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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코스피 3000까지 가는 길, 세 가지나 있지요
입력 : 2014.05.16 09: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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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째 업계 1위를 하고 있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게 아니고 수익원이 되는 업무 포트폴리오 전반의 실력을 고르게 키웠다. 다른 회사들은 부문별로 실력 차이가 크지만 우리는 모든 분야가 발전했다. 대부분 부문이 1~2등이고 적어도 3등을 벗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간다. 비즈니스 부문 간 시너지가 나기 때문에 불황에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이 굳어졌다.”
유 사장은 이런 회사가 대한민국에 한국투자증권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3년 연속 순이익 1위다. 브로커리지 업무는 오프라인 1위고, 펀드판매는 2~3등을 하고 있으며, 자산관리와 프로젝트 파이낸싱도 1위, 파생상품도 1~2위를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돈 되는 분야, 핵심 분야는 모두 1~2위를 하고 있다.”
부동의 1위 비결은 고객 신뢰 그는 비결을 고객들의 신뢰를 얻은 것과 비빌 언덕이 없었던 데서 찾았다. 먼저 펀드 판매 때 철저히 실적 좋은 펀드만 추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객에게 기쁨을 주는 경영’을 첫 번째 경영이념으로 내세운 것 그대로라는 것이다.
“계열사 펀드라고 무조건 추천하지는 않는다. 철저히 고객 위주로 추천한다. 고객에게 지금 순간 좋은 펀드다. 밸류자산운용 펀드가 많이 팔렸는데 결과적으로 좋아 다행이다.”
실제 최근 한국투자증권 홈페이지를 보니 추천펀드 첫 화면엔 밸류자산운용 펀드와 경쟁회사 상품들이 주로 올라오고 계열 한국투신운용 상품은 보이지 않았다.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펀드를 추천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얘기다.
유 사장은 도와줄 계열사가 없기에 스스로 살아야 했고 덕분에 조직원 개개인의 근성과 역량이 뛰어난 회사가 됐다며, 특히 인력구조가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직이 효율적이다. 적은 자원, 다시 말해 적은 인원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유휴인력이 거의 없다. 인적생산성이 제일 높다.”
지금 한국투자증권은 옛 동원증권이 한국투신을 인수한 뒤 합병한 회사다. 그런데도 인원이 적다는 데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옛날 3투신이 어려움을 겪어 규모가 확 줄었을 때 인수했다. 다른 대형사들이 큰 조직을 유지하고 있을 때라서 한투와 동원을 합해도 인력이 대형사보다는 적었다. 게다가 우리는 시장이 좋을 때도 막 뽑지 않았다. 증권업은 시황산업이다. 구조적으로 시장 사이즈가 바뀌지 않았으니 시장이 좋다고 점포나 인원을 늘리지 않았다. 지금은 합병 당시보다도 오히려 점포나 인원이 줄었다. 이웃한 점포를 합하면서 줄인 게 30여 개나 됐다. 시장이 좋을 때는 인력을 뽑기보다는 보상을 더해주는 쪽으로 갔다.”
그 대신 매년 일정 수준의 인력을 꾸준히 뽑아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으로 갔다.
“지난해도 공채 70명과 상반기 업무직을 포함해 100명 정도를 뽑았다. 평균 매년 100명 정도를 채용해왔다. 올해는 상반기 업무직 직원만 뽑았고 하반기 공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업계 전체가 구조조정을 하는 마당이라 지난해보다는 적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공채는 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경쟁사들이 연달아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리서치 조직까지 축소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리서치 부문의 구조조정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애널리스트 인력도 적은 편이라서 더 줄일 생각은 없다. 다만 시장에서 몸값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증권업계가 전체 상장 종목의 10%정도만을 분석하고 있고 나머지 90%정도의 종목을 방치하는 데 대해 유 사장은 비용문제를 제기했다.
“리서치를 더 하고 싶어도 고객들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기관이 주 수혜자인데 수수료를 내지 않으니 비용을 적게 지불할 수밖에 없지 않나.”
대신 시가총액 기준으로 90%를 커버하고 중소형주는 스몰캡팀에서 그때그때 발췌해 다루는 방식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증권사를 인수한 지 3년이 됐는데 올해부터 실질적인 흑자를 내게 될 것 같다. 지난해 지분율을 92.3%로 높여 이제는 실질적 자회사가 됐다. 막 도약을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증권사의 해외진출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보다는 금융업계에선 은행의 해외진출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은행이 나가면 NIM(순이자마진)이 5~6%는 된다. 어느 나라건 자본주의를 시작할 때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자율이 높다. 은행은 나가서 차리면 돈이 된다. 현지은행 사서 우리의 크레딧 가지고 우리 시스템을 접목하면 된다. 한국에선 NIM이 2%도 안되지 않나. 그러나 증권사는 시장이 커지기 전엔 먹을 게 없다. 증권은 선진국에서 할 것과 후진국에서 할 것이 명확히 구분된다. 선진국에서 할 것으론 한국 주식과 채권 파는 것 밖에 없다. 후진국에선 다 할 수 있으나 시장이 적은 만큼 운용을 먼저 하다가 나중에 상품을 판매하는 증권사가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수성장 따라가야 수혜 볼 것 그는 중국경제에 대해선 당분간 구조조정이 이어지기 때문에 저조한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한국기업들은 경기와 상관없이 이런 구조적 변화에 부합되기만 하면 나름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중국 경제는 우리 경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데 대중국 무역흑자 규모는 우리나라 전체 무역흑자보다 훨씬 크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중국 성장이 저조한 것은 악재이지만 중국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부합하면 된다. 중국이 중간재를 가공해서 팔았기 때문에 그 동안 화학이나 철강 전자업종이 혜택을 보았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무역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중간재 구매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런 만큼 중국 내수성장의 수혜를 입는 쪽으로 가야 성장이 가능하다.”
