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점·패션 편집숍도 접수…대세가 된 남자의 공간 ‘바버숍’

    입력 : 2014.11.14 16: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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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한 평일 오후 한남동 유엔빌리지 인근. 검은색 세단 두 대가 주차장에 들어서고 멀끔한 클래식 슈트에 윙팁슈즈를 신은 40대 신사 두 명이 뒷자리에서 내린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이들이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바버숍. 편안한 의자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관련 의견을 주고받고 그동안 정갈하게 차려입은 바버(Barber)는 이들의 헤어스타일과 눈썹라인을 다듬는다. 두 신사의 손에는 미니바에서 만든 칵테일이 배달되고 구두는 슈샤이닝을 위해 전문가에게 배달된다. 40분가량에 걸쳐 대화를 나누며 커트와 면도를 마친 두 사람은 매장 안 편집매장에서 커프스 링크와 타이 등을 이것저것 살펴본 후 숍을 빠져나와 차에 오른다.

    최근 금녀의 공간이자 남자들의 전용 그루밍 공간인 바버숍(Barber Shop)이 30~50대 비즈니스맨들 사이에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2~3년 전부터 강남과 홍대를 중심으로 하나 둘씩 생겨난 바버숍은 피부관리와 스타일에 대해 높아진 남성들의 수요에 맞춰 트렌드로 떠오르며 현재 서울에서 핫하다는 거리마다 들어서 수십 곳이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남성 전용 그루밍숍을 표방하는 바버숍은 쉽게 말해 이발과 면도를 해주는 곳으로 기능면에서는 예전부터 친숙한 공간인 이발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동네 할아버지들을 단골손님으로 삼고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들이 눈물을 훔치던 허름한 이발소를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21세기 바버숍은 이국적이고 고풍스러운 클래식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고 거울 앞에는 붓, 솔, 면도칼, 그리고 일명 바리캉(클리퍼)등 고급 이발 용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경험이 많은 바버(Barber)는 2대 8가르마나 상고머리 대신 손님들의 두상·머리숱·손상 상태·체형 등에 알맞게 다양한 스타일을 제안한다. 남성들만을 위한 공간인 만큼 미용실에서는 꺼내놓기 힘든 탈모에 대한 상담과 전문적인 두피관리도 받을 수 있고 슈샤이닝을 제공하는 곳도 다수다.

    시가와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놓는 한편 맞춤정장, 커프스링크나 타이, 구두 등 패션아이템을 판매하는 편집숍을 구비한 바버숍은 그루밍족 사이에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바버숍의 유행은 국내만의 일은 아니다. 가까운 일본은 이러한 바버숍 콘셉트의 이발소가 몇 해 전부터 ‘맨즈 살롱(Men’s salon)’이라는 간판을 달고 들어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바버숍이 태어난 미국 역시 ‘Classic Barber Shop’이 인기를 끌며 이발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은퇴자들 사이에서는 이발사 면허를 따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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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망한 미용실·정체된 이발소 사이 틈새 공략 50대 초반 국내 금융사 임원 A씨는 헤어스타일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한평생 A씨는 머리카락이 덥수룩해지면 단골 사우나 이발소를 찾아왔다. 이전까지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이발소를 다녀온 다음날 출근길에 나서면 이곳저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최근 머리숱이 부쩍 줄어 일평생 해온 머리스타일이 어울리지 않게 되면서부터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자신의 별명이 ‘2대 8 가발부장’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이후 용기를 내 미용실을 찾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앉아 있는 분위기에 기가 죽었다. 원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묻는 헤어 스타일리스트에 질문에 당황하며 A는 격양된 목소리로 “그냥 조금 다듬어 주세요”라고 소리를 쳐버렸다.

