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명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TPA법안 통과와 이란 핵협상 승인 오바마와 美의회가 보여준 민주주의
입력 : 2015.08.21 09:18:36
박대통령 미 의원 합동연설
한국과 미국은 둘도 없는 동맹이라고 하지만 어찌 이리 다를 수 있을까. 특히나 정치인들의 행동거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 가끔 한국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울 만큼 성장했다고 자부하지만 정치를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강력히 밀고 있는 정책이다. 지난달 미국 의회에서는 TPP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TPA(무역협상촉진권한) 법안이 통과됐다. TPA가 왜 TPP에 도움이 되는 법안이고, 오바마 대통령이 왜 TPP에 목을 매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번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TPA가 미국 의회에서 어떻게 통과되었느냐는 점이다.
야당의 지지로 통과된 TPA법안
한마디로 말하면 오바마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TPA 법안은 여당인 민주당의 반대 속에서 야당인 공화당의 지지로 통과됐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인 낸시 펠로시 의원은 끝까지 TPA 법안에 반대했다. 미국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낮출 수 있다는 게 반대의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은 근로자와 노조가 핵심 지지기반이다. 근로자와 노조가 TPP에 반대하는 이상 민주당으로서는 선뜻 백악관의 요구라고 해서 무조건 찬성할 수가 없다.
특정 지지계층을 넘어서 국가경제와 국민 전체를 염두에 둬야 하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친정인 민주당의 반대가 서운했겠지만 설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G7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하는 길에 민주당 하원의원들을 전용기에 초청해 TPP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백악관으로 초대해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TPA 법안 통과에 협조해 줄 것을 호소했다. 성장을 중시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협력을 약속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TPP 협정으로 피해를 보는 근로자들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협조하겠다고 했다. 지난 6월 29일 TPA 법안이 마침내 의회를 통과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하며 “이게 바로 민주주의”라고 했다.
오바마 의회방문
여당의원 설득하는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이란 핵협상 문제다. 밀고 당기는 지루한 협상 끝에 이란 핵협상이 타결됐지만 의회 승인이라는 큰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이란 핵협상 결과를 의회에서 승인받지 못하면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1년여를 남겨 놓고 급속히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당인 민주당이 문제다. 공화당은 애초부터 이란 핵협상에 대해서는 반대해 왔기 때문에 설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여당으로서 대통령의 중동정책을 완벽하게 지지해준다면 협상안이 의회의 승인을 받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 친이스라엘 인사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로버트 메넨데스 의원과 게리 피터스 의원 등 14명의 상원 민주당 의원이 오바마 정부의 이란 핵협상에 반대하고 있다. 핵협상 결과를 놓고 반드시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도 야당인 공화당이 아니라 여당인 민주당이었다.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친정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 자못 기대된다. 백악관의 설득에 공화당 의원들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도 궁금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TPA 법안이 통과하고 이란 핵협상 결과가 승인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국민으로서 대통령과 백악관이 의회를 어떻게 설득하고, 여당과 야당은 정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어떻게 소신을 개진하는지에 눈길이 간다. 청와대가 중점 추진하는 법안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반대하는 한국의 야당이나 대통령 한마디에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한국의 여당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온 국민이 “이런 게 바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모습을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