대 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이다. 명실상부한 No.1 글로벌 자산운용사로 세계 각국에 최고 전문가를 포진시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본부에는 최만연 블랙록자산운용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로 대학을 입학해 올라와서 영어라고는 아임 어 보이, 유아 러 걸(I’m a boy, You are a Girl.) 정도 밖에 몰랐는데 외국계 자산운용사에 적을 두기까지 돌이켜보면 참 고맙고도 신기한 인연들이 길을 밝혀준 것 같습니다.”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무역학과에 입학한 최 대표는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무척이나 힘든 시기로 기억했다. 일찌감치 아버지를 잃고 변변치 못했던 형편에 대학에 와서도 선배들 집을 전전하며 겨우 학교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에 호롱불 밑에서 공부했습니다.(웃음) 힘들게 공부하다가 이렇게 해서는 내 삶이 바뀌지 않겠다고 생각해 서울 학교로 와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학 와서는 선배들 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이전부터 타지 생활에 익숙해 많이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전긍긍 대학생활을 이어나가는 중 최 대표에게 어떤 인연이 찾아와 손을 내민다.
“당시 우연찮게 인연을 맺은 외국인 목사님 부부가 있었어요. 당시 제 집도 아니었는데 제 친구가 집을 비우는 날 저랑 또래인 그분들 자녀를 집에서 하룻밤 재워준 게 인연이 됐어요. 인연을 이어나가던 중에 제 사정을 알게 된 그분들이 부모가 되어 주시겠다면서 같이 살자고 하셨습니다.”
좀처럼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연의 손길을 만난 뒤 외국인 목사 부부와 그 자녀들과 한집에서 지내게 되면서 최 대표의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기한 인연이고 또 감사한 분들이죠. 같이 지내게 되면서 영어를 써야 하니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했고 감사한 마음에 학과 공부도 성실히 한 덕에 한국 투자신탁의 국제부에 입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주식시장이 개방되기도 전인 1985년 1월 최 대표는 금융 투자 사관학교라 불리는 한국 투자신탁에 입사했다. 업계에서는 ‘펀드의 명가’로 불리는 한투증권 조사부와 리서치 센터를 거쳐간 인물들은 현재 금융 투자 업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발군의 언어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 금융 시장에 대해 공부하고 전문 지식을 쌓은 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
“조사부에 계속 있다가 부산, 대구 지점에서 근무하게 됐는데 1989년 회사에 해외 투자부가 신설됐습니다. 그때 다시 본사로 오게 됐고 1994년에는 뉴욕의 현지 자산운용에 펀드매니저로 파견 나갈 수 있는 기회도 잡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해외로 나가는 주재원 자리 경쟁은 전쟁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스펙이 그다지 좋다고 볼 수는 없었거든요. 원래 2년 단위로 복귀를 해야 하는데 당시 모시던 팀장님과 사장님의 배려 덕에 무려 4년 동안이나 현지에서 배우고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1990년부터 실질적으로 해외 투자를 시작한 최 대표는 해외 투자 분야 업계 1세대라 할 수 있다. 1998년까지 뉴욕에서 해외 펀드를 직접 운용했는데 당시 규모는 5000만달러. 주로 미국과 남미 지역에 투자를 했다.
“미국 자산운용사들이 어떻게 투자하고 또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많이 경험했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에 러시아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 전까지 시장은 괜찮았습니다. 당시에는 주식형 펀드를 헤지하는 개념이 없었던지라 환율 효과로 봐서 2배 수익률이 나오기도 했죠. 단 멕시코는 워낙 위험한 투자였고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글로벌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시점에 세계 금융 시장의 중심에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배웠다고 밝힌 최 대표는 멕시코 외환위기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위기를 잘 극복했다. 이때 해외 투자 전문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 해외 투자 팀장을 맡아 활동하던 중에 전길수 현 슈로더투신운용 대표와 함께 슈로더투신운용 설립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이 시점에 외국계 자산운용사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회사가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저는 전 사장님의 부름을 받고 슈로더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자산운용을 인가 받기 전인 사무소 시절에 합류해서 역외펀드 판매를 하다가 법인 설립까지 하게 됐죠.”
2000년 6월부터 슈로더자산운용이 한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틀을 다진 최 대표는 이후 2014년부터 블랙록자산운용 대표 자리에 앉게 된다.
“슈로더에 계시는 전길수 대표님은 한투 시절 제 사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기회를 주셔서 이렇게 제가 커리어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었죠. 누구랑 만나서 어떻게 일하느냐가 참 중요한데 저는 그런 면에서 참 좋은 인연들을 만난 것 같습니다.”
누구든 자신에게 다가온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한 최 대표는 진정성과 일관성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자신의 성공 비결 역시 이러한 진지한 인간관계를 1순위로 꼽았다.
“대인관계에서는 일관성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른 의도를 가지지 않고 진정성 있게 만나고 오랜만에 만나도 불편함 없이 대하는 거죠. 그러려면 많이 들어야 합니다. 제가 내부 직원들한테는 말이 많은 편이지만(웃음) 밖에 나가면 많이 듣습니다. 95% 듣고 5% 얘기하고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저는 좀 잘 웃는 상입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겠습니까?”
오랫동안 해외 투자 전문가로 활동한 최 대표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해외 투자 비중이 높습니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약 60% 이상을 투자하고, 투자 형식은 펀드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는 펀드와 개별 종목 투자를 병행하는데 둘 다 장기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목돈을 모을 때까지는 적립식 계좌에 넣고 이후에는 투자처를 정하는 식입니다.”
