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종열 기자의 혼맥지도](22) 한화그룹 | 불꽃 같은 카리스마 천안의 최고명문

    입력 : 2014.03.10 14: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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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의 패기에 찬 젊은이가 이제는 백전노장이 됐다.” 재계 서열 9위(자산기준, 공기업 제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한 평가다.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가 된 그가 이제는 재계를 대표하는 노련한 CEO가 됐다는 설명이다.

    당시 재계에서는 김 회장에 대해 염려하는 모습이 많았다. 패기에 찬 젊은 CEO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로 인해 한화그룹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내비쳤다.

    김 회장은 그러나 신중한 고민과 파격적인 결단력을 통해 한화그룹을 더욱 크게 키워냈다. 특히 2002년 대한생명 인수를 통해 그룹의 주력사업을 추가하며 석유화학·유통·레저에 이어 ‘금융’이라는 새로운 성장엔진을 한화그룹에 달아줬다.

    재계에서는 한화그룹의 성장 배경으로 김승연 회장의 경영능력이 제대로 발휘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내리면서 한화그룹 뒤에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는 충남 최고의 명문가 ‘현암 가문’을 주목한다. 천안을 중심으로 한 친인척 정계인사들과 결혼을 통해 인연을 맺은 유력가문들이 젊고 패기에 찼던 김 회장에게 신중함과 혜안을 안겨줬을 것이란 분석이다.

    천안 최고의 명문가로 불리는 김승연 회장의 ‘현암 가문’과 한화그룹의 화려하고 막강한 혼맥을 살펴봤다.

    협력업체들을 방문한 김승연 회장
    협력업체들을 방문한 김승연 회장
    ‘다이너마이트 킴’의 화약외길 한화그룹(옛 한국화약그룹) 창업주 현암 김종희 회장은 생전에 재계에서 ‘다이너마이트 킴’으로 불렸다. 화약의 국산화를 주도하며 한국화약이란 회사를 설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외곬의 성격과 독특한 기업경영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터지는 다이너마이트처럼 철저한 계산 아래 안정적이기도 했지만, 한번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했다.

    현암은 1922년 충남 천안 부대동 128번지에서 김재민 옹과 오명철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지만 불같은 성격을 가졌던 그는 당시 수재들만 입학할 수 있었던 경기공립산업학교(현 경기상고)로 진학했다. 하지만 일본학생들과 싸움을 벌였다는 이유로 원산상업학교로 학교를 옮겨 졸업했다.

    학업을 마친 1942년 그는 곧바로 일제하의 화약독점판매회사였던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하며 화약을 만났다. 이때 근무한 것이 결정적인 인연이 돼 1952년 피난시절에 한국화약을 창업했다. 화약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춘 데다 계수에 밝고, 기억력이 뛰어난 현암의 사업은 그야말로 번창했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였다.

    화약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김종희 창업주는 1970년대에 이르러 무역과 건설, 정유, 기계 등 기간산업으로 영역을 넓히며 재벌그룹의 반열에 올라섰다. 김 창업주가 손을 댄 사업 중 성격이 다른 기업은 대일유업(현 빙그레)이 유일한데,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대일유업은 거듭된 적자로 골치를 썩던 정부가 한화에 인수를 요청해 결국 떠안게 됐다는 설명이다.

    승승장구하던 김종희 창업주에게도 시련의 위기는 있었다. 1977년 11월 이리역 폭발사고가 그것이다. 당시 사고로 인해 총 56명이 사망하고, 1158명이 중경상의 피해를 입었으며, 반경 500m 이내 건물이 대파된 것은 물론, 7800여 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사상 초유의 폭발사고로 당시 피해액만 80억원에 달했다. 김 창업주는 이에 전 재산인 90억원을 보상금으로 내놓았으며, 모든 책임을 지기도 했다.

    김종희 창업주의 장남인 김승연 회장이 재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던 김승연 회장은 사고 이후 곧바로 귀국해 한화그룹에 합류했다. 그리고 곧바로 아버지인 현암으로부터 3년 동안 경영수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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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너마이트 킴 주니어’의 뚝심경영 20대 후반에 그룹 총수직에 오른 김승연 회장은 그야말로 패기만만했다. 그의 자신감은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인수와 합작사인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의 경영권 확보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당시 김 회장은 한양화학의 대주주였던 다우케미칼이 본사의 재무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매각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가계약을 이유로 무리한 조건을 요구하던 다우케미칼을 ‘편지’ 한 장으로 저지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한화그룹은 당초 가격보다 낮게 한양화학을 인수했다. 또 미국 유니언오일사와 합작해 설립한 경인에너지 경영권 확보에서도 그의 뚝심을 볼 수 있다. 한화 측에 불리한 계약서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던 김 회장은 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 두 건의 협상 이후 재계에서는 김승연 회장을 ‘다이너마이트 킴 주니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별명을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은 셈이다.

