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삿짐차 논두렁에 빠지자 내비게이션 사업 구상… 626억원 투자 받은 ‘김기사’ 히든 스토리

    입력 : 2015.07.06 17: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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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전화해서 ‘아들아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애들도 아빠가 그렇게 어려웠냐고 물어봤어요.” 다음카카오가 626억원에 인수해 단숨에 화제가 된 국민 내비 김기사의 박종환 대표(43)의 말이다. 박 대표가 말하는 ‘그 얘기’란 서울로 상경했던 초기에 쪽방촌을 전전하던 시절을 말한다. 그 얘기를 하지 말아 달라는 얼굴 표정에는 아직 순수함이 묻어 있었다. 일부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과거를 어려운 시절이었다며 포장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부끄럽게 느끼며 숨기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구김살 없는 청년가장 같았다”고 하면 어떨까. 박 대표의 말을 듣고 나면 그때 상황이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생생하다.

    변두리 쪽방촌서 대학동기와 스타트업 최근 모바일 혁명과 창조경제 바람이 불면서 많은 창업 스토리들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경우 ‘외국계 (아이비리그 또는 스탠퍼드) 출신 대학’ 아니면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나와’, ‘국내 대기업을 마다하고’, ‘부모님이 유력자인’ 등의 스토리가 많다. 자신이 그럴만한 능력이 되지만 포기하고 스타트업에 뛰어들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박종환 대표는 처음부터 ‘헝그리’하게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스탠퍼드 졸업식에서 얘기한 ‘헝그리하게 우직하게’란 말이 어울린다.

    박 대표가 이젠 자주 안 나왔으면 하는 ‘그 얘기’는 지난 1999년 처음 상경했을 때를 말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박 대표는 대학(동아대 컴퓨터공학과 학사,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석사)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사업하는 분들을 보면 보통 대학 때 서울에 올라오셨더라고요. 서울 소재 대학에 다녔던 것이죠. 하지만 저는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습니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뒤에 서울로 가서 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더라고요.”

    ‘석사’를 한 것도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부산 동의대(학사)를 나와 졸업할 때쯤 외환위기를 맞아서 취업이 안 되니 대학원(부산대)을 갔다. 이것도 평범한 스토리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대학 동기인 김원태 현 록앤올 공동대표(공동창업자)가 살던 창신동 쪽방촌에 얹혀살았다. 창신동 쪽방촌이 그 정도로 낡은 곳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부산에서도 창신동 쪽방촌과 비슷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는데 이건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방엔 빛도 안 들어오고 공동 화장실을 쓰며 따뜻한 물도 안 나오는 그야말로 ‘쪽방촌’이었다. 이 방에서 1년 넘게 살았는데, 하루는 당시 갓 입사한 회사(KT자회사, KTIT)의 직장 상사가 늦게까지 같이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소주를 들이키며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살고 있냐?”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 이 집이 그렇게 안 좋은 것인가?” 그러고 보니 빛도 안 들어오는 집에 사는 것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박 대표와 김원태 대표가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옮겨간 곳이 화곡동 조그만 오피스텔이었다. 낮에 찾아갔는데 주변 시세에 비해 가격이 너무 싸서 당장 계약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오피스텔’이란 말에 넘어간 것이었다.

    이 지역이 시세에 비해 쌌던 이유는 ‘화곡동 환락가’였기 때문이다. 낮에 가서 보니 그곳이 환락가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밤에 가서 보니 화려한 네온사인 때문에 계약한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약한 첫날은 집이 아니라 인근 여관에서 잠을 잤다.

    “부산에서 올라온 촌놈이어서 그곳이 화곡동 환락가인지 몰랐습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알려주더라고요.”

