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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경 모나미 대표이사 | 모나미 50년, 신발끈 다시 조이고 뜁니다
입력 : 2014.03.10 14: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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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홍보도 없었다. 광고는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부터 X, Y세대, 21세기에 태어난 Z세대까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보탰다. 덕분에 모나미는 다시금 신발 끈을 조이고 있다. 지난해 HP(한국휴렛팩커드)와의 총판 계약 해지로 감소된 매출을 다양한 문구 사업으로 만회하겠다는 계획이다.
송하경 모나미 대표는 “다른 분야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 하겠다”며 “앞으로 50년을 위해 새로운 제품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고 각오를 전했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광고효과만 100억원 최근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새해 들어 기분 좋은 일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모나미 153’볼펜이 50주년을 맞았어요. 사실 문구업계에서 모나미가 가장 오래된 회사는 아닙니다. 문화연필, 동아연필, 빠이롯트 등이 더 오래됐죠. 아마도 한국 최초의 볼펜이란 상징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153볼펜은 50년 동안 단 한 번도 디자인이 바뀌지 않았는데, 그래서 세대를 아우르는 향수가 있나 봅니다.
그 당시 디자이너가 있었습니까. 1963년에 탄생했으니 제가 4살 때네요. 그 때 디자인이란 개념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 전에는 펜촉에 잉크를 찍어 썼는데, 은행에서도 통장에 잉크를 엎기라도 하면 난리가 났었어요. 갖고 있는 물자나 자원이 없으니 공장에 계신 분들이 최대한 원가를 절감하려고 아끼고 또 아껴서 만든 것이죠. 굴러 떨어지지 않는 육각형에 캡을 씌우고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똑딱이를 붙였습니다. 부품이 단 4개 밖에 안되는데 굉장히 유명한 외국 디자이너가 불필요한 부분이 전혀 없는 친환경적인 디자인이라고 호평을 했더군요. 지금껏 품질은 개선해 나갔지만 디자인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153볼펜은 대한민국의 성장기를 고스란히 함께한 제품입니다. 그래서 고객들이 가족 같은 친근감을 갖고 계세요. 저희도 제품을 개발할 때 국민정서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격을 책정할 때도 정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일례로 153볼펜이 처음 나왔을 때 15원이었습니다. 그땐 라면 값, 버스비, 신문 값이 모두 15원이었거든요. 지금은 대부분 1000원에 육박하고 있는데 153볼펜은 300원입니다. 오르긴 했어도 다른 제품이나 요금에 비하면 낮은 책정이죠. 대신 대량생산이나 자동화 시스템으로 비용을 맞추고 있습니다.
은색메탈소재와 금속볼펜심을 더한 ‘모나미153 리미티드1.0 블랙’
사실 무형의 광고효과가 엄청났는데요. 그렇죠. 저희 나름대로는 100억 이상 광고효과를 올렸다고 파악하고 있어요. 언론의 기사가 참 고마웠습니다.
지난 2010년 모나미도 창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한데요. 우선 새롭게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익숙한 자판세대예요. 펜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매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펜과 마커를 예로 들면 마커는 여전한데 펜은 매출이 줄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펜을 포기할 순 없는 것 아닙니까.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자고 했지요. 앞으로의 50년을 고민하다 ‘터치 오브 휴머니티(Touch of Humanity)’를 제안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 후 혼인신고서나 출생신고서, 첫 집의 계약서에 사인할 때 인간적인 감성, 터치가 있어야겠죠. 자신의 개성이 담긴 펜은 어떨까요. 앞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펜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제품에 스토리를 담겠다? 비즈니스 미팅에 나서면 명함을 교환하는데 그때마다 제 명함을 본 상대방이 모나미에 얽힌 개인사를 말하곤 합니다. 어떤 분은 153볼펜으로 대학에 갔고 판사가 됐고 경영자가 됐다고 해요. 흔히 명품 브랜드는 스토리에서 시작된다고 하는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미티드 에디션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는데, 앞으로 중요한 시기마다 기억할 수 있는 에디션을 선보이려고요. 가격대가 3000원, 5000원인 프리미엄 제품도 계획 중입니다. 또 하나, 아직은 기획 중인데, ‘한국을 빛낸 153명’을 콘셉트로 리미티드 에디션을 제작해 매년 선정된 분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모나미에 대한 관심이 늘었지만 사실 153볼펜 외에 다른 제품은 잘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펜이라는 제품이 사실 굉장히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쓰는 것 외에 응용할 분야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저희가 개발한 제품도 많지만 소비자의 니즈와 요구로 개발한 제품도 꽤 있습니다. 볼펜이 잘 나갈 때야 한 가지 모델을 몇 백만 자루씩 만들었지만 다품종 소량으로 생산방식이 바뀌면서 소비자의 니즈와 요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그렇게 탄생한 제품 중 하나가 ‘스킬라이트’인데, 자동차 도색 전 마지막으로 불량을 검사하는 펜입니다. 물로 씻으면 감쪽같이 없어지는 제품인데 현대자동차와 협력해 만들었습니다. 인형 눈을 칠하는 펜도 있는데, 제주도에서 테디베어를 생산하는 선배가 알맞은 펜을 구하더라고요. 그래서 요구에 맞게 만들었더니 인건비가 굉장히 줄었다더군요. 이렇게 모나미의 기술력과 소비자의 니즈가 어우러져 제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국어사전에 오른 모나미 제품도 있네요. 매직아시죠. 그건 저희가 붙인 제품명인데 표준어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네임펜이나 플러스펜도 마찬가지죠.(웃음)
영유아용 제품도 무시할 수 없는 분야인데요. 물론이죠. 최근에 천연소재를 사용한 어린이 회화구류와 아트북 세트를 선보였는데, 형식적인 수업보다 제대로 된 교재를 만드는 게 어떨까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그려야 색이 좋고 미적 감각을 높일 수 있는지, 예전에 3000~4000원 하던 크레파스가 아니라 1만~3만원짜리 제품을 만들어서 그 안에 아트북을 같이 넣었어요. 새로운 시도라 영업팀에서 난감해 했는데, 첫 주문량이 영업팀이 내세운 1년 치 목표를 초과했습니다. 앞으로는 현대미술 100선 등 라이선스를 얻어서 밑그림용 아트북에 아이들 나름대로 색을 넣어보는, 그래서 원본과 비교도 하고 왜 그 색을 썼는지 토론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려고 합니다.
