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 | 운용사는 수익률 넘어 투자철학을 파는 곳이죠

    입력 : 2015.12.24 17:16:57

  •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업계에서 스마트한 모범생으로 통한다. 1998년 트러스톤의 전신인 IMM투자자문 설립 이후 줄곧 상위권 수익률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투자 상품을 선도적으로 내놓으며 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유수 기관투자가가 자금을 유치할 정도로 운용 실력에 있어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수익률이 주춤한 데 이어 인력 이동이 겹치고 있다. 햇수로 12년간 트러스톤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는 김영호 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사정을 들어봤다.

    사진설명
    ▶수익률 점진적 회복 중

    “요즘 같은 시기에는 고해하는 심정으로 더욱 더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웃음)”

    김영호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는 우선 최근의 트랙레코드에 대해 숨길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올 한 해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실적을 살펴보면 11월 12일 기준 엑티브 펀드 전체수익률이 -1.02%를 기록하며 전체 자산운용사들 가운데 중간보다 조금 아래쪽에 위치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큰 손실이 났다고 보긴 어렵지만 2013년부터 2년간 모든 펀드가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또 상당수 펀드가 두 자리 수익률을 거둘 정도로 뛰어난 실적을 거둔 뒤라 눈에 띄는 숫자다.

    “수익률이 예년보다 좋지 않았고 운용자금 이탈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수치로 분명하게 나와 있으니 감춘다고 감춰질 수 있나요? 하지만 15~20년 동안 계속 잘할 수 있는 운용사가 있을까요? 저희가 1년 반 정도 잠시 주춤한 것은 맞습니다만, 11년 동안 상위 20% 내의 성적을 거둬왔습니다. 실적도 점차 회복기에 들어섰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웃음)”

    꾸준히 유입되던 자금이 이탈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히트 상품이며 국내 롱숏펀드 돌풍을 일으킨 트러스톤다이나믹코리아50펀드와 트러스톤다이나믹코리아30증권자투자신탁[채권혼합](운용)은 각각 올 초부터 2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가 설정액이 반 이하로 줄어들기도 했다. 잘나가던 펀드의 수익률이 정체되고 자금이 이탈하자 업계에서는 원인을 인력 이탈에서 찾기 시작했다.

    “펀드 실적이 저조했던 건 매니저가 이탈했던 롱숏펀드뿐 아니라 다른 펀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포트폴리오에 담았던 섹터나 업종들이 지난 2년간 좋았는데 시기적으로 안 좋은 구간으로 들어가면서 팀 전체적으로 성과가 좋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올해는 시작할 때부터 쉽지 않은 시장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분기 초까지는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수익률이 잠시 주춤했죠.”

    올해 트러스톤자산운용은 몇몇 매니저의 교체가 단행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헤지펀드와 롱숏펀드를 운용하는 본부장급 운용역이 교체되는 등 일부 인력이 이탈하며 우려의 시각도 존재했다.

    “일종의 착시효과라고 보면 됩니다. 30년 넘게 운영된 회사들과 다르게 저희 같은 신생사 같은 경우 구성 연령이 젊고 업력이 짧아 한두 명이 그만두면 평균 재직연령과 기간이 확 낮아지거든요. 또 올 한 해 업계 전반적으로 매니저들이 독립을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저희도 사실 그런 경우인데 (실적이) 좋았을 때라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얘기들이 일종의 오비이락 격으로 처음으로 위기설까지 나오더라고요.(웃음)”

    김 대표는 철저하게 리서치 조직 중심으로 운용되는 시스템의 성격상 개별 펀드매니저의 이탈이 전체 수익률에 큰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투자에 있어 저희는 철저하게 리서치 중심으로 팀 어프로치를 합니다. 팀으로 투자하지 개별 매니저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모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각 매니저가 70%를 의무적으로 복제하고 나머지만 자율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이죠. 이 같은 투자 방식과 철학을 이해하는 펀드매니저와 일을 하니 전 펀드의 수익률도 비교적 고르게 나오게 되는 것이죠.”



    사진설명
    ▶장기적 운용 철학이 트러스톤의 자산, 단기적인 부침에 흔들릴 수 없어 “사실 위기는 언제나 있었어요. 2013년은 공모펀드의 자금이 빠져나가 업계 전체가 어려운 해였거든요. 그때 운용사의 경쟁력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은 했어요. 혹자는 수익률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결국 자산운용사는 운용 철학을 파는 회사라고 정의했는데 이에 많은 고객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운용사를 선택할 때 철학을 지킬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러스톤은 임직원이 7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주인의식을 갖고 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오너 회사고 어느 계열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독립경영이 가능하죠. 이러한 경영 안정성이 오래도록 유지되고 있는 점도 운용 철학을 지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

    김 대표가 말하는 트러스톤의 운용 철학과 원칙은 철저한 리서치에 의한 장기적 종목 발굴이다. 기준은 주가가 아닌 이익창출의 가시성이다. 가격변동성보다 이익창출 여건의 훼손 여부를 중시해 주가가 떨어지는 종목이라도 이익창출이 가능한 회사라면 담는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리서치와 운용팀 간의 면밀한 협의가 트러스톤의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대부분 운용사에서 리서치와 운용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인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다 같이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9시까지 이 방에서 회의를 합니다. 사실 다른 회사들은 리서치에서 ‘바이(buy)하자’ 했는데 운용 쪽 생각이 다르면 끝이에요. 그렇지만 저희는 운용 회의에서 어떤 종목의 추가 매수 여부를 결정할 때 한 명이라도 반대 의견이 있으면 논쟁이 시작됩니다. 의견이 팽팽할 때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최고운용책임자(CIO)가 아닌 리서치팀장이 가지죠. 철저하게 리서치 중심으로 종목의 적정 내재가치를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점이 오랜 기간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트러스톤의 강점입니다.”

    특히 트러스톤은 회사의 이익창출에 방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악명(?)’이 높은 운용사로 알려졌다.

    “저희가 아마 자산운용사들 가운데 의결권 행사 횟수로 독보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을 겁니다. 괜히 나서서 잘난 척한다는 소리도 들어봤습니다만(웃음), 미움 받더라도 주주가치를 해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발동하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수익률에 울고 웃는 비정한 자산운용 업계에서 김 대표는 햇수로 12년간 트러스톤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김 대표는 주인 없이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회사라면 경영자가 바뀔 때마다 원칙이 바뀔 수 있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개별 운용역의 선택에 의한 실패 확률을 최대한 낮춘 일관적인 투자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자산운용사의 경쟁력이라 거듭 강조했다.

    “기관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대형 운용사도 아니고 조그만 자문사에서 자기네들 고유 자산으로 주식 투자하지 않는다고 운용 철학 운운하니 우스울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의외로 기관들이 우리의 그런 철학을 존중해주면서 고객들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김 대표는 국내 운용사 중에서는 최초로 해외 유수의 기관투자가 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일조한 것이 일관적인 운용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만큼 김 대표는 조심스레 내년도 비전에 대해서 털어놨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이머징 마켓으로 이동하며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가진 자금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시아 하면 트러스톤자산운용이 떠오를 수 있도록 지금까지 해 온 방식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트러스톤의 비전은 아시아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투자철학을 지닌 자산운용사’로 거듭나는 것인 만큼 단기적인 수익률 하락에 흔들리지 않고 신념과 철학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김영호 대표는 1984년 삼척고등학교를 거쳐 1991년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1999까지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세계경제와 신흥시장 투자조사, 국제금융 분석 등을 맡았다. 이후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을 거쳐 2003년부터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3호(2015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