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미국인은 왜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입력 : 2015.03.20 14: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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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커피는 아메리카노가 대세다. 그런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메리카노가 참 웃기는 커피다. 원칙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촌스런 커피라고도 할 수 있다.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이 바로 아메리카노다. 에스프레소가 너무나 써서 마시기 힘드니까 물을 부어 희석시켜 마셨던 커피다. 비유하자면 커피라고는 생전 마셔 보지 못했던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새로운 음료가 쓰기만 하고 맛은 없으니까 설탕 쏟아붓고 크림 퍼부어 걸쭉한 다방 커피를 만들어 마셨던 것과 비슷하다.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의 내력만 봐도 촌티가 물씬 풍긴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이 현지인들이 주로 마시는 진한 에스프레소가 부담스러워 뜨거운 물을 부어 연하게 희석시켜 마신 것에서 비롯됐다. 찬란했던 문화왕국 로마제국의 후손들 눈으로 봤을 때 커피 맛 하나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것으로 보였으니 멀리 아메리카 촌구석에서 온 것들이 마시는 커피라는 뜻에서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이 생겼다.

    어쨌든 연한 커피인 아메리카노가 요즘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데 사실 커피를 연하게 마시려면 여러 방법이 있다. 먼저 요즘 말하는 드립 커피를 마시는 것도 방법이다. 커피 원두를 갈아 뜨거운 물을 통과시키면서 커피를 추출하면 연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분쇄한 원두 입자가 굵을수록 커피는 연해진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물론 아메리카노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 희석시키면 끝이다. 에스프레소는 미세한 커피 분말에 수증기를 강한 압력으로 통과시켜 커피 원액을 추출한다. 이 때문에 드립 커피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아메리카노는 맛이 다르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깔끔한 맛과 깊은 맛의 차이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왜 이탈리아 사람들, 유럽인들과 달리 진한 에스프레소가 아닌 물을 타서 연하게 만든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것일까.

    경제 다툼으로 탄생한 아메리카노 이탈리아에 진군했던 미군들이 속된 말로 모두 촌놈들이어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실 줄 몰랐기 때문에 물을 타서 마신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메리카노로 대표되는 미국 커피가 유럽 커피에 비해 연하고 부드러워진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엉뚱하지만 기원이 미국의 보스턴 차(茶) 사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보스턴 차 사건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시켰다. 1773년 12월 16일,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주민들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선박을 습격해 배에 싣고 있던 차 상자를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다.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 정부가 동인도 회사에 차 무역의 독점권을 부여하면서 식민지 상인들의 차 무역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일어났다. 동인도 회사를 거치지 않고 식민지 상인이 직접 수입하는 차에 대해서 고율의 수입관세를 부과했던 것이 발단이 됐다.

    식민지의 지도계층이지만 고사 위기에 놓이게 된 식민지 차 수입 상인들이 반발을 했고 높은 관세로 인해 차 가격이 턱없이 비싸지자 최종 소비자들인 주민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갈등의 극단에서 폭발한 것이 보스턴 차 사건이지만 이후에도 영국에서 수입해 오는 홍차에 대한 불매운동이 지속됐다.

    당시 영국 수입차(茶)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일부 영국산 홍차를 구입해 마시는 사람들은 영국에 기대어 현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비애국자라며 협박을 당했을 정도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영국과 대립했던 미국 식민지 지도층의 지위와 경제적 기반을 위협하는 행위로 몰아세웠으니 홍차 한 잔 마시다가 거의 매국노 취급을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매일 홍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차를 끊기란 쉽지 않다. 홍차는 가격도 폭등한 데다 자칫 매도당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마실 수가 없었기에 다른 대체품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커피였다.

    영국산 홍차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미국에서 그 틈새를 파고 들어온 것이 네덜란드, 그리고 사사건건 영국과 대립하고 있던 프랑스의 커피였다. 특히 전통적인 무역 국가였던 네덜란드는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대량으로 재배했던 커피의 판로가 필요했다. 지금도 세계 제1위의 커피 생산국은 인도네시아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역사가 이어졌기 때문인데 자바 섬에서 대량으로 재배한 커피가 처음 네덜란드로 수출된 것이 1711년이다.

