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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진정한 아름다운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입력 : 2015.11.19 14: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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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되찾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이번 매매계약을 통해 그룹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호산업은 금호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사옥, 금호리조트, 금호터미널 등 금호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금호산업을 갖고 있어야 진정 그룹의 오너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박 회장은 주식매매계약 뒤 한 달 안에 자금조달 계획서를 채권단에 제출하고 인수자금 조달의 적정성을 검증받게 된다. 인수대금 납부시한은 계약일로부터 3개월, 계약금은 없지만 거래가 무산되면 매매대금 7228억원의 5%(361억여 원)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 계획대로라면 올 안에 작업이 완료될 전망이다.
10월 중순까지 밝혀진 수순은 박 회장이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각, 그 자금으로 금호산업 인수를 위한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금호타이어 채권단(우리은행, KDB산업은행 등)에 보유지분의 담보권 해지를 요청했고, 채권단은 이를 수용했다. 이로써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지분으로 금호산업을 되찾기 위한 자금 조달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되면 SPC는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금호터미널을 지배하는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된다. 박 회장은 채권단에 SPC의 지분을 대체 담보로 제안했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수상한 박삼구 회장. 2004년 큰형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데 이어 형제가 수상한 건 상 제정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강수 두며 그룹 재건에 매진
지난해 말 워크아웃을 졸업한 금호타이어는 현재 채권단이 42.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담보권 해지를 요청한 지분은 박 회장이 보유한 2.65%와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보유한 2.57%,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2.84% 등 총 8.06%다. 그동안 이 지분은 채권단에 담보로 잡혀 있었다.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당시 신규 자금을 지원한 채권단이 이 지분을 담보로 잡았고, 박 회장은 보유 지분에 대한 처분 권한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SPC가 비상장법인이지만 실질적인 담보가치는 금호타이어 주식을 대체하기에 충분하다는 게 채권단이 내린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할 수 있는 금호타이어의 채권단 보유 지분(42.1%)도 SPC를 통해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며 “일각에선 SPC지분을 담보로 내놓았다는 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경영권까지 내놓겠다는 박 회장의 의지로 풀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제 변수는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지분을 누구에게 매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만간 진행이 예상되는 금호타이어 매각 작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채권단 지분 42.1%에 대한 우선 매수권을 갖고 있다. 여기에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등 금호타이어 지분 9.21%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금조달이 성공할 경우 우선매수권을 쥔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 0순위”라며 “금호산업 인수전에서 보여준 박 회장의 저력을 감안하면 제2의 창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사실 2006년 대우건설에 이어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할 때만 해도 금호그룹은 거칠 게 없었다. 인수 당시 대우건설은 국내 건설 도급 순위 1, 2위를 다투고 있었고, 대한통운은 보유 자산가치가 큰 이른바 대표 자산주라 불리고 있었다. 이들 기업을 인수하며 금호는 단숨에 재계 순위 7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M&A를 통한 금호그룹의 영토 확장은 그게 전부였다. 건설경기 불황에 2008년 리먼 사태가 이어지며 그룹이 휘청거렸다. 급기야 인수한 기업을 다시 매각해야 했고, 금호렌터카와 금호고속 등 주요 계열사까지 매각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기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장남에서 차남, 3남으로 이어진 형제 간 경영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룹의 유동성 위기에 급기야 3남인 박삼구 회장과 4남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갈등이 외부로 표출됐다. 2009년 7월 28일 박 회장은 동생 박찬구 회장과 동반 퇴진을 발표한다. 그룹을 책임지고 있던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경영 2선에 서게 됐고, 동생은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서 해임안이 가결됐다며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을 선언했다. 초강수였다. 그해 12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식의 일종인 자율협약 절차를 밟았다. 이후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합의에 따라 2010년 3월 박찬구 회장이 먼저 금호석화 대표로 복귀했고, 10월에는 박삼구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복귀했다. 15개월 만이었다. 박 회장은 2013년 11월, 연봉 1원에 그룹 지주사인 금호산업 대표를 맡으면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그룹은 박삼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 등)과 동생 박찬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유화학그룹(금호석화·금호피앤비화학 등)으로 사실상 경영권이 분리됐다. 그동안 2012년 12월 금호석유화학이 자율협약에서 가장 먼저 졸업했고 2014년 10월에는 금호산업이 채권단 지분을 매각하는 것과 동시에 워크아웃 종료를 결정한다. 12월에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가 각각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올 들어 박 회장은 앞서 밝힌 금호산업 채권단의 경영권 지분(50%+1주)을 사들이는 데 ‘올인’했다. 그리고 그룹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올 초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밝힌 2015년 경영화두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이었다. 스스로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힘쓴다는 뜻의 사자성어인데, 워커홀릭으로 알려진 박삼구 회장의 경영스타일과도 무관하지 않은 의미다. 올 초 박 회장은 그룹 직원들에게 “2015년은 제2의 창업을 완성한 후 새롭게 시작하는 원년”이라며 “강하고, 힘 있고, 멋있는 금호아시아나를 만들기 위해 모든 임직원과 계열사가 스스로 강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전 계열사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용인에 자리한 금호아시아나 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된 ‘2015년 상반기 임원 전략경영세미나’에선 “옛날 마라톤은 처음에는 살살 뛰다가 나중에 역전하는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선두그룹에 있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서 뛰어야 한다. 매사 순간순간마다 자기 자신을 강하게 하기 위해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그룹의 철학이기도 한 ‘아름다운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계열사별 실천방안을 살펴보곤 “아시아나항공의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용어를 199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2006년에 그룹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아름다운 기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아직 아름다운 기업에 맞는 실적과 이미지를 만들지 못했지만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는 우리 금호아시아나가 독점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기업을 만들어 가자”고 주문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련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형제 간의 지분정리가 자연스럽게 진행됐다”며 “진정 그룹 재건에 앞서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재계 순위를 다투던 10여 년 전의 모습이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깐깐한 스타일의 이코노미스트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초대 회장의 3남인 박삼구 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한 금호맨이다. 이듬해인 1968년에 한국합성고무를 설립해 금호석유화학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1988년 아시아나항공 출범 당시에는 숨은 산파 노릇을 하기도 했다. 옳다고 믿는 일은 누가 뭐래도 실행에 옮기는 워커홀릭으로 알려졌는데, 일례로 1995년 아시아나항공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국내외 전 노선에서 처음으로 금연을 실시했다. 물론 기내 담배 판매도 금지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비행시간이 13시간 이상인 태평양 노선에선 영업에 타격이 예상된다며 임원들의 반대가 거셌다. 그래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박 회장의 판단은 실적으로 증명됐다. 설립 7년 만에 290억원의 이익을 내며 항공사상 유례가 없는 흑자기록을 세웠다. 당시 박 회장의 말을 빌면 “항공의 항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4년 전 사령탑을 맡았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의 누적 적자는 1200억원이나 됐다.
스스로 39(삼구)세라고 말할 만큼 활력 넘치는 박 회장은 처음 만난 이들과도 거리낌 없이 어울릴 만큼 뛰어난 친화력으로 유명하다. 또 매출과 순이익 등 재무제표 내용을 꿰고 있는 수치경영의 신봉자로 알려졌다. 그런 스타일 때문에 형제들 중에선 군기반장으로 통했는데, 그렇다고 무조건 몰아붙이지만은 않았다. 결재 때 엄하게 지적하곤 술자리에선 반드시 부하직원의 마음을 풀어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름을 잘 외워서 직원들 사이에선 ‘회장이 어떻게 내 이름까지…’라며 회자되곤 한다.
[안재형 기자 사진 김재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2호(2015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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