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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부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동북아시아센터 소장 | 선진국이라면 열심히 일한 국민 돌볼 책임있다
입력 : 2014.01.09 17: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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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킹스의 관심 분야는 미국과 세계의 정치, 경제, 외교, 사회 이슈 등을 망라한다. 미국 워싱턴DC 매사추세츠 애버뉴에 위치한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리처드 부시(Richard C. Bush) 동북아시아센터(CNAPS) 소장을 만났다. 그가 이끌고 있는 동북아정책연구센터(CNAPS)는 지난 1998년 설립됐다. 한국·중국·일본의 정치, 경제, 안보이슈를 두루 연구하는 정예조직이다.
부시 소장은 이후 미국 국무부와 의회(하원 상임위 연락관), 정보기관(국가정보위원회) 등에서 경력을 쌓아올린 국제 전문가다. ‘싱크탱크-정부-의회’를 섭렵시키면서 능력을 검증하는 미국식 인재양성 시스템의 전형에 가깝다.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반도 문제를 비롯해 미국-중국, 중국-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안보문제 전문가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주로 북한 문제에 정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는 북한 및 국제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이슈를 아우르는 전방위 질문을 던졌다. 장성택을 처형하며 대내외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킨 북한에 대해 부시 소장은 믿을 수 없는 나라임을 명백히 밝혔다.
“북한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불안정한 나라다”라고 지적한 그는 특히 향후 6자회담이나 4자회담 등 대화를 하더라도 북한에 끌려 다녀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문제다. 우리는 북한으로 하여금 누가 대화에 참여할지를 지시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6자회담 참여국이지만 4자회담에는 포함되지 않는) 일본과 러시아도 북한 문제에 이해관계가 걸린다. 누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인지, 협상 어젠다는 무엇인지를 북한이 정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건 단지 트릭일 뿐이다.” 최근의 사태 이전에 남북한이 개성공단 재개에 합의했지만 그는 북한이 근본적으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남북한이 개성공단 재개에 합의한 바 있는데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은 어떤가. 우선 북한과의 의사소통(communication)과 협상(negotiati on)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추구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는 아주 다른 것이다. 미국과 한국, 중국은 북한과의 의사소통에 대해 언제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과 협상을 하는 것은 (북한의) 정책에 달려있다. 지난 봄에 비해 분위기가 더 나아졌고, 북한의 스타일이 부드러워졌다고 해도 핵무기 보유, 장거리 미사일 실험 등과 같은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주장이 변하지 않았다. 변화에 대한 어떠한 신호도 없다. 북한이 정책변화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의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일차적인 문제는 신뢰다. 불신을 줄이고, 긍정적인 신뢰를 쌓기 위한 매커니즘이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박 대통령이 제안한 원칙은 좋은 아이디어다. 상황을 좀 더 평화적이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의 근본적인 자세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박 대통령도 이 부분을 아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보유국가로 남기를 고집한다면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북한이 불신을 줄이기 위한 모종의 조치를 취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개성공단이 문 닫도록 상황을 조장한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이 마음을 바꾼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에서 유입되는 자금이 아쉬워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고 있다. 정치적인 수단이 아니라 남북한 상호이익을 위해 개성공단을 계속 유지하는데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길 바란다. 금강산 관광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아쉬울 수 있다. 문제를 만든 것은 북한이다. 따라서 문제를 푸는 것도 북한에 달려있다.
구조개혁 없으면 일본 전망 어두워 일본의 엔화 약세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의 엔저 정책이 지속될 경우,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들은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엔화 약세를 초래한 ‘아베노믹스(Abenomics)’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속가능하다고 보는가. 일부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가 장기적으로는 일본에게도 해로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베노믹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 번째 화살’이다. 일본이 안정적인 경제성장 기조로 복귀하려면 (첫 번째, 두 번째 화살인) 통화정책, 재정정책 외에 반드시 (세 번째 화살인)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 만약 구조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은 장기적이 아닌 단기적인 효과만 발휘할 것이다. 한마디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특히 일본의 예산 사정을 감안하면 그렇다. 일본 정부가 어떤 종류의 구조 개혁을 해나갈 것인지 지켜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축소와 관련된 ‘버냉키 버블’로 신흥국들이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화됐을 때 신흥국에 닥칠 위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채권매입을 축소하는데 매우 신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용상황 등 미국 경제의 건전성에 달려있는 문제다. 하지만 (미 연준이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미국 경제가 살아남는 것이다. 매우 크고 개방된 시장인 미국 경제가 어려움을극복한 것은 다른 모든 나라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일이 될 전망이다.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에게 복지 혜택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해놓은 상태다. 문제는 세금을 크게 늘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필요한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이다. 비슷한 고민을 미국도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당신의 충고는 무엇인가. 선진국 정부라면 국민들을 위한 시스템을 돌볼 책임이 있다. 미국도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쉬운 해결책은 없다. 다만 미국의 경우처럼 부유한 가정에게 적용된 세율이 낮다면 신중하게 세율을 높이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사회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시민이라면 안락한 은퇴라는 보답을 받을 자격이 있다.
지난 봄 한미 양국은 원자력 협정을 2년 재연장하기로 합의했다. 한국은 독자적인 핵연료 생산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과 관련해 워싱턴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했다. 한미 양국은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까. 미국은 국제안보 상황과 테러 위험 때문에 30년 전과 비교해 핵 재처리 허용에 훨씬 미온적이다. 다만 한국과 미국은 특별한 관계이고, 양국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 양국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를 바란다.
지난 2012년 한미양국이 미사일 협정을 개정해 사거리를 기존의 300킬로미터에서 800킬로미터로 연장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국방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미국 상황에서는 동맹국인 한국이 (자체 비용으로) 군사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한·미 양국이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국의 특별한 사정을 감안해서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정책을 바꿨다. 알다시피 사거리 연장 문제는 안보 차원에서 북한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관련될 수 있다. (미국으로선) 그것을 감안해야 한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한국 관련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들었다. 오래 전에 한국 관련 연구 강화를 결정했다. 선도적인 싱크탱크로서 한국 관련 연구는 브루킹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브루킹스에는 중국 관련 연구를 하는 대규모 그룹이 있고, 일본에 대해서도 연구 인원이 따로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연구 담당자가 없다면 이는 브루킹스 연구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연구를 전담할 인재를 찾는 중이다. 한국 연구원은 남북한 문제를 비롯해 한반도 안보, 한·미 동맹 등의 모든 이슈를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진우 매일경제 워싱턴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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