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토리가 많은 이유? 별들에게 물어봐… 경기도 양주 장흥숲길

    입력 : 2015.04.17 14:39:50

  • 권율장군 묘
    권율장군 묘
    옛날 어느 날 상수리, 갈참, 졸참, 신갈, 굴참, 떡갈 이렇게 도토리 6형제가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은 기필코 누가 형인지 가리겠다며 형제들이 모두 눈을 부릅떴다. 서로 자기가 형이 돼야 한다고 우기는 형제들이 한 명씩 그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상수리가 말했다. “내가 가장 덩치도 크고 힘도 세고 무엇보다 이름이 가장 길잖아. 내가 반드시 형이 돼야 한다고.” 그러자 굴참이 코웃음 치며 끼어들었다. “난 천연기념물로 보호 받기도 하고 나무껍질로 지붕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크진 않지만 도토리도 많이 열리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을 걸.” 이번엔 떡갈이 나섰다. “난 나뭇잎이 커서 사람들이 떡을 싸는 데 사용하고 있어. 비가 올 땐 머리에 쓰고 다니기도 해. 그러니 얼마나 쓸모 있는 나무야.” 그러자 신갈이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했다. “난 좀 작지만 추위도 안 타고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열매만 심어도 싹이 난다고. 이 숲을 지키는 데 잘 자라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갈참이는 자신의 외모를 강조했다. “난 키도 제일 크고 도토리도 실하다고. 가을이면 단풍이 얼마나 예쁜지 알기나 해? 당연히 잘생긴 내가 형이야.” 마지막으로 뒤에 처져 있던 졸참이가 거들었다. “난 솔직히 작고 볼품없어서 졸참이지만 가을 단풍은 갈참이 못지않아. 중요한 건 내 도토리로 만든 묵이 얼마나 맛난지 니들은 모를 걸.” 우열을 가리지 못한 도토리들은 서당에서 회초리 때리며 아이들을 가르친 싸리나무 아저씨를 찾아갔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싸리나무는 도토리 6형제에게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누가 형이 되고 동생이 되는 건 중요치 않단다.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상수리, 굴참, 떡갈, 신갈, 졸참, 갈참 모두 이 산에서 맡은 바 임무가 중해서 누가 형이고 아우인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구나.” 그제야 도토리들은 상대방의 시선에서 형제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곤 서로를 이해했다. 훗날 숲 속에서 가장 사이좋은 형제를 꼽으라면 누구랄 것 없이 땅에 떨어져 서로를 보듬고 있는 도토리 6형제를 가리켰다고 한다.

    서문이 길었다. 갑자기 웬 도토리 타령인가 싶겠지만 봄빛 완연한 4월의 장흥숲길에 때 아닌 도토리가 그득했다. 겨우내 낙엽에 가려져 얼고 녹길 반복하던 도토리형제들이 용케도 뽀얀 얼굴을 드러내며 계절을 거스르고 있었다. 덕분에 숲길을 따라 오르고 내리다 보면 앞니로 도토리 꽉 깨물어 포식하고 있는 다람쥐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산 일대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형제들 덕분에 바람마저 꿀맛이었다.

    러브호텔 대신 가족 관광지로 송추, 일영, 장흥으로 이어지는 장흥면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으로 1960년대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관광지였다. 서울에서 멀지 않아 한적한 쉼터이자 나들이 코스로 인기가 높았다. 오가는 이들이 많으니 자연스레 공원과 놀이동산, 맛집이 자리했고 꽃피는 4~5월, 특히 주말이면 거짓말 조금 보태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대중적인 인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족 대신 연인이 첫손 꼽는 관광지라 불리더니 1990년대에 유행처럼 러브호텔이 들어섰다. 계곡에 평상이 놓이며 술판이 이어졌고 러브호텔에 불륜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가족 단위 관광객이 뜸해졌다. 국민관광지의 불씨를 살린 건 주민과 예술인. 건전한 휴식처로의 변화에 시와 군도 함께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0여 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보일 무렵, 장흥 관광지를 빙 두른 주변 산길에 숲길이 조성됐다. 2012년 완성된 ‘장흥숲길’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1~2구간으로 조성된 숲길은 장흥면사무소에서 출발한다. 장흥 숲길 입구까지 1.5㎞의 ‘장흥숲길 접근로’가 평평하게 이어지는데, 박물관과 놀이공원이 자리해 산행에 놀이가 덤이다. 장흥 숲길 입구에 다다르면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한 길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부터가 숲길의 시작이다.