    창신동 쪽방촌에서 화곡동 환락가로 이사 간 스토리도 기가 막히다. 회사에서 빌린 봉고를 이용했는데 서울 지리를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논두렁에 빠지는 일도 겪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잖아요. 하지만 당시엔 지도책을 사서 다녔습니다. 부산 촌놈이 화곡동, 일산, 행주산성 지역을 어찌 알겠습니까. 화곡동에서 나와서 쭉 가는데 논밭이 나오더라고요. 그때 차가 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때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훨씬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고 과거 기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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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등장으로 사업환경 급변 박 대표는 첫 직장이었던 KTIT에서 나와서 ‘포인트아이’에 합류했다. 쪽방촌 동지 김원태 대표가 포인트아이를 공동 창업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위치기반 사업, 그리고 내비게이션과 인연을 맺었다. 포인트아이는 KTF에 ‘친구찾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후에 ‘케이웨이즈’라는 모바일 내비게이션을 공급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잘나가는 회사였고 성장성을 인정받아 코스닥에 상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폰’ 등장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앱’으로 무료로 풀렸고 내비게이션 강점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포인트아이는 코스닥 우회상장을 원하던 회사에 매각됐다.

    ‘스마트폰이 미래’라고 판단한 박 대표는 2013년 ‘쪽방촌 동지’ 김원태 대표, 대학원(부산대) 동료 신명진 현 록앤올 부사장과 함께 스마트폰용 내비게이션 회사를 창업하기로 했다. 퇴직금으로 받은 5000만원을 각각 투자했다. 위치기반 서비스에 대한 경험이 있었고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름을 ‘김기사’로 정한 것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엔 ‘XX 내비’란 이름을 지으려 했다. 당시 올레내비, 유플러스내비 등 내비게이션이란 말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기사’란 이름을 작명한 것은 신명진 부사장이었다. ‘부르기 쉽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내키지 않았다. 김기사가 부르긴 편하지만 택시앱인지 대리운전 앱인지 알 수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XX내비란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김기사도 맘에 안 들고 XX내비도 좀 그러니 서비스 개시일까지 김기사보다 좋은 이름이 나오면 바꾸고 그렇지 않으면 김기사로 가자고 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김기사를 뛰어넘는 이름이 나오진 않았고 그래서 김기사로 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이지요.”

    기술엔 자신이 있었고 창업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빽(배경)’이 없었다. 서울 출신이 아니어서 서울엔 변변한 동문도 없고 자신을 포장할 만한 포인트도 없었다. 더구나 내비게이션 시장은 벌써 ‘포화됐다’고 말할 정도로 넘쳐났다. 기존 내비게이션 업체들이 대거 모바일로 전환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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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캐피털 문전박대 우여곡절 끝 투자 유치 창업 7개월이 지난 후 돈이 떨어져 투자자를 찾아갔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하는 얘기는 한가지였다. “통신사가 서비스하고 구글, 애플이 지도 서비스를 하는데 조그만 회사가 되겠냐?”는 것이었다. 투자는 모두 거절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으로 보면 김기사는 안 되는 사업이었다. 당시 크고 작은 내비게이션 업체만 300개가 있었고 스마트폰 내비도 SK텔레콤의 T맵과 KT의 올레 내비가 존재했다. 글로벌 경쟁상대는 구글과 애플이었다. 촌놈 3명이 아무리 힘내 싸워봐야 버거워 보이는 상대들.

    “투자를 못 받는구나 생각하고 아예 포기를 했습니다. 경쟁사를 먼저 떠올리는 투자자들과는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고 회상했다. 김기사를 문전박대한 벤처캐피털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도 “기존 강자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였다.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면 되는 사업은 하나도 없고 스타트업이 존재할 틈은 없다. 당시 벤처캐피털은 김기사를 알아보지 못했다.

    2011년 초 거의 무일푼 상태에서 기술보증보험을 통해 돈을 빌렸다. 빌린 돈도 떨어져 갈 때 창업 2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국투자파트너스에서 투자를 받게 됐다. 사석에서 만난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김기사를 눈여겨보고 투자자를 소개해 줬다.