    이 때문에 약 50년이 지나 미국에서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을 무렵, 네덜란드는 유럽 최대의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프랑스 역시 카리브 해 연안의 식민지에서 재배한 커피를 판매할 활로가 필요했을 때다. 이 무렵 미국에서 영국산 홍차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으니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커피를 판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덕분에 값싼 커피가 미국 시장에 대량으로 흘러 들어왔다. 오늘날 미국이 커피 소비왕국이 된 멀고 먼 원인(遠因) 중 하나다. 미국인들이 영국처럼 홍차를 마시지 않고 주로 커피를 마시게 된 배경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미국인들은 도대체 왜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것일까.

    역시 발단은 홍차 때문이다. 미국에서 커피가 널리 보급된 계기는 홍차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다시 말해 커피는 홍차의 대체품으로 소비가 시작됐다. 그러니 커피를 마실 때도 최대한 홍차와 비슷하게 마시려고 했다. 커피를 묽게 타면 색깔도 진한 홍차와 비슷해질 뿐더러 커피를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와는 달리 차 맛에 조금 더 가깝게 마실 수 있다. 유럽과 달리 미국인들이 아메리카노처럼 연한 커피를 마시게 된 배경 중의 하나다.

    아메리카노는 머나먼 아메리카 시골구석에서 온 미군 병사의 촌스런 입맛에서 비롯된 커피가 아니라 영국과 미국,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각자의 이익을 놓고 다툰 경제전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카노에 담긴 뜻밖의 경제사다.

    정작 네덜란드 사람에겐 낯선 더치커피 아메리카노처럼 나라 이름이 붙은 커피가 또 하나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마시는 더치커피(Dutch Coffee)다.

    더치커피는 차갑게 마시지만 아이스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다. 커피에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마신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근본부터 차이가 있다. 아이스커피는 일반적으로 에스프레소가 바탕이다.

    물을 타면 아메리카노, 얼음을 섞으면 아이스커피,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반면 더치커피는 다른 커피와 달리 커피분말에 상온의 찬물을 통과시켜 만든다. 추출법이 다르니 맛에도 차이가 있고 성분 또한 같지 않다. 찬물로 추출하기에 카페인 함량과 산도가 낮다. 하루 정도 추출하기 때문에

    커피 원두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다는 사람도 있고, 숙성 정도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나온다는 주장도 한다. 단점도 있다. 오래 놔두면 맛이 변질되고 보관도 어렵다. 물론 혀의 감각이 특별히 발달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더치커피는 이렇게 일반적인 커피와는 다른 특별한 커피인데, 얼핏 들으면 네덜란드 사람들이 주로 마시는 커피라서 생긴 이름 같지만 정작 네덜란드 사람들은 더치커피라는 이름을 낯설어 한다. 상온에서 차가운 물로 추출한 커피가 왜 네덜란드식이냐고 되묻는다. 네덜란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커피 생산대국이었다. 커피 무역으로 돈은 벌었지만 온 국민이 일과처럼 마실 정도로 커피를 즐기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특별한 커피 추출법을 개발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네덜란드 상인들이 커피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더치커피가 개발됐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재배한 커피를 배에 싣고 유럽으로 가져왔다.

    이때 운송선 선원들이 찬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배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마다 수시로 물을 끓여 커피를 뽑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자바 섬의 원주민들이 커피를 담은 양동이에 찬물을 부어 우려내는 것처럼 커피를 추출한 것이 더치커피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스토리는 그럴듯하지만 네덜란드에는 더치커피가 없을 뿐더러 서양에는 더치커피라는 용어조차도 잘 쓰지 않는다. 그저 냉수 추출법(Cold Brewing)이라고 할 뿐이다.

    굳이 새로운 추출법을 개발한 나라를 강조할 때에는 더치커피가 아니라 교토커피라고 한다. 일본 교토에서 처음 유행했기 때문이다. 더치커피의 유래 역시 일본 커피업체들이 꾸며낸 스토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네덜란드 사람이 모르는 더치커피는 마케팅의 결과물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4호(2015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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