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으로의 초대

    입력 : 2015.04.17 14:40:43

  • 강형성 서림정공 대표
    강형성 서림정공 대표
    ‘풍경’이라고 하면 보통 겹겹이 늘어선 산에 운해가 낀 광경이나 계곡이나 넓은 초원처럼 보통 인간의 손길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 상태의 경치를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풍경사진은 그런 자연의 풍광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의 장르를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도시나 건물 같은 인공적인 경관을 찍은 사진도 풍경사진에 포함됩니다. 또 ‘사회적 풍경’이나 ‘수업 풍경’, ‘번화가 풍경’ 식으로 풍경이라는 용어가 폭넓게 쓰이기도 하지요.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풍경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자연을 다룬 사진으로 한정해서 풍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풍경(風景)에서의 ‘풍(風)’은 공기의 흐름입니다. 하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일지라도 기류(氣流)라고 하면 기상 뉴스를 듣는 것 같아서 어쩐지 맛이 없어지지요. ‘선비의 풍모를 지닌 사람’에서처럼, ‘풍’이라는 한자는 대상이 지닌 ‘고귀한 자태나 분위기’라고 하는 긍정적인 인상을 줍니다. 또 ‘경(景)’이라는 한자에는 원래 ‘햇빛과 그것이 만들어낸 그림자’라고 하는 뜻이 있고, 그 밖에도 ‘눈에 비치는 모습’, ‘크고 강한 것’, ‘고상함’ 같은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말씀 드리면,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촬영(撮影)’에서의 ‘촬(撮)’은 ‘손으로 단번에 잡는다(取)’는 뜻입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림자를 순식간에 붙잡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한편 서양에서의 ‘풍경(landscape)’이란, 어떤 지역에 있어서의 자원이나 환경, 역사 등에 의해서 형성된 사회적, 또는 정치 경제적인 공간으로서의 도시나 그 경관(景觀)을 말하는 것으로, 같은 ‘풍경’이라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풍경과는 뉘앙스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인공적인 경관과 비교하면 우리의 풍경은 자연이 중심이 됩니다. 그것만 보아도 우리에게 있어서 풍경이란 말 속에는 현실의 물리적인 대상 그 자체보다는 바람과 햇빛과 그림자에 의해서 출현되는 세계를 앞에 둔 주체의 눈길에 심정적인 울림이 훨씬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사진을 찍으니 세상이 온통 잔치’ 풍경사진을 찍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눈 닿는 끝까지 펼쳐진 광활한 하늘과 푸른 바다, 길섶에 핀 앙증스런 작은 들꽃, 오후의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잔물결, 가느다란 가지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갈색 나뭇잎 한 장…. 카메라의 파인더를 눈에 대고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거기에 있었지만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또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사물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사진가가 보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인가를 카메라는 느끼도록 만들어줍니다.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의 보람을 찾기 위해서 CEO들을 위한 사진예술 과정에 들어오신 어느 분께서 수료하실 즈음, “사진을 하고 나니 세상이 온통 잔치더라.” 그렇게 소감을 얘기하셨습니다. 밝은 빛과 그림자, 온갖 화려한 색채와 활기찬 생명과 크고 작은 갖가지 존재들로 가득 찬 우리의 삶과 세계를, 그리고 진정한 사진의 즐거움을 이처럼 짧은 말로 함축시켜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진은 눈으로 보면 거기에 찍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믿음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본다고 하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이고 적극적인 해석의 행위입니다.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에는 자연에 대한 원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특유의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풍경 앞에 서 있을지라도 그것을 화려한 ‘잔치’로 볼 것인지, 아니면 우울한 잿빛 세계로 인식할 것인지는 개인의 정서적인 성향이나 문화적인 수준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윤종근 효리원 대표
    윤종근 효리원 대표
    사진은 새롭게 바라보는 것 ‘촬영’이 그림자를 빠르게 잡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예를 들어 200분의 1초나 8000분의 1초라고 하는 짧은 순간을 잘라내어 영원히 불변하는 상(像)으로 붙잡아둔다는 것은 사진 이외의 어떤 수단으로도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상상을 벗어난 장면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색채를 예리하게 읽어내고 바람과 계절의 움직임을 피부로 민감하게 느끼면서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셔터를 누를 때의 두근거림,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일체가 되어 촬영에 몰두하는 것은 건강한 심신의 스포츠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 우리의 뇌에서는 엔도르핀과 도파민이라고 하는 유익한 쾌락 물질이 샘솟는다는 것이 가속도 맥파 방식이라고 하는 첨단장비를 활용한 실험들을 통해서 밝혀졌다고 합니다.

    혼자 찍어도 좋지만 함께 다니면 재미있을 뿐더러 깨닫는 것도 많습니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피사체를 찍어도 똑같은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선 놀라시게 될 것입니다.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미묘한 차이 때문인데요. 장면의 일부분이나 작은 피사체를 촬영할 때, 같은 방향에서가 아니라 상하좌우로 위치와 각도를 다르게 하거나, 렌즈의 초점거리와 피사체와의 거리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빛의 상태나 전경과 배경과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겨서 보이는 것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성을 중시해서 사물을 응시하고 느끼는 경험을 거듭해서 쌓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 남들이 깜짝 놀랄 만한 감동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프로들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실패가 합리화되지도 허용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생각이 없다면 굳이 관광엽서에 나오는 사진이나 다른 사진가 흉내를 따라할 필요가 없겠지요. ‘새롭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그것과 같은 것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능동적으로 찾고 바라보는 일을 거듭하면, 그때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평범한 사물들이 어느 한순간 빛나 보이게 됩니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어느 위치와 각도에서 찍는 것이 좋을 것인지 광선 상태나 배경과의 관계는 어떤지 등을 5초 동안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눈에 띄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신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칭찬 듣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름답고 매력적인 풍경사진을 찍기 위한 요령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그런 것들에 관해서 쓰겠습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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