글로벌 시장의 부침이 강한 시기를 겪으면서 해외 투자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해외 투자자들도 많이 봤다고 밝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투자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글로벌 위기 이후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을 비교해 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을 놓고 보면 해외 시장이 두 배 이상 움직일 동안 한국은 보합에 가깝게 멈춰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국내 시장을 하나의 투자처로 편입해 글로벌 사이드에서 분산투자를 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최 대표는 블랙록도 한국 투자자들이 글로벌 분산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한국에 글로벌 상품을 출시했으며, 향후에는 보다 더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환경에 적절한 자체 펀드 상품개발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글로벌 관련 펀드 19종을 국내에 출시했지만 아직 한국의 주식, 채권 펀드는 선보이지 못한 상황입니다. 향후 장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글로벌 1위 자산운용 회사의 위상에 걸맞게 한국에서 로컬 시장에 맞는 상품도 선보일 계획입니다.”
블랙록 인베스트먼트 인스티튜트(BlackRock Investment Institute) 글로벌 경제 진단 4問 4答 1. 세계 경기의 각종 사이클의 디커플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블랙록 인베스트먼트 인스티튜트가 매년 출간하는 투자 전망 자료에서 2016년의 테마를 ‘디커플링 시대의 도래(Cycles out of Sync)’로 표현했습니다. 글로벌 유동성 사이클이 둔화하면서 경기순환(business cycle) 및 밸류에이션(valuation) 사이클이 예전보다 더 중요한 투자 포인트가 될 것이며, 이 사이클의 디커플링으로 인해 지역 및 국가별로 사이클의 각기 다른 진행 정도를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미국의 경우, 경기순환과 정책(policy)의 사이클은 중기에 있으나 밸류에이션의 경우 사이클의 말기로 이미 고평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이머징마켓의 경우 경기순환은 사이클 말기에 있으나 밸류에이션의 경우 사이클 초기로 보다 더 저평가되어 있습니다.
2. 지난해 말부터 미국의 금리 인상 이후 추가 인상에 대한 예측과 국내 경기에 관한 영향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망은?
현재 시장 상황이 지속되면, 미 연준이 다음 금리 인상을 서두를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지난 1월 회의에서 미 연준은 3월 금리 인상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었지만, 시장이 박스권을 횡보하는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상의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이머징마켓은 글로벌 성장 둔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현지 통화 약세로 인해 추가적인 통화정책 완화의 여지도 적습니다. 미 연준이 보다 온건파적인(dovish) 정책을 취할 경우, 이머징마켓 통화에 가해지는 부담이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지만, 중국의 성장 우려 및 원자재 시장의 변동성은 여전히 이머징마켓 주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기업 실적은 아직 성장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기순환적 및 구조적 난제를 고려하여 자원 생산국(브라질, 러시아 등)보다는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는 자원 수입국(한국)이 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합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선호 대상이 아닌 지역 또는 섹터에 투자할 때는 액티브(active) 매니저를 이용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점입니다. 액티브 매니저는 미세한 투자 기회를 파악하고 현재와 같은 환경에서 보다 더 양호한 실적을 낼 수 있는 기업들을 발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중국의 경기 변동과 향후 전망은.
2016년 중국 경제는 국가 및 가계의 견조한 재무구조가 완충 작용을 하여 연착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속적인 자본 유출 및 위안화의 추가적인 평가절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중국 국내 금융 여건이 더 긴축될 수 있으나, 이는 작년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정책 당국의 입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단기적인 리스크라고 판단합니다. 한편 최근 경제 지표가 다시 약화되면서 인프라 투자를 비롯한 정책지원 조치의 속도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향후 성장과 개혁 목표 사이의 균형이 여전히 중요하며, 특히 개혁은 장기적으로 시장과 기업의 신뢰를 얻는 데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4. 글로벌 투자 관점에서 블랙록은 최근 유럽과 일본 시장에 대한 롱 포지션을 취할 것을 추천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유럽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 우려가 많고 일본 주식시장의 경우 심한 부침을 보이고 있는데.
일본 주식은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가치 평가 수준(밸류에이션) 외에도, 긍정적인 지배 구조 변화로 인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일본은행의 기존 양적 완화 프로그램 외에 예상 밖의 마이너스 금리는 단기적으로 엔화 가치를 억제하여 수출 업체의 실적을 다른 선진 시장에 비해 더 높일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리플레이션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 완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재정정책 및 민간 부문의 임금 상승이 내수를 지탱하고 엔화 약세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을 상쇄하는 데 일정 정도의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다가오는 봄철 임금 협상은 이 점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 주식은 아직 유망해 보입니다. 아직 회복 초기 단계지만, 올해 유가가 부진한 가운데 글로벌 금융 여건이 긴축되면 유럽 경제의 추가적인 개선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적 기대치가 하향 조정되었지만, 미국보다는 기대 실적이 아직 높습니다. 시장 변동성의 상승 및 온건파적인 연준과 일본은행의 기조가 결합되어, 유럽중앙은행이 보다 더 공격적으로 완화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또한 유럽 주식은 미국 주식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최근 가치 평가 수준이 과거 10년 평균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단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할 점은, 유럽중앙은행과 연준의 정책이 상호 차별화되고 유로화에 대한 압력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투자자들은 환율 관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헤지 고려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 BlackRock Investment Institute는 블랙록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블랙록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고객들에게 더 나은 투자 성과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블랙록 내부 기관입니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6호(2016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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