    최근 들어 바버숍이 대세로 떠오르는 이유는 스타일에 부쩍 관심이 높아진 40~50대 꽃중년들의 힘이 크다. 사실 중년 남성들에게 전문적인 헤어스타일 관리를 받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약 2년 전 선도적으로 압구정동에 바버숍 ‘블레스(Bless)’를 차린 예원상 원장은 “각 호텔을 중심으로 명성을 떨쳤던 이발소는 최신 기술을 익히는 것을 등한시해 트렌디한 스타일을 원하는 남성들의 욕구를 채우지 못했고 여성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미용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특히 자신을 꾸미는 데 익숙한 중년 남성들이 바버숍으로 발걸음을 옮겨와 현재 블레스의 경우 고객 전체에서 40~50대 남성들의 비율이 60~70%에 이른다”고 밝혔다.

    바버숍의 성행은 클래식 스타일의 유행과도 무관치 않다. 올해 국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남성 헤어스타일은 옆머리를 짧게 정리하고 윗머리와 앞머리를 길게 남기고 반듯하게 뒤로 넘긴 투블록 컷이다. 스타일링을 위해 강도가 높은 포마드(Pomade) 기름을 사용하는 탓에 포마드 스타일로 더 알려져 있다. 이러한 스타일은 사실 20세기 초반부터 유럽과 미국의 바버숍을 통해 유행했던 스타일이다. 국내 오픈한 바버숍들은 당시의 콘셉트와 인테리어를 들여와 스토리를 만들어 마케팅에 활용하는 한편 ‘포마드 전문’이라는 수식어를 달기 시작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왼쪽)올해 6월 롯데백화점 미아점에 문을 연 바버숍(오른쪽)도루코 리빙이 리뉴얼한 바버숍 콘셉트 홈페이지
    (왼쪽)올해 6월 롯데백화점 미아점에 문을 연 바버숍(오른쪽)도루코 리빙이 리뉴얼한 바버숍 콘셉트 홈페이지
    백화점·편집숍 입성·기업들도 호시탐탐 바버숍의 유행과 함께 일각에서는 마케팅에 치우친 사치스러운 사교공간이라는 비판도 생기기 시작했다. 바버숍의 서비스 비용은 디자이너와 커트, 스타일링, 면도 등 코스에 따라 3만대부터 시작해 10만원이 넘어서기도 한다. 동네 이발소나 남성전용 저가 미용실 가격 대비 최소 4~10배가 넘는 셈이다. 그러나 강남 일대 미용실 비용과 비교하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인테리어와 이미지를 무작정 사치스러운 공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한편 바버숍이 트렌드로 떠오르자 이를 활용한 마케팅도 치열해지고 있다. 남성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유통기업이나 뷰티 관련업체들이 바버숍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태진인터내셔날이 소유한 패션브랜드 루이까또즈가 운영하는 신사동 가로수길 편집숍 루이스클럽(LOUIS CLUB)은 매장 내 바버숍을 설치해 ‘남심(男心)’ 공략에 나섰다.

    의류 및 패션소품 외에 스킨케어와 헤어 스타일링 제품을 판매하는 이 매장은 바버숍과 바를 입점시켜 쇼핑 외에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해마다 남성상품 관련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백화점도 바버숍 마케팅에 가세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6월 서울 미아점에 백화점 최초로 남성 전용 바버숍 ‘보그옴므헤어’를 열었다. 백화점을 찾는 남성들이 점차 증가하자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방책으로 바버숍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오픈한 지 3개월이 막 지났는데 현재 미아점 바버숍에 등록된 회원수가 800여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수요를 확인한 몇몇 뷰티기업들은 단발성 바버숍 체험행사에 나서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은 면도기 제조업체 도루코리빙이다. 도루코리빙은 신제품 출시를 기념해 바버숍 콘셉트의 캠페인 사이트를 여는 한편 대학가나 남성 밀집지역을 돌며 체험행사를 열기도 했다.

    한 뷰티업계 관계자는 “뷰티와 스타일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늘어나며 한동안 바버숍의 유행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하며 “몇몇 업체들은 고급 바버숍 프렌차이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Hot 바버숍 베스트 3 강남 신사동 블레스 (02)517-3988 용산 한남동 헤아 (02)511-9464

    홍대 낫띵 엔 낫띵 070-4067-2882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0호(201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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