    투자를 받아 기존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줬고 인재를 뽑을 수 있었다. 이 인연은 계속 이어져 결국 다음카카오가 김기사를 인수하게 됐다. 소위 ‘죽음의 계곡’을 단숨에 넘고 M&A까지 가게 된 것이다. 행운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내비게이션 기술을 쌓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기사의 M&A가 화제가 된 또 다른 이유는 국내에 김기사처럼 M&A 돼서 엑시트(EXIT, 벤처기업이 사업을 궤도에 올린 뒤 회사를 대기업 등에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는 것. 엑시트는 또 다른 창업을 모색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 생태계를 선순환시키는 구실을 한다.)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경제가 입수한 맥킨지의 벤처산업 선순환 구조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은 인수·합병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엑시트 사례가 0.4%에 불과하다. 또 한국에서 스타트업에서 IPO에 이르는 기간이 평균 12년 소요돼 7년 미만인 미국 실리콘밸리와 큰 차이가 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11월 기준 한국의 벤처기업은 2만9561개로 2003년의 7702개 대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정작 자금을 선순환시켜 또 다른 창업을 유도할 수 있는 엑시트와 IPO는 극히 드물다. 창업은 많이 이뤄지고 있으나 지속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초기 자금투자(시드, 엔젤)를 받아 창업했지만 출구가 막혀 도중에 망하거나 좀비기업으로 전락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사’는 국내 대표적인 윈윈 사례로 꼽힐 만하다.

    김기사 지분매각 이유는 ‘비전’ 때문 박종환 대표는 사실 ‘김기사’를 매각할 생각이 없었다. 일본과 중국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중국에서도 김기사 기술을 기반으로 한 무료 내비게이션 서비스가 먹힌다면 기업 가치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박 대표는 ‘지분 전량매각’을 선택했다. 현금으로 50%를 받았고 다음카카오 주식을 50% 받았다. 공동 창업자 3명이 각각 약 50억원을 손에 쥘 수 있었고 직원들에게도 고생에 대한 보상할 수 있었다.

    왜 매각을 선택했을까? 일반인들이 보면 626억원은 큰돈일 수 있지만 창업가 기준으로 보면 섣부른 매각일 수도 있다. 특히 ‘돈’을 따진다면 다음카카오에 매각하는 것보다 회사를 더 키워서 중국 등 외국 업체에 매각하는 기회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박 대표는 ‘결단의 순간’의 이유로 ‘비전’을 꼽았다.

    “사실 다음카카오로의 인수는 가장 마지막 선택지였습니다. 김기사가 ‘정확하고 빠르다’는 입소문을 타고 1000만 다운로드를 넘었고 월 이용자도 200만명을 넘어서니 SK플래닛, 네이버 등에서도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었죠. 김기사는 현재의 교통 흐름을 분석해 1분 단위의 빠르고 정확한 길안내를 제공합니다. 다음카카오는 가장 마지막에 협상했으며 인수합병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한 것도 지난 3월 이후였습니다. 하지만 ‘비전’이 중요했습니다. 다음카카오가 설계하는 비전이 김기사와 같았어요.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각 협상을 한 사람들은 이석우 대표가 아니었습니다. 실무진들과 대화했습니다. 지금 혼자 하는 것보다 다음카카오가 가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비전과 함께해서 대한민국의 교통, 물류 등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국민들이 모바일을 통해 더 편리한 삶을 누릴 기회를 같이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카카오에 합병된 김기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다음카카오는 김기사를 인수하며 독립 경영을 약속했다. 실제 다음카카오는 김기사 인수합병을 발표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O2O 비즈니스를 확장해 나가는 데 내비게이션 등 교통 관련 서비스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김기사의 방대한 교통 정보 및 실시간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다음카카오 서비스와의 시너지, 미래 성장 가능성 등을 보고 전략적으로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박종환 대표의 말도 같다. “독자 경영 및 서비스를 통해 시너지를 노릴 예정입니다. 내비게이션의 특성상 맛집, 여행지 등의 정보가 많습니다. 김기사를 통해 맛집 안내, 관광지 안내 서비스를 하고 추후 ‘김기사’ 앱을 통해 예약 및 결제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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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환 대표 ·동아대 컴퓨터공학과 학사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석사

    ·1999년 KTIT 입사

    ·2001년 포인트아이 입사

    ·2010년 5월 록앤올(김기사) 창업

    ·2015년 5월 다음카카오 100% 자회사로 편입

    [손재권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8호 (2015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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