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성유리 “악역과 로코퀸… 더 강렬한 멜로 해보고 싶어요”

    입력 : 2015.12.24 17:07:18

  •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걸그룹 핑클은 S.E.S와 양대 산맥을 이뤘다. 당시 여학생들에게 H.O.T나 젝스키스가 있었다면, 남학생들에게 핑클과 S.E.S는 굵은 목소리로 “사랑해요 S.E.S”, “핑.클.짱!”을 외칠 수 있는 존재였다. 그중 핑클에서는 성유리가, S.E.S에서는 유진이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은 연기자로 전향, 현재 스크린과 안방극장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사진설명
    ▶“발연기 꼬리표 떼느라 힘들었어요”

    성유리의 배우 인생은 ‘흑역사’로 시작됐다. 2003년 드라마 <천년지애>에서 국어책을 읽듯 “나는 남부여의 공주, 부여주다”라는 대사로 ‘발연기’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분명 더 혹독했을) 걸그룹 생활을 견뎠으니, 그깟 연기력 비난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을까. 성유리는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쟤 뭔데 저기 있어. 가수라고? 노래나 하라 그래”라는 소리를 감내해야 했다. 또 “연기력이 받쳐주지 않는데 예쁜 얼굴만 믿고 뛰어들었다”는 등 여기저기서 지적을 많이 받았고, 나머지 공부도 해야 했기에 여러 번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운 좋게 연기할 기회가 많았는데 이제는 다른 분들에게 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노력해서 될까?’, ‘연기하는 게 즐겁지 않다. 괴롭고 힘든데 다른 길이 있지는 않을까?’ 등등. 수만 가지 생각이 성유리를 괴롭혔다. 하지만 견디고 또 견뎠다. 결국 성유리는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끈기와 인내의 열매를 땄다. 성유리는 “어릴 때는 시키니까 연기를 했지 어떤 주관은 없었다. 또 시간이 조금 흘러서는 내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도 내 욕심이고 교만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배역을 사랑하며 느끼는 감정이 크면, 보는 분도 감정이입하고 느끼는 게 다른 것 같더라”고 과거를 떠올렸다.

    “누구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할 뿐이죠. 이 자리에 있는 건 어떤 소명(성유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요즘은 연기가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매력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다음 작품이 오면 또 어렵게 느끼긴 하지만요. 오래 연기하신 선생님들에게 물어보면 ‘우리도 어려워. 항상 긴장하게 한다니까!’라고 하세요. 우리 일상은 편하고 쉬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연기할 때는 긴장이 되고 뛰어넘어야 할 게 많은 것 같아요. 평소에는 휴대폰 번호도 못 외우는데 쪽대본 나올 때 외우는 것 보세요. 제 뇌가 ‘풀가동’되는 것 같아요.(웃음)”



    ▶“이제 연기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사진설명
    예전에는 자신을 향한 비난과 시선이 억울한 게 많았지만 지금은 훌훌 털었다. 또 이제는 시키는 일보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연기다. 독립영화와 저예산 영화도 가리지 않는다. 2013년 독립영화 <누나>에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강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려다 죽은 동생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여자가 불량학생을 만나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해 나가는 내용의 이 영화는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특별전>에 초청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에 앞서 성유리는 영화 <토끼와 리저드>에서는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입양아로 연기 영역을 넓혔다. ‘부여주’ 이미지를 탈피했다. 최근 관객을 찾았던 옴니버스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도 특별했다. 성유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성유리는 여배우 서정으로, 김성균은 10년째 서정을 짝사랑하는 매니저 태영으로 출연했다. 까칠한 여배우와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매니저의 사랑 이야기.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각양각색 사람들에게 찾아온 일상의 가장 빛나는 고백의 순간을 담은 이 옴니버스의 ‘사랑해’ 편을 맡았다. 복싱 맞수였던 강칠(김영철)과 종구(이계인)의 ‘미안해’, 무뚝뚝한 아빠 명환(지진희)과 천사 같은 아이 은유(곽지혜)의 ‘고마워’와 함께 교차 편집돼 한 편의 영화로 묶여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극 중 성유리와 김성균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게 하는 이 영화에서 웃음을 담당했다. 성유리 본인도 즐거웠다. 또 자신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게 있으니 서정 역할이 100% 이해됐다.

