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한 응원에 돈내기까지 ‘진상갤러리’ 눈살…골프대회 갤러리 천태만상

    입력 : 2015.06.25 10:59:39

  • 사진설명
    이제는 한국 남녀 골프대회에서 ‘갤러리’를 빼놓고는 장면을 떠올릴 수 없다. 대회 최종일 톱 골퍼들과 18홀을 함께 돌고 마지막 18번 홀에서는 챔피언조 뒤로 수많은 갤러리들이 페어웨이를 함께 걸으며 뒤따르는 장면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대부분의 갤러리들은 운동화에 간편한 골프의류나 등산복 차림을 하고 나름의 노하우로 만들어진 ‘갤러리 문화’를 즐기지만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진상 갤러리’들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갤러리로 골프장을 찾은 본인은 스스로가 어떤 갤러리인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할 수 없이 중요한 전화를 받았는데, 주위에서 다들 쳐다보고 뭐라고 나무란다. 그런데 “나는 중요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며 반박한다. 또 “나는 이 골프장을 잘 아니까 다음 홀로 가려면 이 홀 페어웨이 가로지르면 돼”라며 자랑 섞인 말을 하는 갤러리들도 많다. 또 “내가 갤러리인데 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는 게 많냐”며 따지는 경우도 있다.



    응원형 학습형 갤러리 많아  2015년 한국의 골프대회 갤러리는 어떤 모습일까.

    여자골프 대회를 가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갤러리는 바로 ‘응원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골퍼를 정해 계속 응원하며 힘을 실어 준다. 물론 팬클럽을 결성해 같은 색깔의 모자를 쓰고 옷을 입으며 “우리는 너를 응원하고 있어. 힘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주로 중년들이 많으며 매너가 좋고 갤러리 문화를 이끈다.

    하지만 응원이 과해 ‘소음’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에는 일부 대형 팬클럽들의 소란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경쟁하는 선수의 기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로 응원하고 자기 편의 선수가 퍼팅을 끝내면 다른 선수의 플레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르르 그린을 빠져나간다. 그 수가 적다면 큰 피해를 주지 않지만 수십명 이상이 이렇게 단체행동을 한다면 문제가 커진다. “상대 선수가 너무 상승세라 일부러 카메라 셔터를 누른 적이 있다”고 밝힌 갤러리도 있었다. 또 하나의 일반적인 갤러리는 ‘학습형’이다. 비거리를 늘리고 싶다면 장타를 치는 선수들을 따라가고 퍼팅이나 숏게임이 안 되면 해당 기술을 잘 구사하는 선수를 따라다니며 스윙과 리듬, 기술 등을 자세히 본다. 가장 열성적이면서 비디오카메라로 선수들의 샷을 찍거나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이동할 때에는 뛰어다니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학습형 골퍼들은 종종 티박스에서 과도한 의욕으로 동영상이나 사진 촬영을 해 선수의 흐름을 끊어 눈총을 받기도 한다.

    진상갤러리 경기진행에 방해 그런가 하면 약간 ‘진상 갤러리’들의 유형이 있다. 먼저 자유분방한 ‘유희형’이다. 가족들이 와서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르다. 우선 이들은 선수들의 플레이는 상관하지 않는다. 평소 하지 못했던 ‘골프장 내 음주’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골프장을 오는 이들의 배낭 안에는 맥주와 소주 등 주류와 안주 등이 가득 담겨 있다. 물론 돗자리와 우산은 필수다.

    처음에는 그린이나 코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씩 하면서 플레이를 지켜본다. 하지만 술이 조금씩 들어가면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본격적으로 음주를 펼친다. 그리고 종종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조금 더 심각한 경우가 있다. 바로 ‘도박형’이다. 이들은 챔피언조나 자신들이 목표로 한 조를 따라다니며 홀마다 돈내기를 한다. 무슨 컴퓨터 게임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고르는 것과 같다. 비슷한 실력의 선수를 선택하고 해당 선수의 성적에 따라 돈을 주고받는다. 보통 1타당 1만원에서 5만~10만원까지 통 큰 경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또 하나의 도박형은 A선수가 ‘파를 한다’, ‘못한다’는 식의 게임이다. 이들 도박형 갤러리는 생각보다 숫자가 많다. 물론 “선수들의 경기도 보고 우리끼리 게임 한다는데 무슨 그게 잘못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을 놓고 갤러리들이 돈내기를 하는 게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올바른 갤러리 문화 정착 시급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진상 갤러리 스타일이 있다. 바로 ‘갑질형’이다. 이들은 “갤러리는 왕이다. 갤러리 없이 대회 치러 볼래!”라며 윽박을 지르기까지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당하다’는 것이다. 전화벨 소리가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알면서도 진동으로 바꾸는 것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전화가 오면 마치 자신이 지구를 구한 듯 당당하게 통화를 하기도 한다. 지방에서 열린 한 여자프로골프 대회에서는 선수가 티샷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갑질 갤러리’와 ‘모범 갤러리’ 사이에 한바탕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는 점이다. “내가 언더파도 몇 번 치고 이 골프장 자주 오니까 내가 알아서 해. 신경 쓰지 마”라는 식이다. 또 “중요한 사업 전화인데 계약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래?”라며 오히려 더 당당하게 큰소리를 치는 사례도 있다.

    이들은 가끔 나이 어린 경기진행 요원들을 울리기도 한다. 시야를 가리니까 앞에 비키라고 혼을 내거나 때로는 나이가 어린 아르바이트 진행요원들에게 반말이나 욕설을 하고, 때로는 성희롱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그리고 ‘안하무인형’인 이들 갑질 갤러리는 “저게 프로야? 나도 저거보다는 잘 치겠다. 저래서 골프로 밥 먹고 살겠어?”라며 선수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말을 거침없이 던지기도 한다. 이들 외에도 검정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계절별로 나오는 산나물이나 나무열매 등을 주우러 다니느라 정신없는 ‘채집형’도 있다. 특히 봄철 제주도에서 열리는 대회에서는 질 좋은 제주 고사리를 뜯어가기 위해 ‘봄나물족’들이 전국에서 몰려오기도 한다.

    갤러리는 골프 문화의 한 축이다. 갤러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골프의 인기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갤러리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한국 골프 문화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매너 갤러리가 될 것이냐, 아니면 진상 갤러리로 내 멋대로 골프 문화를 망치느냐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조효성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