100년 기업의 첫 목표는 해외시장 공략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겁니까. IBM이 그렇지 않습니까. 처음엔 컴퓨터를 만들다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컨설팅회사가 됐어요. 소비자의 니즈에 맞게 다가선 건데, 모나미도 한쪽은 교육이나 인간적인 면, 다른 한쪽은 생활적인 면을 개발해 나가려 합니다.
문구회사란 관념이 희미해지는 건가요. 음… 닌텐도라는 회사가 처음엔 화투를 만들었어요. 그들은 화투를 노름이 아니라 레저나 놀이문화로 접근하고 변화해 갔습니다. 일본철도회사인 JR도 이젠 여행업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했고요. 모나미는 문구회사지만 사람들이 문구로 어떤 일을 하는 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좀 더 범위를 넓히려는 것인데, 다른 분야를 침범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 파이를 키우자는 것이죠. 그 일환으로 직접 펜으로 한 자 한 자 기록하는 글짓기 대회를 준비 중입니다.
인터뷰 후 사옥 옥상에 차려진 견사에서 애견과 함께한 송하경 대표. 총 8마리의 개들이 있었는데, 호랑이 같은 위용이 대단했다.
부진한 실적의 돌파구를 해외시장에서 찾는 겁니까. 제품의 질을 일본이나 독일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유지해야겠죠. 물론 독자적인 기술을 갖춰야 같은 제품이라도 넘버 투가 되지 않습니다. 50년 동안 개발한 기술 중 보드마커에 생잉크를 쓰면서 두세 배 오래가고 가격도 높지 않은 제품이 있어요. 또 하나가 페인트마커인데, 기존 제품은 안에 든 쇠를 흔들고 꾹꾹 눌러 써야하는데 우린 쇠가 들어있지 않아 가볍고 눌러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한 기술력을 앞세워 공략해야죠. 보드마커의 경우는 이미 국내 학원가의 5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핵심역량이 흔들린다면 모나미도 여유롭진 않을 텐데요. 모나미는 20년 전에 태국에 진출을 했습니다. 그곳에 공장이 있는데 안정적이에요. 인건비도 중국보다 태국이 훨씬 싸죠. 태국에 진출하게 된 건 그 당시 현지에서 모나미 볼펜의 인기가 꽤 높았어요. 독일 제품은 1㎜ 볼을 쓰는데 153볼펜은 0.7㎜거든요. 0.5㎜까지 만들었습니다. 외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펜인데, 태국어가 두꺼운 볼로 쓰긴 굉장히 어려워요. 덕분에 0.5㎜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렇게 진출해서 공장을 차리고 국내 공급분은 국내 공장에서, 수출용 제품은 태국에서 만들고 있죠. 회사 매출의 30%를 수출하고 있는데 올해부터 수출을 늘릴 계획입니다.
2세 경영인으로서 3~4세 경영에 대한 견해는 어떻습니까. 모나미가 50년간 버텨온 건 노동집약적이고 부가가치가 크지 않은 시장 사이즈 덕이 컸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았거든요. 이 분야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한 걸음씩 나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요. 다른 분야에 눈 돌릴 생각은 없습니다.
한동안 애견인으로 유명했습니다. 여전하신가요. 동물을 좋아해서 개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한 가지에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개 훈련도 시키고 외국의 세미나, 대회에도 나갔지요.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외국에서 직접 좋은 개들을 들여와 새끼를 낳다보니 지금은 한 50마리가 됐습니다. 사옥 옥상과 일죽 물류창고에 견사가 있고 집에는 15살 된 푸들이 한 마리 있어요. 아, 한 2년 전부터는 승마에 빠졌는데 덕분에 말도 2마리 키우고 있습니다.(웃음).
창업주 송삼석 회장과 모나미153 볼펜 1928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난 송삼석 모나미 창업주는 올해 여든여섯이다. 모나미 관계자는 “지금도 가끔 회사에 들르신다”며 “여전히 건강하시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당시 서울대 상학과를 졸업한 송 회장은 1960년 회화구류를 생산하는 광신화학공업을 창립했다. 일본에서 문구류를 수입해 판매하던 광신화공이 자체 생산기술로 첫 생산한 게 ‘모나미물감’이었다. 이후 ‘왕자파스’가 나오며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다. 1962년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국제산업박람회에 수입원이던 우치다요코 측과 공동으로 참가한 송 회장은 일본에서 파견 나온 직원의 필기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잉크도 찍지 않고 술술 써내려가다니. 이후 송 회장은 일본 직원의 도움으로 우치다요코사 사장을 만났고, 그 사장의 도움으로 일본 볼펜 시장의 90%를 점유하던 오토볼펜의 문을 두드렸다. 오토볼펜에서 유성잉크제조기술을 습득한 송 회장은 1963년 5월 1일 국내 최초 볼펜인 ‘모나미 153’을 탄생시킨다. 모나미 153 볼펜은 이후 50년 동안 국내외 통틀어 약 36억 자루가 팔려나갔다.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 12바퀴나 돌 수 있는 양이다. 지금도 매월 300만 자루 이상 팔리고 있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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