    “극 중 서정이 돈 벌려고 막장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하기 싫어하는 게 충분히 이해 가더라고요. 근거 없는 짜증은 없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대놓고 소리 지르는 장면도, 아마 현실에서는 선생님들 빼고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나름대로 유쾌하게 그려졌잖아요. 실제로 전 어떤 스타일이냐고요? 서정 같은 짜증의 레벨로 올라갈 때도 있는 것 같긴 해요. 타이밍 맞게 화를 내면 되는데 한 번 참고 뒤늦게 폭발한 적이 있어서 ‘성유리 뒤끝 있다’는 얘기도 듣긴 했죠. 하하.”

    영화에서처럼 매니저와 배우의 연애와 사랑,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성유리는 존경심을 표했다.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실제 매니저와 배우 관계로 결혼한 분들 있잖아요? 그런 부부 보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특히 매니저 하셨던 분들이 더 대단한 거죠. 볼 거, 못 볼 거 다 봤을 텐데, 그런데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 ‘진짜 사랑이구나!’ 싶어요. 제가 봐도 매니저는 힘든 직업이거든요.”

    사진설명
    ▶“결혼? 아직도 어린가 봐요” 프로골퍼 안성현과 교제 중이니 매니저는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인을 언급하는 건 조심스러워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나 역시 옛날 연예인이다 보니까 익숙하진 않다”며 “당당하게 연애를 하긴 하지만 뭘 하든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성격 자체가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다”고 털어놨다.

    “가족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서툴다”고 고백했다. 옛날 사람이라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흔히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 쉽게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진짜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들인 것 같아요. 특히 부모님께는요. ‘집에 가서 해봐야지’ 했는데 못 하겠더라고요. 요즘 부모님과 같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랑해’라는 표현을 잘하는 친구들이 많던데 그건 습관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하면 괜찮았을 텐데 저는 그러지 않아서 표현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나마 문자로는 되는데 얼굴 보고는 눈도 못 마주치겠어요.”

    결혼에 대한 생각도 조심스럽다. 과거 경쟁 구도였던 걸그룹 S.E.S는 이미 유진과 슈가 결혼해 잘살고 있는데, 핑클은 이효리만 유부녀 대열에 합류했다. 성유리는 “아직 효리 언니 빼고 우리는 어린 것 같다”고 웃었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연기를 하면서는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한단다. “아이들이 연기를 정말 잘해요. 얘기하다 보면 대화가 된다니까요. 엄마 마음을 알 것 같은 그런 친구들이 많아요. 제 마음을 아는 딸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 같은 딸이면 최고 아닐까요? 하하.”

    사진설명
    1998년 데뷔했으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힘들었고 고생했다”는 말을 감추지 않았지만 구김은 전혀 없어 보였다. 동그란 눈과 서글서글해 보이는 이미지는 예전처럼 밝게 빛났다. 17년을 연예계에서 생활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사람 좋아 보이면, 이 분야에서는 사기 치려는 이들이 많으니까. “어렸을 때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고부터는 나와 친해지려고 하면 무슨 의도가 있나 그런 의심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귀가 얇거든요. 부탁받고 상처받은 적도 많아요. 그래도 이제는 저 사람이 얻어가는 게 있으면 나한테도 배움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솔직하게 얘기하고 오픈하면 도와줄게’라고 말해요.(웃음)” 가수로, 배우로 인기를 얻었으나 요즘 들어 “어렸을 때 노는 법을 너무 못 배운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성유리. 그래서인지 주변 어린 친구들에게 “젊을 때 더 많이, 재미있게 놀라”고 추천한다. 일말의 후회가 없도록 말이다. 물론 본인은 아쉬움도 있긴 하지만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강조했다. 토크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 MC로 활약한 것도 그중 하나다. 성유리는 “MC를 했기 때문에 일반 대중과 좀 더 친해진 것 같다”고 좋아했다. “반전 매력을 더 보여줬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나머지는 연기로 더 많은 걸 보여줄 생각이다. “악역도 해보고 싶고, 조금 더 강렬한 멜로 장르도 해보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도요. 이제 노래는 안 하고 싶으냐고요? 옛날부터 영화 속에서 노래하고 싶은 생각을 했는데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 출연하면서 나름대로 소원 성취한 것 같아요. 연습 많이 했었거든요.(웃음)” [진현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3호(2015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