다만 한국과 중국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그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빈부격차가 매우 크다. 상류층은 세계적 명품을 사고 하층민들은 한국 제품을 (비싸서) 사기가 어렵다. 우리가 이 구조에 어떻게 맞춰갈 것인지가 과제다.”
유 사장은 주가에 대해선 다소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테이퍼링이 진행되고 있어 선진국 경제가 좋아져도 중국의 수출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 경기회복의 수혜를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중국 구조조정에 제대로 대응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한국경제는 박스권에서 머물 것으로 본다. 게다가 통일이 바로 될 것도 아니고, 창조경제도 빠르게 결실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주가를 어둡게 본다.”
“단순히 숫자보다는 벽을 깨야 한다. 1989년에 코스피가 1000을 깨고 2000까지 가는 데 17년이 걸렸다. 1000을 깬 뒤에도 한 동안 500에서 1000 사이에서 놀았는데 생각해보니 기업지배구조가 문제였다. 기업들이 역량을 부실기업에 투자하다보니 주가가 오를 리 만무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로 코퍼레이트 거버넌스 문제가 해소되면서 2000까지 갔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코스피가 2000까지 가는데 주역은 삼성전자와 현대차였다. 그게 지수가 2000에서 7~8년 동안 머물고 있는 까닭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비중이 18%나 되는데 이 정도로 한 나라 증시에서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종목은 삼성전자와 이스라엘의 테바(18%내외) 뿐이라고 했다. 애플이 잘 나갈 때도 12%에 그쳤고 지금은 10% 선이라는 것.
“그 벽을 넘어서려면 소수 기업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경제의 틀을 바꿔야 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나와야 한다. IT, BT 벤처가 계속 나오고 기존 산업을 재정의해 새롭게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내수산업인 의료산업을 수출산업화하고 금융산업을 수출산업화하며, 카지노를 비롯한 관광업을 수출산업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창조경제다. 그러려면 규제개혁을 해야 한다.”
그는 두 번째 방안으로 통일을 제시했다.
“이벤트성으로 통일도 필요하다. 우리만 갖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해소돼도 PER가 15배까지 될 수 있다. 그러면 지수는 쉽게 3000까지 간다. 독일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에 통일을 했다. 독일 경제는 통일 직후 고도성장을 하다가 이후 주춤했으나 5년 뒤부터 다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독일 DAX지수는 1989년부터 작년까지 5.3배가 늘어났는데 우리 코스피는 같은 기간 동안 2배로 오르는 데 그쳤다.”
세 번째 방안으로는 기업들이 밸류에이션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배당수익률을 높이고 자사주 매입을 하는 등으로 총주주환원율을 높여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증권업계도 변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투자업계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은 것은 단품판매 위주로 갔기 때문이다. 주식 위탁매매는 회전율을 높여야 인센티브가 늘어나고, MMF보다 주식형 펀드에 인센티브를 더 주니 주가가 빠질 때도 주식형 펀드를 팔려고 한다. 고객과 금융투자업계 간 이해상충이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고객의 NAV(순자산가치)를 기반으로 수수료를 산정하는 개념으로 가야 한다. 그런 상품을 도입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우선 금융위가 약관을 개정해야 하지만 그 전에 업계 스스로 상품공급 능력과 자산배분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고객의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얘기다.
‘전설의 제임스’ 유상호 사장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명강사로 거의 월평균 1회씩은 대학 또는 대학원(MBA)으로 강의를 나간다. 유 사장 스스로도 대학생들을 위한 강의만큼은 다른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나가려는 열의를 갖고 있다. 학생들을 제대로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한때 국내 증권업계 최연소 CEO였고 이제는 최장수 CEO 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임원의 능력으로 소통과 리더십을 꼽았다.
“임원은 자기 혼자서 잘해선 안 된다. 솔선수범하면서 동시에 소통능력도 갖춰야 한다. 고객과 소통하고, 직원과 소통하고, 주주와 소통하고, 모두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의 업무능력은 기본이라고 했다.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면 본인 스스로 좋은 실적을 내 조직원의 공감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우증권 시절 런던 법인장으로 보낸 7년을 인생의 황금기로 회상했다.
“나는 세계에서 1등을 했다. 가장 활력이 넘칠 때였다.”
1등이 되기 위해 그는 현지에서 ‘제임스’라는 이름을 썼다.
“미국서 공부할 땐 한국 이름을 그대로 썼다. 그런데 런던에서 근무하다보니 한국 이름 부르기가 어려워 장사하려고 부르기 편하고 영국인들에게 친숙한 제임스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현지인에게 다가서서 신뢰를 쌓았고 나중엔 한국 하루 거래량의 5%나 되는 약정을 혼자 달성해 ‘전설의 제임스’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직장에선 올해의 증권인상을 수없이 받은 뛰어난 CEO지만 집안에선 요리하는 친근한 가장이다.
“요리는 미국 유학 시절 처음 시작했다. 런던에 있을 땐 주말마다 집에서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바쁜 일정 때문에 은퇴 후 다시 배우려고 하다가 더 이상 늦춰선 안 될 것 같아 재작년부터 다시 하고 있다.”
특기는 이태리 요리다.
유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오하이오주립대 석사를 마쳤으며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장, 메리츠증권 상무를 거쳐 한국투자증권 사장에 올랐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4호(2014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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