    송암 스페이스센터 천문대에서 바라본 장흥면 일대
    송암 스페이스센터 천문대에서 바라본 장흥면 일대
    길은 내는 게 반, 관리가 반 서울 구파발에서 차로 40여 분 남짓 걸리는 숲길 입구에는 아치형 문이 오롯이 놓여 있다. 20도 가까운 봄볕에 얼었던 땅이 녹아 간간이 푹신했다. 관광지를 관통하는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나란히 자리한 맛집과 갤러리를 내려다보며 걷는 길은 여느 둘레길에 비해 코스가 다채로웠다. 그만큼 오르막과 내리막이 잦았고 방향을 틀어나가는 길이 여럿이었다. 나무가 많아 경치 좋은 곳은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벤치와 평상이 마련돼 있고, 가파른 곳은 잡고 오를 수 있는 시설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정작 산행이 쉽지 않았다. 겨우내 길을 덮고 있던 낙엽 때문에 때때로 걷기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이정표만 보고 나선 길이 계곡으로 이어져 길 없는 산비탈을 돌아 나와야 했다. 길이 없으면 가지 말라 했던가…. 길은 내는 게 반이요, 제대로 된 관리가 반이다. 아무리 좋다고 소문났어도 막상 단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찾지 않는 게 21세기식 인지상정이다.

    다시 길로 돌아가 장흥조각아뜰리에를 거쳐 돌고개 유원지 입구로 나서니 이번엔 작은 내(川) 주변의 산책로로 이어졌다. 짧지만 산바람에 강바람까지 맞을 수 있는 흔치 않은 코스다. 너른 공간에 자리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명장인 권율 장군의 묘는 산행에 나선 이들에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이자 아이들에겐 역사공부를 겸할 수 있는 경기도의 기념물(제2호)이다. 묘를 거쳐 잘 정돈된 정원을 지나 이웃한 건물에 들어서면 서양화의 거장 장욱진(1917~1990) 화백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조성된 장욱진 미술관이다. 장 화백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화단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미술관 앞에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에 부르델과 아르망, 조지 시갈 등 고전과 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인근에는 천경자미술관, 이응로미술관, 문신전시관 등 국내 유수 작가들의 갤러리가 들어서 있다.

    미술관에서 청련사를 거쳐 숲길 입구로 돌아오는 길이 장흥숲길 1코스다. 6.3㎞의 산길을 걷는 데 평균 서너 시간 남짓 걸리는데, 가다 쉬다 보고 듣고 체험하길 반복하다 보면 4시간 반이 모자란다.

    송암천문대
    송암천문대
    낮에도 별 관측이 가능한 송암스페이스센터 장흥 숲길에서 지척에 자리한 계명산 형제봉을 바라보면 낮에도 별을 볼 수 있는 천문대가 우뚝 솟아 있다. 한일철강 창업주인 고 엄춘보 회장이 사재를 털어 조성한 우주테마파크 ‘송암스페이스센터’다. 성인 1인당 2만8000원인 스타이용권을 구입하면 천문대와 케이블카, 40분간 영상을 체험할 수 있는 플라네타리움을 이용할 수 있는데, 4~5시간 걸으며 땀 흘린 후 케이블카로 천문대에 오르면 한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가슴이 탁 트인다. 왼편에 북한산과 도봉산 정상이 우뚝 솟아 있고 날이 좋을 땐 여의도까지 확인할 수 있다.

    빛을 피해 도시와 먼 곳에 자리한 여타 천문대와 달리 이곳은 서울과 가장 가깝기로 소문난 곳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밤에는 한없이 고즈넉하고 북한산이 서울의 빛을 차단해 별 관측에 최적의 조건이다.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망원경이라는 ‘600㎜ 리치-크리티앙식 천체망원경’에 눈을 고정시키면 낮에도 목성이 또렷하다. 별 관측에 가장 좋은 시기가 궁금해 홍보담당자에게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4월 4일 오후 7시경에 개기월식이 있어요. 마침 토요일이라 낮에 장흥숲길 산행하고 저녁 무렵 저희 센터 카페에서 저녁 먹고, 천문대에 오르면 제대로 개기월식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이보다 좋은 주말산행코스가 또 있을까요?”

    구간별 코스 장흥숲길 접근로(1.5㎞) 장흥면사무소 ⇢ 장흥역 ⇢ 청암민속박물관 ⇢ 두리랜드 ⇢ 장흥 숲길 입구(염광요양원 입구)

    장흥숲길 1코스(6.3㎞) 장흥숲길 입구 ⇢ 장흥조각아뜰리에 ⇢ 돌고개 유원지 입구 ⇢ 권율장군 묘 ⇢ 청련사 ⇢ 장흥숲길입구 ⇢ 온릉 입구

    장흥숲길 2코스(6.1㎞) 현대랜드 ⇢ 대승사 ⇢ 밀과 보리 ⇢ 법화사 ⇢ 장흥자생수목원 ⇢ 돌고개 유원지 입구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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