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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박사 김형광 대산농원 대표 | 강남호텔CEO 생활접고 안동으로…17년 전 심은 호두나무로 3대가 삶에 여유
입력 : 2014.09.22 17: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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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길안면 대사리의 아무것도 없던 야산을 일구고 길을 만들어 농장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놀랍게도 한 사람의 힘이었다. 17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김형광 대산농원 대표(70) 는 멧돼지가 우글거리는 80만㎡의 야산을 17억원에 구입했다. 이후 김 대표는 등산로도 없어 걸어 오르기도 힘든 야산을 아래서부터 길을 내가며 차근차근 나무를 심어 갔다. 바닥이 경사진 곳은 계단식으로 개간해 나갔다.
“산짐승은 수도 없이 만났죠. 지금도 가끔 거름 주러 올라가면 멧돼지를 만나는데 사람을 무서워하는지 보고 도망가 버리더군요.”
올라와 보는 사람마다 한 사람이 일구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엄청난 규모에 혀를 내두르고 엄지손가락을 내밀곤 한다. 오랜 기간 묵묵히 준비해온 김 대표는 값진 열매를 거두고 있다. 대산농원에서 경작하고 있는 호두가 일반 호두보다 1.7배 크고 껍질이 얇으며 알이 꽉 차고 고소한 맛이 뛰어나다. 1㎏에 가격이 5만원을 호가하지만 수량이 부족해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다.
“저희가 개발한 개량 품종은 7년 정도 꾸준히 자라서 이후부터 의미 있는 수확이 가능해요. 지난해 10억원 좀 넘게 매출을 올렸는데 3년 안에 30억원의 매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호두나무 수명이 최대 120년 정도인데 계속 수확량이 늘어나거든요.”
강남 호텔CEO 호두 농사 짓게 된 사연 거대한 농장 규모를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 대표를 타고난 농사꾼이라고 추측할 만하다. 그러나 이곳에 터를 잡기 전까지 그는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부친이 농부라는 사실 외에는 오히려 ‘서울깍쟁이(?)’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는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한 후 공군 소령을 지냈다. 예편한 이후에는 호텔업에 종사하며 약 10년 동안 강남의 대형 호텔 CEO로 재직하기도 했다.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던 그가 돌연 호두농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부친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었다.
“아버님이 6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연구 활동을 하셨는데 각고의 노력 끝에 호두 접목에 성공하셨어요. 재래 품종에 비해 생육 조건도 좋고 호두의 질도 뛰어난데 물려받을 사람이 필요하신 거였죠. 하루는 저를 불러서 진지하게 호두 농사를 시작해 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마음을 먹고 시작하게 된 겁니다.”
김 대표는 부친의 부탁도 있었으나 그 자신도 호두의 수익성이 보였다고 했다. 호두가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수확 기간까지 공백이 있어 좀처럼 뛰어드는 사람이 없다는 희소성도 있었다. 무엇보다 품종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마음먹은 순간부터 14개월 동안 전국을 돌면서 호두 농사 후보지를 물색했다. 맘에 드는 임야를 발견하면 토양 일부를 추출해 호두 재배에 적절한지 전문기관에 감정을 의뢰했다. 암반이 주를 이룬 산인지 살피고 나무가 비바람에 쓸려 내려가지 않을지 파악하기 위해 흙의 깊이도 쟀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넓은 면적과 청정 지역, 고지대였다. 결국 지금의 부지를 낙점해 대출을 받아 땅을 매입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부터 산중턱에 나무집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십년 넘게 라면만 먹으면서 농장 조성하는 데 매달렸어요. 다들 미쳤다고 했죠. 특히 아내는 분당 본가에서 내려오면 묘목을 발로 걷어차면서 그만하고 올라가자, 안 그러면 이혼하겠다고까지 하더라고요. 지금도 그러냐고요? 천만에요 대우가 180도 달라졌죠.(웃음)”
김 대표는 은퇴 후 호두농사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농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예찬론을 펼쳤다. 그러나 그의 농장 위치를 본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할 수는 없다. 아무리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편안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하루아침에 농사꾼으로 변해 야산을 개간하고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한번 심어본 사람은 호두나무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요.(웃음) 막상 뛰어들면 정말 손이 안 가는 것이 호두농사거든요. 그러면서 매출은 뛰어나죠. 벼농사의 10배, 사과농장의 7배쯤 수익률이 나오거든요. 2000평 정도의 임야에 500그루 정도 심어 놓으면 1년에 1억원 이상의 수입이 꾸준히 발생하게 됩니다. 수확하기까지 시간만 견디면 이만한 투자가 없는 셈이죠.”
자타공인 호두박사로 정평이 나 있는 김 대표는 17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호두에 치명적인 박쥐나방을 퇴치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기도 했다. 입소문이 나자 박쥐나방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던 전국의 농부들이 대산농원을 찾고 있다.
김 대표는 묘목을 심은 후 6~7년간의 수확기까지의 공백을 극복할 복안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임야에 호두나무 외에 다른 식물을 함께 기르고 동물을 방목해 시너지를 내는 복합농업 모델을 통해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호두 경작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귀농하신 분들 중 상당수가 수확기까지의 공백을 부담스러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복합영농입니다. 호두나무 그늘에 고사리가 잘 자라고 젖소를 풀어놔도 향 때문에 전혀 뜯어먹지 않거든요. 고사리가 죽어도 호두나무의 좋은 거름이 되고요. 호두 수확기까지 고사리 농사와 젖소를 통해 수익을 내는 거죠.”
직접 농사 힘든 은퇴자들 위해 농장 분양 시작 농장이 자리를 잡아가자 그는 새로운 입지를 찾아 나섰다. 2년 전 다시 전국을 수소문해서 입지가 적당한 부지를 물색해 땅을 사들였다. 특히 그는 이곳을 호두 특성화 마을로 육성하는 계획도 세웠다.
“국내 호두가 사실 많이 줄어들고 있어요. 농사짓는 사람도 줄고 재래 품종이 박쥐나방이라고 하는 천적에 많이 괴사한 상태거든요. 봉화 일대에 거대 농장으로 만들어 국내산 호두가 사라지지 않도록 저변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그는 봉화마을에 조성한 농장 절반을 은퇴자들을 위해 분양하고 있다. 농장의 일정 부지를 매매하고 농사는 김 대표가 맡는 방식이다. 수확 시기가 되면 김 대표가 수매와 유통도 돕는다.
“대외적으로 많이 알리지 않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거의 분양이 완료됐어요. 주로 대기업 임원 분들이 노후 대비를 위해서 많이 받아 가셨어요. 저한데 우스갯소리로 ‘우리 손자들까지 먹고살 수 있는 거죠’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웃음)”
김 대표는 최근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의 묘목 구입 문의가 늘고 있어 노후 대비에 적합한 호두 재배 성공 노하우를 전파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저희 셋째 아들이 사업에 뛰어들어 호두초콜릿 공장을 만들었는데 지역 백화점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생산량이 모두 소진되는 상태라 초콜릿 만들 물량이 거의 없는 상태지만 향후 수확량이 늘어나고 분양된 농장의 물량을 수매하는 용도로도 활용할 예정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호두가 안동을 대표하는 농산물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 아닐까요?”
20~30년은 더 호두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겠냐고 호탕하게 웃는 김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은퇴 후의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소감을 물었더니 핀잔 섞인 답이 돌아왔다.
“저는 은퇴한 적 없어요. 죽기 직전까지 현역 농사꾼입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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