    한화그룹의 성장은 계속 이어졌다. 1986년 명성그룹 5개사(정아레저타운·정아관광·정아건설·정아컨트리클럽·명성)를 인수해 콘도를 비롯한 레저산업에 진출했다. 또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을 인수해 유통업으로 확장을 꾀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그러나 1997년 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려움을 경험한다. 당시 김승연 회장은 “나는 가정파괴범”이라며 스스로를 비난했지만, 그룹을 살리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을 강행한 덕분에 한화그룹의 재도약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한화그룹은 다시 한 번 성장을 시작했다. 같은 해 동양백화점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대덕테크노밸리 설립,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이로써 한화그룹은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대한생명의 금융업, 한화국토개발과 한화유통이 포진한 유통-레저산업을 3대 축으로 하는 성장엔진을 마련했다.

    현암김종희 회장 결혼식
    현암김종희 회장 결혼식
    정·재계 유력가문과 사돈 한화그룹의 모기업인 한국화약은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한 화약류를 독점으로 생산하다 보니 군수산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김종희 창업주는 자연스럽게 권력계층과 교분을 쌓았다. 그런 탓인지 우연하게도 자녀들 혼사 역시 권력층과 맺었다.

    김종희 창업주는 1946년 강태영 여사와 결혼했다. 형님인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차남인 김 창업주가 부친의 강요에 못 이겨 집안 간 혼처가 결정된 곳으로 먼저 상투를 틀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에 맏딸인 영혜 씨만을 출가시켰다. 영혜 씨의 남편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차남인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이다. 이후락 전 중앙정부부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최고의 실세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 결혼을 통해 한화그룹은 SK그룹과 노태우 대통령까지 연결된다. 이후락 전 부장의 5남 이동욱 씨가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막내딸인 최예정 씨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예정 씨의 사촌오빠는 바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며, 부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 씨다.

    김승연 회장은 부친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 장관의 장녀 영민 씨를 배필로 맞았다. 영민 씨는 김 회장보다 9살이나 어린 신부로, 서울대 약대 3학년이었다. 두 사람은 백두진 전 국회의장의 부인인 허숙자 여사를 통해 이뤄졌다. 양가를 잘 아는 허 여사가 직접 나서 연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민 씨는 결혼 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영민 씨의 친가는 유력가문으로 부친인 서 전 장관은 29세에 군수를 지냈고,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민정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으로 지냈다. 서정신 전 대검찰청 차장이 서 전 장관의 동생이며, 서정귀 전 호남석유 회장은 6촌 형이다. 또한 영민 씨의 조부는 이승만 정권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고 서상환 장관이다.

    김승연 회장은 서영민 씨와의 결혼을 통해 다시 한 번 이후락 가문과도 연결된다. 이후락 전 부장의 맏며느리가 바로 서옥로 씨인데, 서정귀 호남정유 전 회장의 차녀다. 서정귀 전 회장은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의 6촌 형이다.

    동생인 김호연 전 국회의원(빙그레 전 회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 씨를 배필로 맞았다. 김미 여사는 큰어머니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미생 여사다. 김호연의 장인어른인 김신 백범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은 교통부장관과 타이완대사, 공군 참모총장,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신 회장은 임윤연 여사와의 사이에 김진-김양-김휘-김미 등 3남1녀를 두고 있는데, 이중 김휘 씨는 김석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아들인 김석동 전 굿모닝증권 회장과 동서지간이다.



    형제들 혼맥
    (위)한국화약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 (아래)박정희 대통령에게 석유화학 단지를 소개하는 현암 김종희 창업주
    (위)한국화약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 (아래)박정희 대통령에게 석유화학 단지를 소개하는 현암 김종희 창업주
    도 화려
    김종희 창업주의 방계 혼맥도 화려하다. 그의 형인 김종철 의원은 전 국민당 총재로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지냈다. 한화 계열사인 한국베어링(현 FAG베어링)과 태평물산(현 한화무역) 회장을 맡았지만,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부인 유성은 여사와의 사이에 요섭-신연-수연-진연-규연-광연 등 5남1녀를 두고 있다.

    창업주의 손아래 동생인 김종식 전 의원은 맏형인 김종철 전 총재가 작고한 후 선거구인 천안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연-서연-도연-원필 등 3남1녀가 있다.

    여동생 김종숙 여사는 미국에서 UCLA에서 지형학 박사를 취득한 김영일 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한화에너지 부사장을 맡았으나 김승연 회장이 취임하면서 물러났다.

    한편 한화그룹의 3세들은 대개 미혼이다. 김종희 창업주의 장녀인 김영혜 씨의 장남이 지난 2007년 CJ그룹 손경식 회장의 장녀 희영 씨와 결혼한 것을 제외하면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재계에서는 한화그룹 3세들의 결혼을 주목하고 있다.

    가장 기대되는 인물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실장이다. 혼기가 꽉 찬 데다 한화그룹의 차기 경영권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화의 안주인이 어떤 집안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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